향기를 듣는다는 것
일본의 향도(香道)에서는 향을 맡는다고 하지 않는다. 향을 듣는다고 한다.
문향(聞香). 향기를 듣는다. 처음 들으면 말이 안 되는 표현이다. 향은 코로 맡는 것이지 귀로 듣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이 낯선 표현 안에 향을 대하는 완전히 다른 태도가 들어 있다. 맡는다는 것은 냄새가 나에게 오는 것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듣는다는 것은 내가 귀를 기울여 다가가는 일이다. 향기를 듣는다는 것은, 향에게 주의를 온전히 기울여 그것이 하는 말을 알아들으려는 자세다.
이 태도의 뿌리에는 불교 전설이 있다. 부처가 말씀하실 때마다 그 말씀 한 마디 한 마디가 향기가 되어 공기 중으로 퍼졌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보살들은 지금도 향을 피우고, 말없이 자신의 호흡에 순응하며 그 냄새를 맡음으로써 부처의 말씀을 듣는다. 향기가 곧 말씀이고, 냄새를 맡는 것이 곧 듣는 것이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침향이다.
침향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알면, 이 향이 왜 그렇게 귀하게 여겨지는지 조금 이해하게 된다.
동남아시아 삼림에 아퀼라리아라는 상록수가 있다. 이 나무에 곤충이 파고들어 감염이 시작되면, 나무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짙고 향기로운 수지를 분비한다. 상처 난 자리를 그 수지로 흠뻑 적신다. 시간이 지나면 살아 있는 나무가 그 물질을 딱딱한 돌처럼 굳혀놓는다. 이렇게 변형된 부분이 침향이다.
그러니까 침향은 나무의 상처다. 정확히는 상처에 대한 나무의 반응이다. 감염되지 않은 건강한 부분에서는 침향이 나오지 않는다. 오직 상처 입은 자리에서만, 그 상처를 견디는 과정에서만 이 향이 만들어진다. 그것도 전체 나무의 10퍼센트 미만에서만 일어나는 일이다.
더 흥미로운 건 시간이다. 감염이 계속되면 수지가 계속 흘러나오고, 시간이 갈수록 침향의 품질이 천천히 더 좋아진다. 상처가 오래될수록, 그 상처를 견딘 시간이 길수록 향이 깊어진다. 최고급 침향은 목질을 가득 채운 수지의 무게 때문에 물에 가라앉는다. 그래서 이름도 가라앉을 침(沈) 자를 쓴다. 침향. 물에 잠기는 향이다. 상처가 무거워질수록 향은 깊어지고, 그 깊이가 향을 아래로 끌어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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