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부
우상폐(憂傷肺): 근심은 폐를 상하게 한다. 슬픔은 잃은 것에서 오고, 근심은 아직 오지 않은 것에서 온다. — 《황제내경》
1
윤세영은 남의 아기를 돌보는 일을 했다.
대구 수성구의 한 산후조리원이었다. 신생아실에서 일했다. 갓 태어난 아기들을 안고, 분유를 먹이고, 트림을 시키고, 기저귀를 갈았다. 밤 근무가 많았다. 아기들은 밤에 더 자주 울었다. 윤세영은 그 울음소리에 익숙했다. 어떤 울음이 배고픈 울음이고 어떤 울음이 졸린 울음인지 구분할 수 있었다. 삼 년이면 그 정도는 몸이 알았다.
스물여덟이었다.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따고 처음 들어간 곳이 이 조리원이었다. 처음엔 좋았다. 아기를 안으면 따뜻했다. 작고 가벼웠다. 윤세영의 손바닥 안에서 아기가 숨을 쉬었다. 그 숨이 빠르고 얕았다. 신생아는 원래 그렇게 숨을 쉰다. 윤세영은 그 숨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놓였다.
문제가 생긴 건 작년부터였다.
밤 근무를 마치고 집에 오면 잠이 오지 않았다. 피곤한데 잠이 오지 않았다. 누우면 가슴이 답답했다. 숨을 크게 들이쉬어도 다 들어오지 않는 것 같았다. 반쯤 들어오다 막히는 느낌이었다. 윤세영은 처음에 야간 근무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생활 리듬이 망가져서 그런 거라고.
근데 쉬는 날에도 그랬다.
내과에 갔다. 폐 사진을 찍었다. 이상 없다고 했다. 심전도도 정상이었다. 의사가 과호흡 증후군 같은 거일 수 있다고 했다. 불안할 때 그렇게 된다고. 윤세영은 자기가 불안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불안할 일이 없었다. 온라인 게임도 있고 건강도 괜찮고 큰 문제도 없었다.
근데 숨이 얕았다.
밤마다 천장을 보면서 생각을 했다. 생각이 많았다.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조무사 월급으로 언제 돈을 모을까. 부모님이 나이 들면 어떻게 모실까. 결혼은 할 수 있을까. 결혼을 하면 애는 낳을까. 애를 낳으면 이 좁은 방에서 어떻게 키울까.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윤세영은 이미 태어나지도 않은 아기를 어디서 키울지 걱정하고 있었다.
남의 아기는 잘 돌봤다. 자기 미래는 캄캄했다.
조리원 동료가 한의원 얘기를 꺼낸 건 그즈음이었다. 산모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난 곳이라고 했다. 약령시에 있는데, 원장이 좀 특이하다고. 산후풍으로 갔던 산모가 효과를 봤다고 했다.
“근데 너 산모도 아닌데 가도 되나?”
“가도 되겠지.”
윤세영은 딱히 이유가 없어서 가보기로 했다. 쉬는 날이었다.
2
약령시 골목은 한약 냄새가 났다.
윤세영은 골목으로 들어서면서 그 냄새를 맡았다. 조리원 냄새와 달랐다. 조리원은 분유 냄새와 소독약 냄새가 났다. 여기는 약재 냄새였다. 쌉싸름하고 진했다. 윤세영은 그 냄새가 싫지 않았다.
골목 입구에 차가 한 대 서 있었다. 짙은 남색 포르쉐였다. 윤세영은 그 차를 보고 잠깐 멈췄다. 이 골목에 맞지 않는 차였다. 누구 차인지 궁금했지만 그냥 지나쳤다.
한약재 상점 주인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윤세영이 심의당을 찾는다고 하니 안쪽을 가리켰다.
“이 층이오.”
“감사합니다.”
상점 주인이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약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윤세영이 안으로 들어갔다.
계단을 올랐다. 나무 계단이었다. 삐걱이는 소리가 났다. 윤세영은 그 소리를 들으면서 올라갔다. 조리원 복도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바닥이 매끄러웠다. 아기들이 자니까 조용해야 했다. 여기는 계단마다 소리가 났다. 숨길 게 없는 건물 같았다.
대기실에 들어서니 젊은 여자가 폰을 보고 있었다. 흰 가운을 입었는데 아래로 청바지가 보였다.
“진료 받으러 왔는데요.”
“들어가시면 돼요.”
윤세영이 진찰실 문을 열었다.
김원효가 진찰 의자에 앉아서 뭔가를 먹고 있었다. 약과였다. 손에 들고 한 입씩 베어 먹고 있었다. 윤세영이 들어서자 약과를 내려놓고 손을 닦았다.
“어서 오이소. 앉으이소.”
윤세영이 앉았다. 김원효가 맞은편에 앉아서 진료카드를 봤다.
“윤세영 씨. 가슴 답답함이랑 호흡이 얕은 게 주증상이고. 불면도 있고.”
“네.”
“얼마나 됐어요?”
“한 일 년 됐어요.”
“직업이 뭐예요?”
“간호조무사요. 산후조리원에서 일해요.”
김원효가 고개를 들었다.
“신생아실이요?”
“네.”
“밤 근무 많죠?”
“네. 많아요.”
김원효가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윤세영을 봤다. 뭔가를 살피는 것 같았다.
“아기들 숨소리 알아요?”
윤세영이 그 질문에 잠깐 멈췄다.
“어떤 숨소리요?”
“신생아 숨소리. 빠르고 얕잖아요.”
“네. 알아요.”
“매일 그 숨소리를 듣겠네요.”
“네.”
김원효가 잠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진료카드를 내려놓았다.
“일단 약침 한 방 먼저 맞아보이소.”
3
약침은 가슴 쪽 경혈에 놓았다.
정확히는 쇄골 아래쪽이었다. 폐경(肺經)이 지나는 자리라고 김원효가 설명했다. 윤세영이 옷깃을 살짝 내리고 자리에 앉았다. 박나리가 약침 트레이를 들고 들어왔다. 오늘은 폰을 들고 오지 않았다.
“긴장 풀어보이소.”
“네.”
“숨 크게 한번 쉬어보이소.”
윤세영이 숨을 들이쉬었다. 반쯤 들어오다 막혔다. 끝까지 들어오지 않았다. 윤세영은 그게 익숙했다. 일 년 동안 그랬으니까.
“끝까지 안 들어오죠?”
윤세영이 김원효를 봤다.
“네. 어떻게 알았어요?”
“보면 알아요. 어깨가 안 내려가거든요.”
윤세영이 자기 어깨를 의식했다. 어깨가 올라가 있었다. 긴장한 것도 아닌데 올라가 있었다. 윤세영은 그걸 처음 알았다.
바늘이 들어왔다.
“으.”
“참을 만하지예?”
“네.”
“가슴 쪽이 많이 막혀 있네요.”
박나리가 트레이를 정리하면서 윤세영을 봤다.
“조리원 어디예요?”
“수성구요.”
“거기 산모들이 여기 많이 와요.”
“아, 그래서 저도 알게 됐어요.”
박나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더 말하지 않고 트레이를 들고 나갔다.
김원효가 맥을 짚었다. 오른손, 왼손. 혀를 보고, 눈꺼풀을 확인했다. 그리고 등 쪽으로 손을 가져갔다. 견갑골 사이를 눌렀다.
“여기 아프죠?”
“으. 네.”
“폐수혈(肺兪穴)이라예. 여기가 뭉치면 숨이 얕아지거든요.”
윤세영이 등을 의식했다. 견갑골 사이가 항상 뻐근했다. 일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아기를 안는 자세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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