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의 미학

같은 것을 다르게 보는 순간 일어나는 일

by김경훈

굵은 T자 모양의 파이프 그림이 있다.


그냥 파이프다. 별다른 감흥이 없다. 그런데 누군가 "이건 트럼펫 피스톤입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머릿속에서 뭔가가 딸깍 움직인다. 아, 그렇구나. 같은 그림인데 갑자기 다르게 보인다. 파이프가 트럼펫의 일부로 재배치되는 그 순간, 작은 쾌감이 인다.


이 감각에는 이름이 있다. '아하 경험'이다.


야구 홈베이스에 공이 하나 놓인 그림도 있다. 이것도 그냥 공이다. 그런데 "이건 전설적인 야구 선수 오 사다하루의 초상화입니다"라고 하면, 이번엔 피식 웃음이 난다. 홈베이스가 얼굴이 되고 공이 머리가 되는 순간, 아까와는 약간 다른 종류의 반응이 온다. 아하가 아니라 아하하다.


이 두 가지, 아하와 아하하 사이에 흥미로운 비밀이 숨어 있다.



서던 캘리포니아대학교의 오리 아미르 교수 연구팀이 이 순간들을 들여다봤다. 사람들이 아하를 느낄 때와 아하하를 느낄 때 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관찰한 것이다. 두 경우 모두 다양한 뇌 부위가 활성화됐는데, 특히 흥미로운 곳이 하나 있었다. TPJ, 측두 두정 접합부라고 불리는 영역이다.


TPJ는 아하하 하고 웃음이 터질 때 더 활발하게 움직였다. 유머를 이해하는 순간 작동하는 영역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TPJ가 원래 무슨 일을 하는 곳이냐가 진짜 흥미로운 대목이다.


TPJ는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데 관여하는 영역이다. 이 부위에 인공적으로 전기 자극을 주면 유체이탈 현상이 일어난다고 한다. 자신의 몸 바깥에서 자기를 내려다보는 경험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다른 위치에서 보는 능력. 그것이 TPJ가 하는 일이다.


그러니까 유머와 유체이탈이 같은 뇌 영역을 공유하고 있다. 둘 다 관점이 이동한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면 이야기가 더 깊어진다.


TPJ는 진화적으로 공간을 인지하기 위해 발달한 영역이다. 야생동물을 생각해보자. 같은 자리에 서서 오른쪽을 볼 때와 왼쪽을 볼 때,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완전히 다르다. 그런데 자신의 위치는 변하지 않았다. 풍경이 바뀌어도 "나는 여전히 같은 곳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시각 정보가 계속 달라지는데도 자기 위치의 불변성을 유지하는 능력. 이게 생존에 필수적이다. 위치를 잃으면 길을 잃고, 길을 잃으면 위험에 빠진다.


이 불변성을 유지하려면 자신을 객관적인 관점에서 파악해야 한다. 눈에 보이는 정보에만 휘둘리지 않고, 한 발 물러서서 "나는 지금 여기 있고, 단지 고개를 돌렸을 뿐"이라고 보정하는 것이다. 이 보정을 담당하는 영역이 TPJ다.


그리고 바로 이 능력에서 유머가 파생됐다.


공간 속에서 내 위치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능력이, 어떤 상황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는 능력으로 확장된 것이다. 파이프를 트럼펫의 일부로 보는 것, 홈베이스를 얼굴로 보는 것. 전부 같은 대상을 다른 위치에서 바라보는 일이다.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발달한 능력이, 농담을 이해하는 능력이 됐다. 진화는 이런 식으로 오래된 기능을 새로운 용도로 전용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일어나는 일이 흥미롭다.


"유머가 공간 인지 능력에서 진화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그 자체가 또 하나의 아하 경험이다. 유머의 기원에 대한 정보가 머릿속에서 재배치되면서 딸깍, 하고 새로운 관점이 열린다. 유머를 설명하는 글을 읽다가, 그 설명 자체에서 유머의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것이다.


마트료시카 같은 구조다. 인형을 열면 똑같이 생긴 더 작은 인형이 나오고, 그걸 열면 또 더 작은 인형이 나온다. 관점 전환에 대해 알게 되는 것 자체가 관점 전환이고, 그 사실을 깨닫는 것도 또 하나의 관점 전환이다. 알면 알수록 안쪽에 또 하나의 아하가 들어 있다.


연구팀이 밝혀낸 가장 중요한 부분이 여기다. 관점이 전환되는 순간, TPJ만 활성화되는 것이 아니다. 뇌의 보상계, 즉 쾌감을 유발하는 신경계도 함께 활성화된다. 새로운 관점에서 무언가를 바라보는 경험이 뇌에 본질적인 쾌감을 준다는 것이다.


우리가 농담에 웃을 때, 새로운 사실을 깨달을 때,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볼 때 느끼는 그 기분 좋음. 그것은 단순한 부수 효과가 아니라 뇌가 설계된 방식이다. 관점을 바꾸는 행위 자체에 보상이 걸려 있다.



이 발견이 일상에서 의미하는 바가 있다.


같은 세상도 새로운 관점으로 보면 다르게 느껴진다. 이걸 리프레싱이라고 부른다. 어제와 똑같은 거리, 똑같은 일상인데 시점 하나를 바꾸면 신선해진다. 그리고 이건 의지로 가능한 일이다. 인간의 뇌에는 관점을 전환하는 능력이 내장되어 있고, 그 능력을 쓸 때마다 쾌감이라는 보상이 따라온다.


20년 후의 자신을 상상해보는 연습이 있다. 미래의 어느 날, 평범하고 무기력한 일상을 보내던 내 앞에 신이 나타나 타임머신을 태워 지금 이 순간으로 돌려보냈다고 상상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떤 기분이 들까. 어제와 똑같은 오늘인데, 갑자기 모든 것이 기회처럼 보인다. 같은 하루가 전혀 다른 무게로 다가온다.


이것이 관점 전환의 힘이다. 현실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바뀐 것은 그것을 바라보는 위치뿐이다. 그런데 그 위치의 변화가 경험 전체를 바꾼다.



흥미로운 건 이 모든 것이 결국 정보의 문제라는 점이다.


파이프 그림은 변하지 않았다. 변한 것은 그 그림에 부여된 맥락, 즉 "트럼펫 피스톤"이라는 한마디의 정보다. 같은 시각 정보에 다른 해석 틀이 씌워지자, 뇌가 그것을 완전히 다르게 처리했다. 우리가 무언가를 어떻게 경험하는가는 그 대상 자체보다 그것을 둘러싼 정보와 맥락에 더 크게 의존한다.


좋은 농담, 좋은 통찰, 좋은 깨달음은 새로운 정보를 주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것을 다르게 배치한다. 파이프는 처음부터 거기 있었다. 홈베이스도 거기 있었다. 다만 다르게 볼 수 있다는 것을 몰랐을 뿐이다.


그리고 그 다르게 보는 순간, 뇌가 기뻐한다. 길을 잃지 않으려고 수만 년 전에 발달시킨 능력이, 지금 우리에게 농담의 즐거움과 깨달음의 쾌감을 선물하고 있다. 관점을 바꾸는 일이 즐거운 데에는 이렇게 오래된 이유가 있었다.


지금 읽고 있는 이 글도, 다 읽고 나면 세상이 아주 약간 다르게 보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방금, 당신의 뇌에서도 작은 쾌감이 일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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