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카다브라의 철학

말한 대로 될지어다, 라는 위험한 주문에 대하여

by김경훈

새벽 세 시에 잠이 깼다.


이런 날이 가끔 있다. 논문 마감이 가까워지면 몸이 멋대로 깬다. 머릿속에서 문장들이 굴러다니기 때문이다. 쓰다 만 문장, 고쳐야 할 문장, 아직 못 쓴 문장. 그것들이 어둠 속에서 떠다닌다. 나한테 어둠은 특별한 상태가 아니다. 불이 켜져있든 꺼져있든 내 세계는 비슷하다. 다만 새벽 두 시의 공기는 낮과 다르다. 더 조용하고, 더 건조하고, 소리 하나하나가 또렷하다.


옆에서 보보가 자고 있었다. 숨소리가 규칙적이었다.


발치에서 탱고가 자고 있었다. 탱고의 숨소리는 보보보다 느리고 깊다.


나는 일어나서 부엌으로 갔다. 물을 마시려고. 어둠 속에서도 집은 내 손이 다 안다. 냉장고까지 몇 걸음, 컵이 어디 있는지, 정수기 버튼이 어디인지. 이 집은 내 몸의 연장이다.


물을 마시면서 나는 어떤 단어를 생각하고 있었다.


아브라카다브라.



낮에 보이스오버가 읽어준 거였다.


아브라카다브라가 히브리어에서 왔다는 것. 뜻이 말한 대로 될지어다 라는 것. 중세에는 열병을 다스리는 주문이었다가 마술사들의 주문이 됐다는 것. 말로 나타낸 일이 실제로 이루어지리라는 믿음.


나는 이 단어가 종일 머릿속에 있었다. 그리고 새벽 두 시에 다시 떠올랐다.


말한 대로 될지어다.


이건 내 직업의 핵심이기도 하고, 내 삶의 위험이기도 하다.



"안 자?"


보보 목소리였다. 부엌 입구에서. 나는 보보가 언제 깼는지 몰랐다. 보보는 발소리가 작다. 맨발일 때는 더.


"깼어?"


"자기가 일어나서. 물 마셔?"


"응. 자기도 마실래?"


"응."


나는 컵을 하나 더 꺼냈다. 물을 따랐다. 보보한테 건넸다. 어둠 속에서 우리는 손의 위치를 안다. 십 년 가까이 같이 살면 컵을 건네는 데 빛이 필요 없다.


"무슨 생각 했어?" 보보가 물었다.


"아브라카다브라."


"갑자기?"


"낮에 읽은 게 안 잊혀서. 말한 대로 될지어다, 라는 뜻이래."


보보가 잠깐 조용했다. 물 마시는 소리가 났다.


"그거 무서운 말이네." 보보가 말했다.


"왜 그렇게 생각해?"


"말한 대로 다 되면 큰일이잖아. 사람들이 화나서 하는 말이 얼마나 많은데."



우리는 거실 의자로 자리를 옮겼다.


불은 켜지 않았다. 보보도 어둠에 익숙하다. 나랑 살면서 그렇게 됐다. 어둠 속에서 대화하는 게 우리한테는 자연스럽다. 오히려 어떤 이야기는 어둠 속에서 더 잘 나온다.


탱고가 따라왔다. 발소리로 알았다. 탱고는 우리가 새벽에 깨어있으면 따라온다. 그리고 발치에 엎드린다. 지금도 내 발 옆에 자리를 잡았다. 따뜻한 무게.


"말이 현실이 된다는 거," 내가 말했다. "내 연구랑 닿아있어."


"어떻게?"


"정보 접근성에서 제일 중요한 게 사실 언어거든. 어떤 것에 이름이 있느냐 없느냐가 그것의 존재를 결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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