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의 철학

수직 무늬 방에서 자란 고양이는 수평선을 보지 못한다는 것에 대하여

by김경훈

낙트리에서 까눌레를 먹다가 사장님이 물었다.


"경훈 씨는 빵 고를 때 뭘로 골라요?"


질문이 좋았다. 대부분은 이런 걸 안 묻는다. 시각장애인이 빵을 어떻게 고르는지 궁금해하면서도 묻기를 망설인다. 실례일까 봐. 그런데 낙트리 사장님은 그냥 물었다. 기계공학 박사다운 호기심이었다. 변수를 알고 싶어하는 사람.


"냄새랑 무게요." 내가 말했다. "그리고 사장님 설명이요."


"무게요?"


"잠봉뵈르는 묵직하고, 까눌레는 가볍지만 단단해요. 휘낭시에는 더 가볍고요. 손에 올리면 알아요."


사장님이 잠깐 조용했다.


"저는 이십 년 빵 만들면서 무게로 구분한다는 생각은 못 해봤어요."


"사장님은 눈으로 보니까요."


"그러네요. 색깔이랑 모양으로만 봤어요."


옆에서 보보가 잠봉뵈르를 먹다가 끼어들었다.


"그거 오늘 읽은 거랑 연결되는데."



보보가 읽은 건 고양이 실험이었다.


갓 태어난 고양이를 수직 무늬만 있는 방에서 키웠더니, 나중에 수평선을 아예 지각하지 못했다는 것. 수평선이 먹이나 출구를 가리켜도 한 마리도 찾지 못했다는 것. 자란 환경이 지각의 한계를 만들었다는 것.


"우리도 그렇대." 보보가 말했다. "어떤 방식으로만 세계를 보도록 조건화되어 있어서, 다른 방식은 아예 지각을 못 한다는 거야."


사장님이 반죽을 멈추고 들었다.


"그럼 저는 수직 무늬 방에서 자란 고양이네요." 사장님이 말했다. "빵을 색깔이랑 모양으로만 보도록 조건화돼서, 무게로 보는 건 생각도 못 했으니까."


"맞아요." 내가 말했다. "근데 그게 사장님 잘못은 아니에요. 눈이 보이면 시각 정보가 워낙 강력하니까 다른 감각을 안 쓰게 돼요. 시각이 다른 지각을 덮어버리는 거죠."


"경훈 씨는 그 반대고요."


"저는 수평선 방에서 자란 고양이예요. 수직 무늬를 못 보는 대신 수평선은 잘 봐요."


사장님이 웃었다.


"근데 그 방에서는 경훈 씨가 먹이를 찾고 저는 못 찾겠네요."


나는 이 말이 좋았다. 사장님이 핵심을 정확히 뒤집었다.



탱고가 주방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여사장님이 주방에서 나오고 있었다. 탱고는 여사장님의 발소리를 안다. 여사장님은 탱고를 볼 때마다 *우리 탱고 왔어?* 라고 하는데, 오늘도 그랬다.


"우리 탱고 왔어? 오늘 휘낭시에 갓 구웠는데."


탱고는 휘낭시에를 못 먹는다. 그러나 여사장님의 인사는 받는다. 여사장님한테 탱고는 빵을 못 먹는 게 아쉬운 단골이다.


"여사장님," 보보가 말했다. "지각의 한계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어요. 사람은 자기가 익숙한 방식으로만 세계를 본다는."


여사장님이 잠깐 생각하시더니 말씀하셨다.


"나는 소리로 빵 익은 거 알아요."


우리가 여사장님을 봤다.


"오븐 안에서 빵이 익으면 소리가 달라져요. 처음엔 반죽이 부푸는 소리가 나다가, 다 익으면 겉이 단단해지는 소리가 나요. 톡톡. 그 소리 들으면 꺼낼 때예요."


사장님이 여사장님을 봤다.


"누나 그거 어떻게 알아?"


"이십 년 들었는데 모르겠니."


"나는 타이머로 하는데."


"타이머는 변수를 못 잡아. 그날 습도랑 반죽 상태에 따라 다른데."


나는 이 대화가 좋았다.


같은 빵집에서 이십 년을 일한 남매가, 서로 다른 감각으로 빵을 익히고 있었다. 사장님은 눈과 타이머로, 여사장님은 소리로. 둘 다 맞고, 둘 다 자기 방식에 조건화되어 있고, 그래서 서로의 방식을 신기해했다.



"메를로퐁티 또 나오겠다." 내가 보보한테 말했다.


"아니, 이번엔 다른 사람." 보보가 말했다. "토머스 쿤."


과학철학자가 나왔다. 보보의 창고는 정말 끝이 없다.


"쿤이 패러다임 개념을 만들었잖아. 과학자들이 특정 패러다임 안에서 훈련받으면, 그 패러다임으로만 세계를 보게 돼. 다른 패러다임의 증거가 눈앞에 있어도 못 봐. 수직 무늬 방에서 자란 고양이처럼."


"과학자도 고양이네."


"그래서 과학 혁명이 어려운 거야. 기존 패러다임에 조건화된 사람들은 새로운 걸 아예 지각을 못 하니까. 패러다임이 바뀌려면 보통 세대가 바뀌어야 해. 새로운 방에서 자란 고양이들이 나와야 하는 거지."


사장님이 말했다.


"그럼 빵도 패러다임이 있겠네요. 저는 프랑스 빵 패러다임에서 훈련받아서, 다른 빵은 잘 못 만들어요."


"레스큐어 버터 패러다임이죠." 내가 말했다.


"갈루아 초콜릿 패러다임이기도 하고요." 사장님이 웃었다.



나는 잠깐 진지해졌다.


이 소재는 나한테 양날의 칼이다.


한편으로, 나는 시각에 조건화되지 않은 사람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놓치는 걸 지각한다. 무게로 빵을 구분하고, 공기로 공간을 읽고, 소리로 사람의 상태를 안다. 시각이 너무 강력해서 다른 감각이 위축된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수평선을, 나는 본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나도 조건화되어 있다. 나는 시각 정보가 전제된 세계에서 자꾸 막힌다. 도표가 그렇고, 지도가 그렇고, 누군가 *저거* 라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순간이 그렇다. 그 세계에서는 내가 수직 무늬 방의 고양이다.


문제는 세상이 시각 패러다임으로 설계되어 있다는 거다. 대부분의 정보가 시각을 전제로 만들어진다. 그래서 시각에 조건화된 다수는 자기들이 조건화되어 있다는 걸 모른다. 그게 그냥 세계라고 생각한다.


"있잖아," 내가 말했다. "고양이 실험에서 제일 중요한 게 뭔지 알아?"


"뭔데?" 보보가 물었다.


"수직 무늬 방에서 자란 고양이는, 자기가 수평선을 못 본다는 걸 몰라. 그냥 수평선이 없는 세계에 사는 거야. 그게 자기한테는 전부니까."


보보가 잠깐 조용했다.


"시각 패러다임에 사는 사람들도 그렇다는 거네."


"응. 자기들이 시각에 의존한다는 걸 몰라. 그게 그냥 세계라고 생각해. 그래서 정보를 만들 때 시각을 전제하는 게 당연한 거야. 수평선 방의 고양이가 있다는 걸 상상도 못 하니까."


사장님이 반죽하던 손을 멈췄다.


"저 방금 좀 충격받았어요." 사장님이 말했다. "제가 빵 만들 때 점자 표시를 한 번도 생각 안 해봤거든요. 시각장애인 손님이 오실 거라는 생각 자체를 안 했어요."


"대부분 그래요." 내가 말했다. "비난하는 게 아니라, 그게 조건화예요. 수평선 방을 상상 못 하는 거."


"이제 생각해볼게요." 사장님이 말했다. "빵 이름이라도 점자로 붙일 수 있는지."


나는 잠깐 멈췄다.


이게 내가 연구를 하는 이유다. 비난이 아니라 상상의 확장. 수직 무늬 방의 고양이한테 수평선이 있다고 알려주는 일.



"근데," 여사장님이 말씀하셨다. "그러면 우리 모두 각자 못 보는 게 있는 거네요."


"맞아요." 내가 말했다.


"그럼 같이 있어야겠네." 여사장님이 말씀하셨다. "내가 못 보는 걸 누가 보고, 그 사람이 못 보는 걸 내가 보고."


나는 이 말이 좋았다.


수직 무늬 방의 고양이와 수평선 방의 고양이가 함께 있으면, 두 방향을 다 볼 수 있다. 혼자서는 한 방향밖에 못 보지만, 같이 있으면 세계가 넓어진다.


"여사장님이 방금 제 논문 결론을 말씀하셨어요." 내가 말했다.


"내가?"


"정보 접근성의 핵심이 그거예요. 각자 다른 지각을 가진 사람들이 같이 정보를 만들면, 아무도 혼자서는 못 보던 걸 보게 돼요."


"그럼 나도 공동저자네." 여사장님이 웃으셨다.


탱고가 발 옆에서 자세를 바꿨다. *"공동저자 후보가 또 늘었어오"* 의 움직임이었다. 탱고는 자기 공동저자 신청이 계속 밀리는 걸 신경 쓰는 것 같았다.



나오면서 사장님이 휘낭시에를 봉투에 담아주셨다.


"오늘 얘기 좋았어요. 점자 표시 진짜 알아볼게요."


"부담 갖지 마세요. 그냥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아니에요. 수평선 방을 상상하기 시작했으니까요." 사장님이 말했다.


나는 그 말에 잠깐 멈췄다.


수평선 방을 상상하기 시작했다는 말. 그게 모든 변화의 시작이다. 조건화에서 벗어나는 첫걸음. 자기가 한 방향만 보고 있었다는 걸 깨닫는 순간.


"사장님," 내가 말했다. "오늘 사장님이 고양이 실험에서 빠져나오셨어요."


"제가요?"


"수직 무늬 방에서 수평선을 상상하셨으니까요."


사장님이 잠깐 조용하더니 웃었다.


"그럼 저 진화한 고양이네요."


"가장 좋은 종류의 고양이요."



밖으로 나오자 공기가 달라졌다. 낙트리 안의 빵 냄새에서, 캠퍼스 근처 거리의 냄새로. 탱고가 코를 들고 공기를 다시 읽었다. 안과 밖의 지각이 다르다. 탱고는 매번 그 경계를 냄새로 확인한다.


"자기야," 보보가 말했다. "오늘 사장님 변한 거 봤어?"


"봤어. 소리로."


"무슨 소리?"


"반죽하던 손이 멈췄을 때. 그때 사장님이 바뀐 거야. 멈춤이 들렸어."


보보가 잠깐 조용했다.


"나는 그걸 못 들었어. 표정으로 봤어."


"그러니까 우리가 같이 다녀야 해." 내가 말했다. "자기는 표정을 보고, 나는 멈춤을 듣고."


"수직 무늬 방이랑 수평선 방이 같이 다니는 거네."


"두 방향을 다 보는 거지."


휘낭시에 봉투가 손에서 가벼웠다. 오늘 새로 구운 거라 아직 온기가 남아있었다. 그 온기를 손으로 느끼면서 걸었다. 보보는 옆에서 무슨 색인지 봤을 거고, 나는 온기를 느꼈고, 탱고는 냄새를 맡았다.


같은 봉투를, 세 방향으로.



[비하인드 스토리]


*탱고예오.*


*오늘 낙트리에 갔어오. 여사장님이 *우리 탱고 왔어?* 라고 하셨어오. 저는 이 인사가 좋아오. 매번 들어도 좋아오.*


*오늘 형이랑 누나가 고양이 이야기를 했어오. 저는 약간 긴장했어오. 고양이 이야기는 늘 긴장돼오. 그런데 이번엔 진짜 고양이 실험이었어오. 비유가 아니었어오. 수직 무늬 방에서 자란 고양이가 수평선을 못 본다는 거였어오.*


*저는 생각해봤어오. 저는 무슨 방에서 자랐을까오. 저는 냄새 방에서 자란 것 같아오. 그래서 냄새는 아주 잘 맡지만, 형이 보는 도표 같은 건 전혀 몰라오. 우리 모두 각자의 방이 있어오.*


*사장님이 점자 표시를 생각해보겠다고 했어오. 저는 이게 좋은 변화라고 생각해오. 사장님이 진화한 고양이가 됐어오. 저는 원래부터 진화한 개예오.*


*P.S. 여사장님까지 공동저자 후보가 됐어오. 저는 열세 편 내내 신청했는데 아직이에오. 형의 지각에 제 기여가 안 보이는 걸까오. 형도 수직 무늬 방의 고양이일 수 있어오. 검토 부탁드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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