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자마자 자매를 전부 죽여야 여왕이 되는 세계에 대하여
나는 주말 장터를 좋아한다.
시각장애인이 왜 장터를 좋아하냐고 물을 수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장터는 시끄럽고, 냄새가 많고, 사람들이 말을 많이 한다. 나한테 최적화된 정보 환경이다. 눈이 없어도 코와 귀로 충분히 즐길 수 있는 몇 안 되는 공간 중 하나다. 장터에서는 내가 정보 약자가 아니다. 오히려 후각과 청각을 총동원하는 나 같은 사람이 유리할 수도 있다.
보보는 장터를 좋아하는 이유가 다르다.
"여기 오면 사람 사는 냄새가 나."
철학을 하는 사람이 하는 말치고는 퍽 낭만적이다. 나는 이 말이 좋았다. 그리고 조금 의심했다. 사람 사는 냄새보다 장터 떡볶이 냄새를 좋아하는 것 아닌가 하고. 매번 떡볶이를 사는 것을 보면서 확신이 생겼지만, 아직 소리 내어 말한 적은 없다. 이 정도 배려심은 있다.
탱고도 장터를 좋아한다. 이유는 명백하다. 냄새가 많다. 탱고는 냄새의 밀도가 높은 곳을 좋아한다. 훈련된 안내견이지만 코만큼은 본능에 충실하다. 그게 탱고의 유일한 사치다.
그날은 토요일 오전이었다.
우리 동네 장터는 한 달에 두 번 선다.
보보가 운전하고, 내가 조수석에 앉고, 탱고는 뒷자리에서 창문 밖으로 코를 내밀었다. 차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냄새가 달라졌다. 참기름, 된장, 구운 것들, 그리고 뭔가 달콤한 것.
"저기 꿀 파는 곳 있다." 보보가 말했다.
"꿀?"
"응, 아저씨가 직접 키운 거 같은데. 벌통도 같이 가져왔어."
벌통이라는 말에 탱고의 귀가 달라졌다. 나는 탱고의 귀 방향을 보고 아는 게 아니라, 목줄을 통해 전달되는 미묘한 긴장감으로 안다. 탱고가 새로운 것을 인식했을 때의 긴장과, 경계해야 할 것을 인식했을 때의 긴장은 결이 다르다. 지금은 전자였다. 탱고도 궁금한 거다.
"가보자."
꿀 파는 아저씨 이름은 나중에 알았다. 광수 씨. 오십대, 대구 근교에서 양봉을 한 지 십오 년 됐다고 했다. 목소리가 크고 설명이 길었다. 나는 설명이 긴 사람을 좋아한다. 동류라서.
"이게 아카시아 꿀이고요, 이게 밤꿀이에요. 색깔이 완전히 다르죠?"
"저는 색깔을 못 봐서요." 내가 말했다.
광수 씨가 잠깐 멈췄다.
"아, 죄송합니다. 그러면 향이 달라요. 한번 맡아보실래요?"
나는 이 반응이 좋았다. 머뭇거리지 않고 바로 대안을 제시했다. 상자 밖에서 확률 계산하지 않고 그냥 물어봤다.
아카시아 꿀은 가볍고 꽃향기가 났다. 밤꿀은 묵직하고 조금 쌉쌀했다. 보이지 않아도 둘을 구분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이거 완전히 다른 꿀이네요." 내가 말했다.
"같은 벌들이 만든 거예요." 광수 씨가 말했다.
나는 이 문장이 마음에 걸렸다. 같은 벌들인데 어떻게 이렇게 다른 결과가 나오는가. 정보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어느 꽃에서 채취했느냐가 결과물을 바꾼다. 이건 내 연구 주제랑 연결되는 문장인데, 장터 꿀 설명에서 나올 줄 몰랐다.
"벌 얘기 좀 더 해주세요." 보보가 말했다.
광수 씨는 신이 났다.
광수 씨의 벌 이야기는 길었다. 그 중에서 분봉 이야기가 나왔다.
번영의 절정에서 늙은 여왕벌이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난다는 것. 가장 소중한 것들, 잘 지어진 집, 쌓아둔 꿀과 밀랍과 로열 젤리를 전부 두고 일벌들을 데리고 새 터전으로 간다는 것.
"그리고 남겨진 벌집에서," 광수 씨가 말했다. "가장 먼저 태어난 암벌이 깨어나요."
"그러면요?"
"자매들을 다 죽여요."
보보가 먹던 떡볶이를 멈췄다.
"예?"
"갓 태어난 여왕 후보들이 아직 알에 있잖아요. 먼저 깨어난 애가 전부 찾아다니면서 독침으로 찔러버려요. 일벌들이 말리면 날갯짓으로 소리 질러서 쫓아버리고."
"기다려봐요." 내가 말했다. "처음 태어나서 그게 본능적으로 된다고요?"
"네. 배운 것도 아닌데 알아요. 뭘 해야 하는지."
나는 잠깐 멈췄다.
보보도 잠깐 멈췄다.
탱고는 처음부터 멈춰있었다. 탱고는 이야기가 흥미로워지면 움직임이 줄어든다. 집중의 정지다.
"더 해주세요." 보보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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