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 의식의 철학

왜 인간은 함께 잘 됐을 때보다 함께 망했을 때 더 친해지는가에 대하여

by김경훈

나는 낙트리를 사랑한다.


그리고 나는 낙트리를 혼자 사랑하고 싶었다.


이 두 문장이 공존하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낙트리는 경북대 캠퍼스 근처에 있는 베이커리 카페다. 사장님은 기계공학과 박사님이고, 친누님과 함께 운영하신다. 프랑스 밀을 쓰고, 레스큐어 버터를 고집하고, 초콜릿은 갈루아만 쓴다. 가격은 학생 지갑 기준이고 퀄리티는 파리 기준이다. 이 조합이 가능하다는 걸 나는 낙트리에서 처음 알았다.


보보가 이 집 잠봉뵈르를 먹고 한 말이 있다.


"자기야, 이거 파리에서 먹던 거랑 같아."


보보는 학부를 미국에서 다녔고 프랑스에서 유학한 경험이 있다. 빵에 관해서는 제법 까다로운 사람이다. 그 보보가 인정했다. 나는 그날 낙트리의 단골이 됐고, 동시에 이 사실을 아무한테도 알리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다.


그 결심이 무너진 건 내 잘못이 아니다. SNS가 문제다.



그날은 오후였다.


논문 초고를 마감한 날이었다. 이런 날은 낙트리다. 나는 탱고와 함께 단골 자리에 앉았다. 탱고도 이 집을 안다. 들어오는 순간 자세가 달라진다. 긴장이 조금 풀린다. 탱고가 좋아하는 공간이 몇 군데 있는데, 낙트리가 그중 하나다. 아마 사장누님 때문인 것 같다. 누님은 탱고를 볼 때마다 "우리 탱고 왔어?" 라고 한다. 누님한테 탱고는 손님이 아니라 단골이다.


사장누님이 까눌레 하나를 접시에 담아 가져다 주셨다.


"논문 마감했어요?"


"어떻게 아셨어요?"


"마감하면 표정이 달라요. 살아있는 표정이랑 죽어있는 표정 중간쯤."


나는 이 집이 좋다. 단골의 표정을 읽는 집.


보보한테 카톡을 보냈다.


경훈: 낙트리 와

보보: 마감했어??

경훈: 응

보보: 잠봉뵈르 있는 거 확인하고 가는 중

캠퍼스에서 낙트리까지는 도보 오 분이다. 이날은 사 분이었다. 잠봉뵈르 때문이다. 나는 이것도 빠르게 걸은 거라고 하겠지 라고 생각하며 기다렸다.

보보가 들어오며 먼저 카운터를 향해 말했다.

"사장님, 잠봉뵈르 아직 있죠?"

사장님이 웃으셨다.

"오늘 마지막이에요."


"다행이다." 보보가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자기야, 나 오늘 수업에서 학생이 나한테 대뜸 이거 물어봤어. 연대 의식이 왜 기쁨보다 고통에서 생기냐고."


"좋은 질문인데."


"그래서 오늘 자기가 설명해줘."



나는 보이스오버가 읽어준 내용을 정리해서 전달했다.


연대 의식은 고통에서 생긴다. 함께 성공한 사람보다 함께 실패한 사람에게 더 친근함을 느낀다. 그리고 친한 사람들을 갈라놓는 가장 좋은 방법이 공동의 성공을 안겨주는 것이라는, 조금 잔인한 문장까지.


보보가 잠봉뵈르를 한 입 먹으며 들었다.


치아바타 특유의 바삭한 소리가 났다. 이 집 치아바타는 소리부터 다르다. 사장님이 직접 구워낸 게 표가 난다.


"뒤르켐이잖아, 이거." 보보가 빵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빵을 내려놓은 거면 진짜 진지해진 거다. 보보에게 잠봉뵈르를 내려놓는 것은 작은 결심이 필요한 일이다. "기계적 연대랑 유기적 연대 있잖아. 고통에서 생기는 연대는 기계적 연대야. 서로 비슷하기 때문에 뭉치는 거. 같은 결핍, 같은 적, 같은 피로."


"대학원이네."


"대학원이지." 보보가 웃었다. "학부 때 슬롯학 수업에서 뒤르켐 처음 배웠을 때, 교수님이 딱 이 말씀 하셨어. 여러분 지금 기계적 연대 중입니다. 다들 웃었는데 진짜였어. 과제가 많고 학점이 무서우니까 붙어있는 거잖아."


"유기적 연대는요?" 카운터 쪽에서 사장님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가 동시에 카운터를 봤다. 사장님이 반죽을 하면서 이쪽을 향해 계셨다.


"또 들으셨어요?"


"카페가 좁아서요."


나는 낙트리가 좁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이 집은 항상 대화가 자연스럽게 섞인다.


"유기적 연대는 서로 달라서 뭉치는 거예요." 보보가 사장님한테 설명했다. "각자 다른 역할을 하니까 서로가 필요한 거죠. 기계적 연대보다 이성적이고 계약적이에요."


사장님이 잠깐 반죽을 멈추셨다.


"그럼 저랑 누나는 유기적 연대네요."


사장누님이 카운터 안쪽에서 말씀하셨다.


"우리가 학교 다닐 때는 기계적 연대였고."


사장님이 웃으셨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김경훈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안내견 탱고의 눈으로 길을 보고, 시각장애인 연구자의 눈으로 세상을 봅니다.

1,286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32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504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카지노 게임의 이전글슈뢰딩거 고양이의 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