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논문을 쓰다가 딴짓을 자주 한다.
이것은 고백이다. 정보 접근성과 정보 리터러시를 연구하는 사람이 정작 자기 정보 관리는 엉망이라는 고백. 논문 자료를 찾다가 전혀 관계없는 문헌에 빠져드는 것은 나의 고질적인 습관이고, 보보는 이것을 "자기야 또 산으로 갔지?" 라고 부른다. 나는 산으로 간 것이 아니라 정보의 지평을 넓히는 중이라고 항변하지만, 항변의 성공률은 높지 않다.
그날도 그랬다.
서울에서 발간된 1970년대 번역본 하나를 뒤지다가 솔 알린스키라는 이름을 만났다. 히피 선동가, 미국 최대 노동조합 창립자, 전직 고고학도, 알 카포네 밑에서 갱 노릇을 한 사람. 이력서를 써봤자 아무도 믿지 않을 인생이다. 이 사람이 1970년에 바카라 한 권을 냈는데, 거기에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는 열 가지 전술 법칙이 담겨 있었다.
보이스오버가 첫 번째 법칙을 읽어줬다.
"힘이란 당신이 지닌 것이 아니라, 당신이 지니고 있다고 주위 사람들이 믿고 있는 것이다."
나는 잠시 멈췄다.
탱고가 고개를 들었다. 탱고는 내가 뭔가에 꽂히면 자세가 달라진다는 걸 안다. 3년 차 안내견의 눈치란 박사 논문 수준이다.
열 개를 끝까지 다 들었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이거, 써먹을 수 있겠는데.
먼저 맥락 설명이 필요하다.
우리 부부에게는 만성적인 갈등 지점이 하나 있다. 바로 귀가 시간이다. 나는 연구가 잘 될 때 연구실에서 늦게까지 있는 편이고, 보보는 그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보보도 철학과에서 늦게까지 있으면서 나한테는 일찍 들어오라고 한다는 점에서 이 갈등은 구조적으로 불공평하지만, 나는 그 말을 아직 소리 내어 한 적이 없다. 실행에 옮길 수 없으면 허세를 부리지 말라는 법칙을 배우기 전부터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도 나는 연구실에서 늦어지고 있었다.
오후 일곱 시, 보보한테 카톡이 왔다.
보보: 자기야 오늘 몇 시에 와
경훈: 좀 있다가
보보: 좀 있다가가 몇 시야
경훈: 좀 있다가
보보: ...
나는 알린스키 법칙 여섯 번째를 떠올렸다. 적이 수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라. 문제는 지금 수세에 몰린 쪽이 나라는 것이었다.
전술을 바꿔야 했다.
경훈: 자기야 나 오늘 엄청 중요한 거 발견했어
보보: 뭔데
경훈: 알린스키 알아?
보보: 누구
경훈: 갱스터 출신 선동가인데 칸트가 생각하는 도덕이랑 정반대로 사는 사람이야
보보: ...지금 가
도보 십 분.
이날은 팔 분 만에 왔다.
보보가 연구실 문을 열고 들어오며 말했다.
"칸트 반대로 사는 사람이 누구야."
"앉아. 들어봐."
나는 열 가지 법칙을 처음부터 읽어줬다. 보보는 들으면서 아무 말이 없었다. 보보가 조용한 건 두 가지 경우다. 완전히 관심 없거나, 완전히 빠져들었거나. 오늘은 후자였다. 발끝으로 바닥을 톡톡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보보가 흥분하면 나오는 소리다.
"이거," 보보가 열 개를 다 듣고 말했다. "칸트가 읽었으면 경기를 일으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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