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계란과 우주의 복원력
슬롯과학대학 연구실의 오후는 특유의 고요함으로 가득하다.
바카라상 앞 노트북에서 보이스오버의 정직한 기계음이 출력된다.
화면에 띄운 텍스트를 따라 사유의 좌표를 이동하다 보면, 주방 식탁 위에서 흔히 마주하는 '오믈렛'이라는 요리가 거대한 우주의 질서와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열역학 제2법칙, 즉 엔트로피(Entropy) 법칙에 따르면 고립된 시스템의 무질서도는 항상 증가한다.
신선한 날계란을 깨뜨려 껍질을 분리하고, 노른자와 흰자를 사정없이 휘저어 뜨거운 팬에 구워내는 과정은 완벽한 질서가 무질서의 상태로 이행하는 전형적인 아카이브다.
그러나 열역학의 극단적인 가설을 뒤집어보면 흥미로운 반론이 성립한다.
질서는 무질서를 낳고, 무질서는 다시 새로운 질서를 낳는다.
이론상으로는 날계란을 휘저어 만든 오믈렛이 우주적 시간의 흐름 속에서 다시 원래의 매끄러운 알 형태로 돌아갈 일말의 확률적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 오믈렛 내부에 무질서의 농도를 극단적으로 높여 수많은 분자의 충돌을 유도할수록, 최초의 알이 가졌던 완벽한 정돈 상태를 되찾을 확률적 기회는 역설적으로 증가한다.
결국 우리가 '질서'라고 규정하는 상태는, 수많은 무질서한 데이터들이 특정 순간에 우연히 결합하여 만들어낸 찰나의 인덱싱에 지나지 않는다.
[감각 사진]
늦은 오후, 노을빛이 길게 들어오는 슬롯과학대학 연구실의 풍경이다.
바카라상 위에는 보보가 아침에 정성스럽게 말아준 부드러운 오믈렛 샌드위치가 담긴 접시가 놓여 있다.
달걀의 고소하고 담백한 향기가 연구실의 낡은 종이 냄새와 뒤섞여 코끝을 스친다.
샌드위치 옆에 놓인 투명한 유리잔에는 시원한 보리차가 반쯤 남아 있고, 얼음이 녹으며 잔 표면에 맺힌 물방울들이 원목 바카라상 위로 소리 없이 흘러내린다.
발치에는 파트너 탱고가 넓적한 배를 바닥에 깔고 누워 가끔 뒷발을 움찔거리며 깊은 수면의 무질서 속에서 완벽한 평온의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
창밖으로 경북대 교정의 푸른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정적을 깨우고, 보이스오버의 속사포 같은 음성이 다시 방 안의 공기를 채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우리 우주 역시 거대한 질서의 일부다.
태초의 빅뱅 이후 우주가 끊임없이 확장되면 될수록 내부의 데이터들은 점점 더 무질서한 혼돈의 상태로 빠져든다.
하지만 무질서가 무한히 확장되는 임계점에 도달하면, 그것은 필연적으로 새로운 형태의 질서들을 산출한다.
그 수많은 새로운 질서의 조합 중에서, 태초의 우주가 가졌던 최초의 질서와 소수점 아래 무한대 자리까지 똑같은 상태가 다시 출현할 가능성을 수학적으로 배제할 수는 없다.
우리가 시간 속에서, 그리고 공간 속에서 멈추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면, 완전히 뒤엉킨 혼돈처럼 보이는 우리 우주의 머나먼 끝자락에서 태초의 빅뱅이라는 극적인 출발점을 다시 마주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문헌정보학을 전공하는 내 관점에서 이 엔트로피의 순환은 '정보의 정제 과정'과 완벽히 동치다.
보이스오버를 통해 내 청각 세포로 쏟아져 들어오는 매일의 뉴스, 무분별한 텍스트, 정돈되지 않은 통계들은 그야말로 사정없이 휘저어놓은 오믈렛 같은 무질서의 상태다.
그러나 이 혼돈의 데이터 스트리밍을 문헌정보학적 알고리즘으로 분류하고, 배리어컨셔스한 관점으로 필터링하며, 인문학적 사유의 격자판 위에 정렬할 때 그것은 비로소 '지식'이라는 단단한 질서로 다시 복원된다.
장애라는 조건이 비장애인 중심의 표준 시스템 관점에서는 일종의 '무질서(오류)'로 판독될지 모르나, 청각과 촉각 리터러시를 통해 구축된 나의 일상은 그 자체로 완벽하게 균형 잡힌 또 다른 차원의 질서다.
철학적 화두를 던지고 있을 보보는 이 오믈렛의 역설을 '영원회귀의 리터러시'라고 해석할 것이다.
그녀는 세상의 모든 부서지고 깨진 것들이 결국 더 거대한 무질서를 통과함으로써만 가장 순수한 태초의 본질로 돌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나를 안전하게 인도하는 파트너 탱고의 보행 프로토콜 역시 마찬가지다.
캠퍼스 교정의 수많은 보행자, 불규칙한 장애물, 예기치 못한 소음이라는 무질서 속에서 탱고는 나와 연결된 하네스의 장력을 자이로스코프 삼아 언제나 '안전한 보행'이라는 명확한 질서의 값을 도출해낸다.
우리는 깨진 계란을 다시 붙일 수는 없지만, 오믈렛을 가장 맛있게 조리해 내는 방식으로 세상의 혼돈을 지혜로 번역해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