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철학

by김경훈

나는 가끔 보이지 않는 것이 유리할 때가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비행기가 난기류를 만났을 때. 눈이 보이는 사람은 창밖을 본다. 구름이 뒤흔들리는 걸 보고, 날개가 떨리는 걸 보고, 옆 사람 얼굴이 하얘지는 걸 본다. 나는 아무것도 못 본다. 그냥 의자가 흔들릴 뿐이다. 덜컹거리는 버스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결과적으로 나는 난기류에서 꽤 침착한 편이다.


이것이 정보 접근성의 역설이다. 때로는 정보가 적을수록 더 잘 기능한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도 있다. 잘못된 정보를 너무 완벽하게 믿어버리면, 19도짜리 방에서 얼어 죽을 수도 있다.



이 이야기를 처음 읽은 건 화요일 오후였다.


스크린리더가 차분하게 읽어주는 동안 나는 두 번, 세 번 다시 듣게 만들었다. 보이스오버는 감정이 없다. 선원이 벽에 죽음의 과정을 새기는 대목도, 컨테이너 온도가 19도였다는 대목도, 똑같은 톤으로 읽어줬다. 그게 오히려 더 소름이 돋았다. 극적인 반전을 아무런 강조 없이 읽어주는 목소리.


"온도계는 섭씨 19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이어폰을 뺐다.


그리고 보보한테 카톡을 보냈다.


경훈: 지금 뭐 해

보보: 칸트 읽어

경훈: 잠깐 나와봐

보보: 왜

경훈: 19도에서 얼어 죽는 게 가능한지 알아?

보보: ...지금 가


보보는 철학과 연구실에서 우리 연구실까지 도보 8분 거리다. 이날은 6분 만에 왔다. 나는 그 2분이 보보가 뛰어온 시간이라고 생각하는데, 보보는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의자에 앉은 보보에게 나는 처음부터 읽어줬다.


스코틀랜드 항구, 포르투갈 포도주 운반선, 냉동 컨테이너에 갇힌 선원, 벽에 새긴 고통의 일기, 그리고 19도.


보보는 듣는 내내 아무 말이 없었다.


다 읽고 나서도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탱고가 보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보보가 조용하면 탱고는 보보를 살핀다. 탱고는 우리 집 정서 모니터링 시스템이다. 공식 직함은 안내견이지만 실질적 역할은 가정의학과 전문의에 가깝다.


"자기야," 보보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응."


"이 사람, 자기가 죽는다고 믿었잖아."


"응."


"근데 진짜 죽었잖아."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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