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한번 입어보세요.

by부스러기


“그래 들어가라."


엄마의 마지막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내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언니 한번 입어보세요. 신상이에요.”


엄마가 전화를 채 끊기도 전에 백화점 매장 안으로 손님이 들어온 모양이었다. 딸 앞에서의 투박함은 온데간데없이, 단숨에 상냥하고 부드러운 톤으로 옷을 갈아입는 다. 대부분 ‘동생’인 그곳에서 ‘언니’라고 하는 엄마. 그 찰나의 문장이 마음에 툭 걸려, 끊어진 전화기를 한참 동안 내려놓지 못했다. 수화기 너머로 들린 엄마의 카랑한 목소리는 감사하면서도, 이상하게 가슴 한구석이 저릿해 왔다.


“손님이 그러는데 그거 먹고 무릎 엄청 좋아졌대. 거기서 구할 수 있나 찾아봐라. “


엄마의 아픈 곳들은 알약 개수만큼 늘어갔다. 내가 애 둘을 길러내는 동안 엄마는 굽어갔다.


‘엄마가 일을 해서’ 내가 경단녀가 된 거라고 화풀이할 때에도 엄마는 ‘애들을 못 봐줘서 미안하다’고 했다. 사실은 내가 육아를 핑계로 심드렁해진 일에서 도망친 것인데 엄마 탓이라고 하고 싶었다. 엄마한테는 그렇게 해도 될 것 같았다. 우리 사이는, 모녀지간은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겉만 화려할 뿐 먼지 가득한 백화점 안에서, 빼빼 마른 몸으로 무거운 옷더미를 나르고 까다로운 손님들 사이를 바쁘게 오갔을 엄마의 하루가 눈에 선했다. 목구멍이 막히고 눈이 시큼했다.


시차만큼이나 멀리 떨어진 이곳, 낯선 언어와 낯선 공기 속에서 나 역시 매일 남몰래 고단함을 삼키던 참이었다. 휴대폰이 식어갈 때쯤, 엄마에게 하려던 자잘한 투정들을 가만히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쉽게 징징대지 않기로 한다. 흔들릴 때마다, 옷더미 사이에서 매끄러운 목소리로 “이거 신상이에요”를 외치는 엄마를 그려본다.


당신의 자리에서 그러하듯, 나도 내가 선택한 이 삶의 자리에서 내 몫을 해야겠지. 끊어진 휴대폰 화면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다짐 위에 그리움 하나를 가만히 포갠다.

엄마. 내가. 잘 해낼 수 있을지. 아직. 모르겠어.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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