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또…….”
올케가 나직하게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내 동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속으로 ‘포토? 사진을 말하는 건가? 이 상황에 갑자기 무슨 말이지?’ 싶었지만, 이내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애초에 올케와 나누는 대화의 절반은 거의 알아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카의 낮잠 시간이 다 되어 동생이 서둘러 짐을 쌌다.
“그래, 운전 조심히 하고. 주말에 갈 데 없으면 또 놀러 와. 제육볶음 양념하는 거 힘들면 그냥 두고, 누나가 다음에 가서 해줄게.”
“응, 누나 고마워. 참, 우리 가기 전에 사진 한번 찍을까?”
그제야 아까 올케가 조심스레 꺼냈던 발음, ‘뽀또’가 이 사진을 뜻했다는 걸 알아차렸다. 난데없이 무슨 사진인가 싶었다. 멋진 명소로 나들이를 간 것도 아니고, 그저 주말에 흔하디 흔한 집 안 거실에서 놀다 가는 길인데 말이다.
“어? 어, 좋지! 집 앞 마당에서 찍자. 누나 삼각대 있어.”
얼떨떨한 기분으로 카메라 타이머를 맞추고, 삐삐거리는 소리에 맞춰 우스꽝스럽게 서너 번을 왔다 갔다 하며 셔터를 눌렀다. 그렇게 동생네 가족을 배웅하고 난 뒤, 찍은 사진들을 카지노톡으로 전송해 주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사진이라…….’
올케는 일본 사람이다. 고등학생 때 캐나다로 유학을 와 15년 넘게 홀로 살아가다 내 동생을 만나 몇 년 전 결혼을 했고, 예쁜 조카를 낳았다. 그러다 보니 나와 동생네 부부가 만나면 한국어와 영어, 그리고 일본어가 한데 엉켜 나는 그중 절반은 알아듣지 못한 채 그저 “응, 응” 하고 웃으며 대충 얼버무리기 일쑤였다.
밴쿠버 근교로 간다고 하자, 10년 넘게 명절을 홀로 보냈던 동생은 전에 없이 흥분하며 기뻐했다. 지난 설날, 동생 집에 찾아가 함께 떡국을 끓이고 전을 부쳐 먹을 때도 연신 싱글벙글했다. 그런 동생을 보며 ‘무슨 오바는……’ 하고 심드렁하게 넘겼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순간에 서로의 거리를 좁혀왔다. 얼마 전, 이른 새벽부터 동생에게 카톡이 왔다.
“누나, 혹시 아침에 와줄 수 있어? 내가 너무 아파서…….”
평소 말수도 적고 표현도 거의 없는 무뚝뚝한 녀석이 먼저 SOS를 칠 정도면 보통 일이 아니었다. “당연하지, 금방 갈게.” 답장을 보내고 아이들을 서둘러 등교시킨 뒤 곧장 동생 집으로 달렸다. 아픈 동생을 데리고 병원 응급실을 가주고, 조카를 데이케어에 등원시키고, 마침 그날 잡혀있던 올케의 취업 면접장까지 차로 데려다주었다.
“누나, 정말 고마워.”
“뭘, 이럴려고 여기 왔지.”
올케는 운전을 무서워했다. 캐나다에서 운전을 안 하면 어떻게 사나 싶었지만, 다운타운 쪽은 대중교통이 잘 되어 있어 그럭저럭 지내는 모양이었다. 안 그래도 언어 때문에 서먹한 사이인데, 동생이 아파 누워 있으니 집안 공기가 왠지 모르게 더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둘이서 끙끙대며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모습을 보며 얼마나 고단하고 예민할까 싶었다. 그 뒤로도 종종 동생 집에 들러 조카를 봐주곤 했다. 행여 올케가 점심을 신경쓸까 봐, 매번 도시락을 싸 들고 가 조카만 쏙 데리고 밖으로 나와 실컷 놀아준 뒤 들어갔다.
나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 선을 그으며,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올케의 마음은 또 달랐던 모양이다. 부모님 품을 일찍 떠나 홀로 외로움과 싸우며 단단해져야 했던 시간들. 늘 스스로를 바카라임져야 했던 올케에게, 내가 온 것은 단순히 ‘남편의 누나’가 아니었다.
아주 친밀한 사이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정말 위급할 때 전화하면 언제든 달려와 줄 수 있는 ‘내 편’이 지척에 존재한다는 사실. 조카에게 엄마와 아빠 말고도 사랑을 내어주고 돌봐줄 또 다른 가족이 생겼다는 기쁨. 그 모든 애틋한 마음이 올케가 발음했던 ‘뽀..또’라는 단어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삼각대 앞에서 멋쩍게 포즈를 취했던 사진 속 모습처럼, 멀게만 느껴졌던 우리 사이의 거리가 그렇게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