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논, 밭만 보다가 밴쿠버 시내가 가까워지자 높은 건물이 보인다. 좁은 도로에 엉켜있는 차들을 보니, 기분이 좋아진다. 빽빽한 건물 그늘이 드리워진 인도에 바바리코트 깃을 세우며 가죽 숄더백을 매고 걷고 있는 내가 있다. 약에 취해 있는 사람들이나 홈리스도 간혹 보이지만, 그것이 도시의 어두운 면 아니겠어. 라며 쿨하게 스마트폰을 꺼내 미팅 장소를 확인한다.
하지만 현실은 양반다리 하기 편한 고무줄 바지에 붙지 않는 맨투맨 옷을 입고, 에코백에 보냉백을 주렁주렁 어깨에 맨, 입 냄새날 것 같은 누런 동양인 키 작은 아주머니일 뿐.
그 순간, 이상하게 스마트폰 속 남의 삶이 궁금해진다.
“애들이 알아서 자기 주도 공부를 했어요, 감사한 일이죠 호호호.. “자식 자랑하는 SNS를 염탐 중인 나. 초라해진 마음을 남의 삶으로 덮어보려는 심보가 일렁인다. 육아가 직업이 된 내가 보일 수 있는 성과는 오직 자식이 돼 버렸다. 이내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생각인지, 곧 머리를 털고 눈을 껌뻑이며 다시 관광객 모드로 바꾼다. 자기혐오에 빠지는 것만큼 시간 낭비가 없다.
찍고, 찍고, 돌다가 결국 스탠리 파크 놀이터에서 제일 재밌게 놀았다. 비가 부슬부슬 내려 밴쿠버 공립 도서관으로 피했다. 뜻하지 않게 한국바카라이 많이 있어 둘째는 당연하고 첫째까지 바카라을 뜯어먹을 기세로 읽기 시작했다. 그 틈에 살짝 나와 건물과 길, 사람들을 구경하며 공상에 빠졌다 나왔다 했다. 혼자만의 시간, 몇 가닥이었지만 반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