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입의 여백

몸을 접으러 갔다가 마음을 폈다

by해루아 healua

저녁을 소식한 날이면 이상하게 잠을 일찍 청한다. 다음 날 아침이 기다려지기 때문이다.


눈을 뜨면 무엇을 먹을지 생각한다. 냉장고를 열어보고, 어제 사둔 과일을 꺼내고, 따뜻한 차와 함께 먹을 아침을 그려본다.


배고픔이 이렇게 작은 설렘이 될 때가 있다.


남들이 들으면 조금 엉뚱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이런 작은 설렘이 하루를 기다리게 하는 힘이 된다. 내 삶에서 음식은 꽤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요즘 자주 쓰는 말 중에 ‘페어링(pairing)’이라는 단어가 있다. 블루투스로 기기를 연결할 때도 쓰고, 와인과 잘 어울리는 음식을 이야기할 때도 쓴다. 서로 다른 것이 만나 더 좋은 조합을 만들어내는 것.


생각해 보면 내 삶에도 음식과의 페어링이 꽤 많다. 따뜻한 차와 바삭한 군만두, 그릭 요거트와 고소한 견과류, 일본 라멘과 먹는 200ml 생맥주 한 잔.


그래서 여행을 가면 가장 기다려지는 것도 '음식'이다. 무엇을 볼지보다 무엇을 먹을지가 더 궁금할 때도 있다. 메뉴판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하나만 고르기 아쉬워 여러 가지를 주문한다.


누군가는 “다 먹지도 못할 텐데 왜 이렇게 많이 시켜?”라고 하지만, 나에게 음식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일이 아니다. 음식이 만들어내는 경험 자체가 좋다.


접시에 담긴 모양을 보는 것도 좋고, 음식 냄새가 퍼지는 순간도 좋다. 입안에 넣었을 때 음식마다 다르게 느껴지는 식감도 재미있다. 익숙한 음식을 다시 먹는 즐거움도 있지만, 처음 보는 음식을 골라 새로운 맛을 알아가는 순간은 더 설렌다.


문제는 이제 예전처럼 많이 먹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한때는 대식가라는 말을 들어도 아무렇지 않았다. 먹고 싶은 만큼 먹고도 괜찮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먹는 만큼 속이 불편해졌다. 마음은 더 먹고 싶은데 위가 먼저 그만하라고 말한다.


그런 나에게 요가 선생님이 뜻밖의 이야기를 꺼내셨다.


“여러분,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빈속으로 지내보세요. 위를 삼등분한다고 생각하세요. 3분의 1은 음식, 3분의 1은 물, 3분의 1은 공기로 남겨두세요."


먹는 게 낙인 나에게는 꽤 어려운 말이었다.


‘먹는 게 이렇게 좋은데, 비워두라고? 그것도 요가 수업이 1시간 30분인데..."


특히 나는 아침을 맛있고 든든하게 먹어야 하루를 잘 보낼 수 있다고 믿어왔다. 그런데 요가를 하다 보면 그 믿음이 조금 흔들릴 때가 있었다. 아침부터 배부르게 먹은 날에는 몸을 비트는 동작을 할 때마다 속이 묵직했다. 몸은 움직이고 싶은데 배가 따라오지 않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큰마음을 먹고 나만의 작은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요가 수업이 있는 날에는 평소보다 조금 가볍게 먹어보기로 했다. 처음부터 아예 굶는 건 어려웠다. 방울토마토를 몇 알 먹거나, 요거트에 견과류 한 줌을 곁들이는 정도로 허기를 달랬다.


처음에는 의심쩍었다.


‘과연 이렇게 먹고 버틸 수 있을까?’


그런데 몇 번 반복하다 보니 몸이 조금씩 적응했다. 배가 비어 있다는 사실이 처음처럼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몸이 가벼우니 요가 동작에 집중하기가 더 편했다.


나는 그동안 배부른 것과 만족하는 것을 같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많이 먹어야 만족스럽고, 가득 채워야 든든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조금 비워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비어 있는 만큼 한입의 맛이 더 또렷하게 느껴지고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아침에 먹는 제철 과일도 천천히 먹으면서 더 음미하게 됐다.


먹는 즐거움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좋아하는 것을 더 오래 즐기기 위해 조금 덜어내는 법을 계속 배우는 중이다.


생각해 보면 비움은 음식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하루에도 우리는 수많은 것을 채우며 살아간다.


해야 할 일로 하루를 채우고, 뜯지도 않은 택배와 버리지 못한 예쁜 쓰레기로 공간을 채우느라 정작 여유를 둘 자리는 없다. 걱정과 미래의 불안이 머릿속마저 비집고 들어온다. 때로는 이미 지나간 과거를 꼭 붙잡은 채 마음을 가득 채워버리도록 허락한다.


그러다 보면 내게 정말 필요하고, 중요한 것들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요가 매트 위에서 몸을 비틀며, 식탁 앞에서는 숟가락을 잠시 내려놓으며 생각한다.


"식탁 위에도, 요가 매트 위에도, 내 마음 한편에도 작은 여백을 남겨두자. 무언가를 가득 채워야 한다는 생각에서, 이제는 조금 벗어나도 괜찮으니까."


나는 여전히 음식을 좋아한다. 여행을 가면 맛있는 것을 찾아다니고, 새로운 메뉴 앞에서 한참 고민하며, 좋아하는 음식은 여전히 많이 먹고 싶다.


다만 이제는 멈추는 방법을 안다.


맛있는 것을 많이 먹는 것과 맛있는 것을 온전히 느끼는 것은 조금 다른 일이라는 것을.


무조건 채운다고 다 내 것이 되는 건 아니었다.


가득 채워야 든든하다고 믿었던 나에게, 비워두는 것도 하나의 충만함이라는 것을 배웠다.


이번에는 요가 선생님을 통해 필요한 만큼만 채우고 나머지는 비워두는 지혜를 얻었다.


해루아의 세 번째 온라인카지노북 《몸을 접으러 갔다가 마음을 폈다》는 매주 화, 목 요가 매트 위에서 배운 삶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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