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의 얼굴을 한 불성실
일 년 만의 휴가였다. 그 사람은 바다가 보이는 방을 잡았다.
창을 열자 파도 소리가 좋았다. 딱 삼 분이었다. 삼 분이 지나자 손이 먼저 노트북을 향했다. 그냥 확인만, 딱 한 번만. 그렇게 열어 놓은 화면 앞에서 오후가 다 갔다. 바다는 창밖에 그대로 있었지만, 한 번도 제대로 보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쉬려고 왔는데, 막상 쉬려고 하자 견딜 수가 없었다. 손이 비면 마음이 죄어 왔다. 그래서 그 사람은 쉬러 와서 다시 일을 폈다. 그게 차라리 편했다.
회사에서 그 사람은 성실한 사람으로 통했다. 시키지 않아도 가장 늦게까지 남았다. 사실 그 회사에는 시키는 사람이 없었다. 출퇴근도 일하는 방식도 각자 알아서였다. 그런데 바로 그 자유가 문제였다. 아무도 퇴근하라 하지 않으니 퇴근할 이유도 없었다. 옆자리가 밤을 새우면 그 사람도 새웠다. 시키는 사람은 없는데, 모두가 서로의 감독이었다.
그 마음을 들여다본다. 그 사람은 일이 좋아서가 아니라, 일하지 않는 자기를 견딜 수 없어서 일한다. 일을 놓으면 불안이 밀려온다. 쓸모없어지는 것 같고, 텅 비는 것 같다. 그래서 쉬지 못한다. 쉬면 그 빈 데가 드러나니까.
세상은 그 사람을 성실하다고 불렀다. 그런데 여기 반전이 있다. 그 사람은 세상이 요구한 일에는 성실하면서, 정작 자기 자신에게만은 불성실했다.
몸이 보내는 신호도, 마음이 원하는 것도 한 번 돌아보지 않았으니까. 남이 정한 성과에는 죽도록 성실하면서, 진짜 자기에게는 눈길 한번 주지 않는 것. 그것은 성실이 아니라, 성실의 얼굴을 한 불성실이었다.
그런데 그 사람을 밤새 몰아붙인 사람은 대체 누구일까. 사장도 상사도 아니다. 몰아붙인 것은 다름 아닌 그 사람 자신이었다.
예전의 부림에는 미워할 주인이라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부리는 자와 부림 받는 자가 한 사람이다. 내가 나를 부린다. 그러니 저항할 수도, 원망할 대상도 없다. 채찍을 쥔 손이 내 손이니까. 그 사람이 누린 자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그 자유는 선물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감독을 밖에서 안으로 들여놓은 것이었다. 밖의 감독은 퇴근이라도 하지만, 안의 감독은 잠들지 않는다.
자유는 불성실을 더 깊게 했다. 밤을 새울지 말지 정할 수 있었지만, 정작 무엇을 원하는지는 묻지 않았다. 남들이 새우니 새웠고, 안 하면 뒤처질까 봐 했다. 그렇게 그 사람은 스스로를 갈아 넣으면서도, 그것을 자기 뜻이라 믿었다. 자율이라는 이름이 그 불성실을 덮었다.
여기에 일 중독의 가장 무서운 데가 있다. 다른 중독은 슬롯가 말린다. 그런데 일 중독은 슬롯가 오히려 상을 준다. 성실하다고, 대단하다고. 그래서 말려 주는 사람이 없고, 빠져나올 이유도 사라진다. 몸이 무너지고 마음이 비어 가는데도, 주위에서는 박수를 친다. 채찍을 쥔 손을, 사람들은 훈장인 줄 안다.
그러니 당신에게 말하고 싶다. 혹시 당신도 쉬는 것이 불편한 사람이라면, 당신을 탓하지 말기를. 당신이 쉬지 못하는 것은 당신 안의 빈 데가 드러날까 봐 두려워서일지 모른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자기를 태우는 일에 상을 주고 멈추는 이를 도태로 모는 세상이 심어 둔 것이다.
그러니 잠깐, 자기에게 처음으로 물어봐도 된다. 내가 아무것도 이루지 않아도, 나는 나인가. 그렇다. 당신은 당신이다. 성과를 내지 않아도, 뒤처져도 당신은 사라지지 않는다. 세상이 요구한 모든 일에 성실했던 그 마음을, 이제 딱 한 사람에게만 돌리면 된다. 바로 당신 자신에게.
바다는 당신이 노트북을 여는 동안에도 내내 거기 있었다. 이제 그 파도 소리를,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들어도 된다. 그것은 뒤처지는 일이 아니라, 그동안 불성실했던 당신에게로 돌아가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