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중독 1

아이를 위한다는 말 뒤에서

by응시

아이의 시험 점수를 듣고 기분이 가라앉은 적이 있다면, 잠깐 멈추게 된다. 그 점수는 내 것이 아닌데, 왜 내 기분이 거기 매여 있을까.


우리는 헬리콥터 맘이라는 말을 안다. 아이 위를 떠나지 않고 맴도는 엄마. 스케줄을 분 단위로 짜고, 친구를 고르고, 문제집 넘기는 속도까지 들여다본다. 사람들은 극성이라 부르고, 나는 저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아이가 상을 받으면 우쭐하고, 남의 아이와 비교하다 마음이 시끄럽고, 아이가 잘 풀리면 내 삶이 증명되는 것 같던 순간. 그 순간들을 모으면, 우리는 그 엄마와 같은 선 위에 서 있다. 맴도는 높이가 다를 뿐이다.


헬리콥터는 왜 내려오지 않을까. 땅에 발을 딛는 순간 할 일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아이 위를 도는 동안에는 자기가 무엇인지 분명하다. 좋은 엄마. 내려서면 거기 무엇이 남는지 모른다. 그래서 그 손은 아이를 지키는 게 아니라 자기를 지키고 있다. 아이가 숨을 못 쉬는 건, 엄마가 숨을 못 쉬기 때문이다.


저녁 일곱 시. 그 여자는 아이 방 문 앞에 서 있다. 문 안에서 게임 소리가 새어 나온다. 낮에 몰래 열어 본 아이의 휴대폰에는 학원 결석 문자가 있었고, 그 밑으로 게임 랭킹을 캡처한 사진이 가득했다. 그 화면을 보는 동안 심장이 바닥으로 꺼지는 것 같았다.


그 여자는 옆집 아이가 전교 몇 등을 했는지 안다.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잠을 설친다. 내 아이만 뒤처지는 것 같아서. 아이가 떨어지면, 자기가 떨어진 것 같다.


문을 두드린다. "그만하라고 했지. 엄마가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야." 대답이 없다. 어제도 그제도 한 말이다. 말할 때마다 문 안의 침묵이 더 단단해지는 걸 느끼면서도 멈추지 못한다. 멈추면 그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 여자는 아이를 사랑한다. 밤늦도록 학원 앞에서 기다리고, 자기 옷은 못 사도 아이 것은 산다. 누가 봐도 헌신이다. 그런데 그 헌신을 따라가 보면 어느 지점에서 방향이 슬그머니 바뀐다. 처음에는 아이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는데, 어느새 아이가 잘돼야 내가 견딜 수 있는 마음으로 바뀐다.


심리학에 자기 대상이라는 말이 있다. 쉽게 말하면, 내 마음을 지탱해 주는 거울 같은 사람이다. 어린아이가 부모의 눈을 보며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 느끼듯, 누구나 자기를 비춰 줄 거울이 필요하다. 그 여자에게는 아이가 그 거울이 되었다. 아이가 잘 풀려야 자기 삶이 헛되지 않았다고 느낀다. 거울이 흐려지면 자기 얼굴을 잃는다. 그래서 아이의 작은 흔들림에도 그토록 불안하다.


아이를 위하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아이를 통해 자기를 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