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 있기가 두려웠다.
이야기
그 여자는 잠을 자려고 마셨다.
언제부턴가 밤이 길어졌다. 불을 끄고 누우면 잠은 오지 않았다. 천장만 보았다. 그러다 한 잔을 마셨다. 와인 한 잔이면 몸이 노곤해졌고, 스르르 잠이 들었다. 약도 아니고 그저 한 잔인데 잠이 오니 다행이라 여겼다.
그런데 한 잔이 두 잔이 되었다. 같은 한 잔으로는 예전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양이 늘어도 걱정하지 않았다. 술꾼처럼 마시는 것도 아니고, 잠을 위한 것이었으니까.
이상한 일이 있었다. 잠이 점점 얕아졌다. 마시고 곯아떨어지긴 했다. 그런데 새벽이면 어김없이 눈이 떠졌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다시 잠들지 못했다. 다음 날은 더 피곤했다. 그 피로 때문에 밤이 더 무서웠다. 그래서 또 마셨다.
남편도 아이들도 잠든 밤이었다. 주방에 혼자 서서 마셨다. 그 시간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말할 일도 아니라 여겼다. 그저 잠 좀 자려는 것뿐이었으니까.
어느 밤, 술병을 여는 손이 가늘게 떨렸다. 그 떨림을 보고서야, 그 여자는 처음 멈칫했다.
들여다보기
그 여자에게는 아직 이름이 없었다. 알코올 중독이라는 말은 자기와 상관없는 말 같았다.
하지만 멈추려는데 멈추지 못하고, 양이 늘고, 끊으면 몸이 떨린다. 의학은 이것을 알코올 사용 장애라 부른다. 길에 쓰러진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주방에서 잠을 위해 한 잔씩 기울이던 그 여자도, 이미 그 길을 걷고 있었다.
이제 두 번 들어가야 한다.
먼저 한 겹. 술은 그 여자의 잠을 돕지 않았다. 망치고 있었다.
술은 빨리 곯아떨어지게 한다. 그래서 잠드는 약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몸이 술을 분해하고 나면, 잠은 오히려 얕아지고 끊긴다. 새벽에 눈이 떠지는 일이 그래서 온다.
그 새벽의 두근거림과 깨어남은, 단순한 불면만은 아니었다. 매일 밤 들어오던 술이 몸에서 빠져나가며 생기는, 금단의 초입일 수 있었다. 그래서 또 한 잔을 찾으면 가라앉았다. 그 여자는 잠을 위해 마셨다. 그런데 그 술이 잠을 빼앗았다. 빼앗긴 잠을 메우려 또 마셨다. 그 술이 또 잠을 빼앗았다. 술이 불면을 고치는 것이 아니었다. 불면을 만들고 있었다.
여기서 한 겹 더 내려가야 한다. 그 여자는 왜 그토록 잠이 오지 않았나.
밤이 되면 올라오는 무언가가 있었다.
낮에는 괜찮았다. 할 일이 있었다. 챙길 사람이 있었다. 불러 주는 이름이 있었다. 그런데 불을 끄고 혼자 누우면, 낮에는 덮여 있던 것이 떠올랐다. 외로움이라기엔 더 깊었다. 허기라기엔 더 막막했다. 다들 잠든 집에서 혼자 깨어 그것과 마주하는 일이, 그 여자는 두려웠다. 잠이 안 온 게 아니었다. 깨어서 그것을 느끼는 게 무서웠다.
그러니 술은 잠드는 약이 아니었다. 깨어 있는 자기를 잠시 꺼 주는 스위치였다.
물론 술에는 즐거움이 있다. 긴장이 풀리고, 사람과 가까워지고, 무거운 것이 가벼워진다. 그런데 그 즐거움은 무언가를 얻어서 오는 게 아니라, 덜어 내서 오는 것이다. 쇼핑이 채워서 기뻤다면, 술은 비워서 편했다. 처음엔 과한 긴장을 덜어 냈다. 그러다 덜어 낼 것이 없어지면, 자기 자신을 덜어 내기 시작한다.
그 막막함을 느끼지 않게, 자기를 무디게 만드는 것. 쇼핑하던 사람은 상자로 빈 데를 채우려 했다. 이 여자는 술로 빈 데를 지우려 했다. 채우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안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더 깊이 가라앉았다.
그 여자가 정말 견디지 못한 것은 불면이 아니었다. 혼자 깨어 있는 밤이었다. 잠들려고 마신 게 아니라, 깨어 있기가 두려워 마셨다.
한 걸음 물러서서
물러서서 보면 다른 그림이 보인다.
이 일은 술을 가리지 않고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다만 숨는 법이 다르다. 남자의 술은 회식에서, 퇴근길 한잔에서 흔해 빠진 일이 된다. 그래서 병인 줄도 모르고 지나간다. 여자의 술은 반대다. 엄마가, 아내가 술을 마신다는 한마디가 무서워 주방 안쪽으로 더 깊이 숨는다. 한쪽은 너무 흔해서 안 보인다. 한쪽은 너무 부끄러워 숨어서 안 보인다. 그렇게 둘 다 이름도 얻지 못한 채 곪는다.
게다가 술은, 세상이 대놓고 권하는 거의 유일한 중독이다. 다른 중독은 숨어서 하지만, 술은 권하며 한다. 거절하면 분위기를 깨는 사람이 되고, 빼면 유난스러운 사람이 된다. 한 잔 더, 한 잔 더. 그렇게 떠밀린 잔이 쌓여 습관이 되고, 습관이 의존이 된다. 그래 놓고 세상은 그 잔에 이름을 붙인다. 하루 끝의 위로, 어른의 보상. 잠 못 드는 밤이 늘어나는 세상에서, 가장 값싸고 가까운 위안으로 술을 들이민다. 상처는 한쪽에서 내고, 약은 다른 쪽에서 판다.
빈 데를 무언가로 지우려는 길은 술만이 아니다. 누구는 잠을 핑계로 술을 늘린다. 누구는 처방받은 약마저, 치료가 아니라 자기를 꺼 버리는 도구로 붙들기도 한다. 합법이냐 아니냐, 술이냐 약이냐가 다를 뿐이다. 깨어 있는 자기를 견디지 못해 무언가로 꺼 버리려는 마음은 같다.
다만 이 글에서는 한 가지를 더 말해야 한다. 앞의 중독들과 술이 다른 점이 있다. 술은 마음만이 아니라 몸을 무너뜨린다. 오래 마신 사람이 갑자기 혼자 끊으면 몸이 위험해진다. 손이 떨리고, 식은땀이 나고, 심하면 목숨까지 위태로운 금단이 온다. 그래서 이것만은 분명히 해 두고 싶다.
당신도 어쩌면, 잠을 핑계로 한 잔씩 기울여 온 밤을 안다.
그것은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다. 혼자 깨어 있는 밤이 너무 막막해서, 그 밤을 견뎌 보려던 서툰 방법이었을 뿐이다.
다만 끊는 일만은 혼자 하려 하지 마라. 술을 오래 곁에 둔 사람일수록 혼자 끊는 일은 위험하다. 술 문제로 힘들 때는 지역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에 연락해도 된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면 정신건강상담전화 1577-0199, 또는 국번 없이 129에서 가까운 도움을 안내받을 수 있다. 부끄러운 전화가 아니다.
다그치려는 게 아니다. 잠 못 드는 그 밤에 정말 필요했던 것은 한 잔이 아니라, 그 막막함을 같이 들여다봐 줄 누군가였다. 자기를 꺼 버리는 잔이 아니라, 내일 아침까지 데려다줄 손이 필요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