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우려 한 게 아니라, 도망치고 있었다
이야기
그 여자에게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일이 있었다.
겉으로는 멀쩡했다. 일을 했고, 사람들과 웃었고, 성실하다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 혼자가 되는 밤이면, 견딜 수 없는 무언가가 올라왔다. 외로움이라기엔 더 깊고, 허기라기엔 더 막막한 것. 그 여자는 그것을 가라앉히는 자기만의 방법을 알고 있었다.
낯선 사람을 만나기도 했고, 화면 속으로 도망치기도 했다. 그 순간만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비어 있던 자리가 잠깐 채워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끝나고 나면 늘 같았다. 채워진 자리에 더 큰 것이 밀려왔다. 만족이 아니라 수치였다. 또 했다는 자괴감, 이러면 안 되는데 또 그랬다는 자바카라. 그 여자는 자기를 더럽다고 여겼다.
그래서 그 수치를 견디려고, 다시 그 방법을 찾았다. 수치를 달래는 길이, 다시 수치를 만드는 길이었다. 빠져나올 수 없는 고리였다.
이상한 건, 그 여자가 정작 사랑은 깊이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누군가 진심으로 다가오면, 그 여자는 달아났다. 몸은 그렇게 가까이 가면서, 마음은 한 번도 열지 못했다.
들여다보기
그 여자에게 붙는 말은 가혹하다. 밝히는 여자. 문란한 여자.
틀렸다. 이건 욕망이 넘쳐서가 아니다. 멈추려는데 멈추지 못하는 이런 상태를 설명할 때, 의학은 강박적 성행동 장애라는 이름을 쓰기도 한다. 강박이라 해도, 흔히 떠올리는 결벽의 강박과는 다르다. 멈출 수 없는 충동에 가깝다. 도박을 못 멈추고 쇼핑을 못 멈추는 그 마음과, 같은 자리에 있다.
분명히 해 둘 것이 있다. 성을 원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즐기는 것도, 자유롭게 누리는 것도 그 자체로 아무 잘못이 없다. 빼앗겨선 안 될 권리다. 그 여자의 문제는 성을 원한 데 있지 않았다. 원치 않으면서도 멈추지 못한 데 있었다. 기준은 얼마나 자주 하느냐가 아니라, 자기 뜻대로 멈출 수 있느냐다. 그리고 단순한 죄바카라감이나 세상의 손가락질만으로 병이 되는 것도 아니다. 삶이 무너지고, 멈추려 해도 멈추지 못할 때, 비로소 문제의 이름이 붙는다. 자유롭게 누리는 성과, 멈추고 싶은데 끌려다니는 성은 전혀 다르다. 이 글이 들여다보는 건 오직 뒤엣것이다.
이제 두 번 들어가야 한다.
먼저 한 겹. 그 여자가 좇은 건 쾌락이 아니었다.
쾌락이 목적이었다면, 끝난 뒤에 만족이 남았을 것이다. 그런데 수치가 남았다. 좋아서 한 일이 어떻게 끝나자마자 부끄러움이 되겠는가. 그러니 그 여자가 한 건 즐기는 일이 아니라, 무언가를 끄는 일이었다. 혼자인 밤마다 올라오던 그 막막함, 안이 텅 빈 그 느낌. 성적인 그 강렬함만이 잠깐 그것을 덮어 주었다. 쾌락을 좇은 게 아니라, 공허를 끈 것이다.
쇼핑하던 사람이 상자로, 도박하던 사람이 판돈으로 빈 데를 메우려 했듯, 그 여자는 몸으로 메우려 했다.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건 같았다. 빈 것이 몸으로 메울 자리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으니까.
여기서 한 겹 더 내려가야 한다. 그 여자는 왜 정작 사랑 앞에서는 달아났나.
진짜 가까워지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다 여는 일에는 위험이 따른다. 거절당할 위험, 버려질 위험, 못난 자기까지 다 들킬 위험. 그 여자는 그 위험을 견딜 수 없었다. 그런데 몸은 달랐다. 몸은 가장 가까이 가면서도, 마음은 한 치도 열지 않을 수 있었다. 낯선 사람일수록, 한 번 뿐일수록 더 안전했다. 두 번 볼 일이 없으니, 들킬 일도 없으니까.
그래서 성은 그 여자에게 친밀함이 아니라, 친밀함의 흉내였다. 가장 가까운 척하면서, 실은 가장 먼 자리에 머무는 법. 그 여자가 몸으로 다가간 건 사랑이 무서워서였다.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과 가까워지기 두려운 마음 사이에서, 몸만 보내고 마음은 숨긴 것이다.
그러니 그 여자의 문제는 욕망이 많은 게 아니었다. 사랑이 너무 무서웠던 것이다.
한 걸음 물러서서
여기서 물러서면 다른 그림이 보인다.
이 일은 사실 남자에게 더 흔하다. 끝없이 새로운 자극을 파는 거대한 산업이 있고, 그 산업을 떠받치는 주된 손도, 위세를 이용해 아랫사람을 도구로 쓰고도 합의였다며 빠져나가는 자들도, 대개 남자다. 재벌가의 별장에서, 권력자의 호텔방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들. 권력을 쥔 자들도 안은 비었을 것이다. 그러나 빈 데가 있다고 해서, 남을 도구로 쓸 면허가 생기는 건 아니다. 같은 공허라도, 자기 안으로 삼켜 혼자 무너지는 사람이 있고, 남에게 쏟아부어 다른 이를 무너뜨리는 사람이 있다. 앞엣것에는 위로가 필요하고, 뒤엣것에는 바카라임이 따른다.
그런데 세상은 거꾸로 갚는다. 남을 짓밟은 자는 멀쩡히 살아남고, 혼자 자기를 갉은 사람이 더 무겁게 단죄받는다. 그리고 그 단죄는 여자에게 가장 가혹하다.
남자의 성 중독은 남자가 다 그렇지라는 말에 덮여 일화가 되지만, 여자의 성 중독은 헤픈 여자라는 한마디로 인생 전체가 부정된다. 그래서 여자는 더 깊이 숨는다. 이름조차 붙이지 못하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수치가 자기혐오가 되고 자기혐오가 자기를 무너뜨릴 때까지, 혼자 곪는다. 더 흔한 건 남자였지만, 더 깊이 갇히는 건 여자다.
세상은 한쪽 손으로 성을 끝없이 부추기고, 다른 손으로 성을 욕망한 사람을 더럽다 손가락질한다. 부추기는 손과 단죄하는 손이, 같은 세상의 두 손이다. 그래 놓고 그 수치는, 가장 약한 자리에 사는 사람에게 가장 무겁게 지운다.
수치에는 여러 겹이 있다. 멈추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자괴감은 실재한다. 누군가를 속이거나 아프게 했다면, 그 바카라임도 마주해야 한다. 그러나 그 위에 두껍게 덧입혀진 수치, 성을 원하는 마음 자체가 더럽다는 그 낙인은, 그 여자가 만든 게 아니다. 세상이 입혀 준 옷이다.
당신도 어쩌면,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밤을 지나왔을지 모른다.
그건 당신이 더러워서가 아니다. 안이 빈 채로, 그래도 그 밤을 어떻게든 건너 보려던 사람의, 서툰 방법이었을 뿐이다. 성을 원한 것이 죄가 아니고, 멈추지 못한 것이 의지박약이 아니다. 그러나 누군가를 속이거나 다치게 했다면, 그 바카라임은 따로 남는다.
다만 하나만 같이 보고 싶다. 당신이 정말 목말랐던 건 몸이 아니라, 마음이 가닿는 자리였다는 것을. 들킬까 두려워 숨겼던 그 마음을, 언젠가 한 사람 앞에 다 열어 보아도 괜찮다는 것을. 혼자 견디기 어렵다면, 이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도움을 청해도 되는 일이다. 그 손이 다른 것을 쥘 수도 있다. 잠깐의 가까움 말고, 오래 머무는 가까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