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쉬는 날이었어?”
부처님 오신 날이면 놀랍니다.
예수님 오신 날은 잘 기억하면서,
부처님 오신 날은 자꾸 까먹는 나.
명상 덕분에
예수님보다 부처님을 더 가깝게 느끼면서도 그렇습니다.
8년 전,
처음 명상을 시작했을 땐
지독히도 세속적이었습니다.
상황을 빨리 바꾸고 싶었거든요.
빚에서 탈출하고 싶었고,
떵떵거리며 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명상은
점점 바깥이 아닌 안으로 데려갔습니다.
세상을 움직이는 법보다,
나를 바라보는 법부터 보여주었어요.
그럼에도 가끔은
“어? 일이 이렇게도 풀리네?”
싶은 순간들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그런 변화만 붙잡고 이야기했을 거예요.
무언가를 이루는 법에 대해서요.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가장 큰 변화는 습관이었습니다.
매일 잠시라도 가만히 앉아 있는 습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나와 함께 머무는 시간.
아침에 한 번, 밤에 한 번.
조용히 눈을 감고 시선을 내 안에 두는 시간.
가만히 앉아 있는다고 해서
금세 마음이 평화로워지진 않았습니다.
오히려 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내 안에도 미움이 있었고, 불안이 있었고,
누군가를 비난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그걸 못 봤습니다.
그 감정이 곧 나였거든요.
나는 분노였고, 슬픔이었고, 우울이었습니다.
그래서 감정이 올라오면 그대로 말하고 행동했습니다.
내 안의 고통은 내 것이 아니라고 밖으로 던져버린 거죠.
인정받지 못했다는 서운함. 소외될까 두려운 마음.
모든 걸 잃게 될까 불안했던 시간들.
그런 것들이 말이 되어 나갔고,
때론 침묵이 되어 주변 사람을 찌르기도 했습니다.
기대와는 달리
명상은 저를 착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진 않았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부족합니다.
다만 한 가지는 달라졌습니다.
내 마음을 모른 척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
“아, 내가 지금 두려워하고 있구나.”
“사실은 상처받아서 아픈 거구나.”
그걸 알아차리는 순간,
마음은 조금씩 부드러워졌습니다.
없애려 할 때보다 있는 그대로 바라봐줄 때,
오히려 조용히 풀리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을 거예요.
그들 안에도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 있었겠죠.
그 고통이 나에게로 흘러온 것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 아픔이 바로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용서가 쉽게 되는 것도 아니고요.
그래도 조금은 이해하게 됩니다.
사람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며 살아간다는 말.
예전엔 차갑게만 들렸는데, 요즘은 조금 다르게 들립니다.
우리는 모두 자기만의 아픔을 안은 채,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것 같아서요.
그래서 이제는
부처님이 꼭 일 년에 하루만 오시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내 안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고요함.
그 자리에 늘 조용히 머물고 계시는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