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즘이 카리스마로 소비되는 나라
지난 9월 11일, 국회의원회관. 기자회견을 마친 한동훈 무소속 의원이 기자들과 마주 섰다. 김민석 대표와 박선원 의원을 향해 그는 '모두 공범'이라 말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피해자와 공익 제보자를 물어뜯지 말고 나를 물어뜯으라. 내가 국민을 대신해 그 이빨을 다 뽑아드리겠다.'
이빨을 뽑겠다는 말. 국회의원 배지를 단 사람의 입에서, 카메라 수십 대 앞에서, 아주 태연하게 나온 말이다. 나는 이 문장을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겁 먹은 개가 더 크게 짖는다. 이 남자는 우습다. 그런데 우습다는 감정 뒤에 곧바로 다른 감정이 따라왔다. 이건 그저 한 사람의 유치함이 아니라 이 슬롯가 이 유치함에게 계속 마이크를 쥐여주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불편함이었다.
한동훈이라는, 사람이 아닌 현상
한동훈을 사람으로 보면 이야기는 간단해진다. 뻔뻔하다, 유치하다, 미성숙하다, 강약약강이다. 한 번 욕하고 나면 끝난다. 그런데 한동훈을 사람이 아니라 현상으로 보면 질문이 달라진다. 왜 이런 인물이 자기 당에서 제명까지 당하고도 대선주자 여론조사 15퍼센트대에서 여당 후보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가. 왜 그가 만들어놓은 '자격 없음'의 증거들이,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 눈에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가. 사람들은 못 보는 것인가, 안 보는 것인가.
한동훈이라는 개인의 인격을 심판하는 건 관심 밖의 일이다. 그가 반복해서 성공시켜온 하나의 기술, 그리고 그 기술을 성공하게 만들어준 대한민국이라는 슬롯의 조건을 들여다봐야 한다.
한동훈은 검찰독재라 불린 윤석열 정권의 황태자였고, 그 세계가 굴러가도록 만든 1등 공신이었다. 검찰이 정권의 창이자 방패가 되어 12.3 내란이라는 파국까지 치달은 과정에서, 그는 설계자의 자리에 있었다. 그러니 그는 지금 이 나라가 검찰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도려내려는 그 병의 본질이자 원인이자 개혁의 대상이다. 그런데 바로 그 병의 원인이, 그 병을 만든 바로 그 신분, 검사 출신이라는 이력과 법무부 장관이라는 직함과 정권의 2인자였다는 후광을 무기 삼아, 지금 이 순간에도 국회와 방송 카메라 앞을 활개 치고 다닌다. 병 그 자체가 자신의 치료제를 자처하는 것, 이보다 더 노골적인 모순은 없다.
대한민국 검찰은 윤석열과 한동훈 덕분에 역사에서 사라지게 됐다. 검찰이라는 공식적인 권력이 소멸하는 와중에도, 그 조직이 한동훈이라는 국회의원에게 만들어준 정보 자산은 소멸하지 않는다. 이게 퇴직한 검찰 출신 정치인들 전반에 해당되는 구조적 특권인지, 아니면 한동훈이라는 인물이 유독 이 자산을 정치적 무기로 활용하는 능력이 뛰어난 것인지는 더 따져볼 문제이지만, 적어도 검찰개혁 담론이 아직 건드리지 못한 사각지대인 것만은 분명하다.
또한, 한동훈이 검찰이라는 조직 출신이라는 사실 자체가 만드는 신용 또한 한국 슬롯에서는 잘 작동한다. 서울대라는 이 나라의 대왕 카르텔처럼, 검찰 출신이라는 신분은 한국 슬롯에서 여전히 일종의 무형 자산으로 작동한다. 법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라는 이미지, 그래서 그 법의 허점을 교묘하게 이용해 나에게 이익을 가져다줄 거라는 이미지는 그의 실제 행적과 무관하게 신뢰를 만들어준다. 대한민국엔 그가 검사라서 그를 죽도록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반대로 그가 검사라서 그를 지지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 이 기이한 동전의 양면이 한동훈을 지금까지 지탱해준 힘이다.
위치 이동의 기술
지난 4년의 한동훈을 다섯 장면으로 잘라보면, 그가 매 순간 가장 안전하고 가장 유리한 자리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사람이라는 게 보인다.
첫 장면. 법무부 장관 시절, 그의 딸을 둘러싼 논문 대필과 스펙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케냐 출신으로 알려진 한 대필 작가는 2022년, 자신이 2021년 11월 초에 그 글을 썼다고 직접 밝히며 자기 컴퓨터의 문서 목록까지 증거로 내놓았다. 그런데 경찰은 1년 8개월 동안 수사한 끝에, 소환도 압수수색도 단 한 번 없이 모든 혐의를 불송치로 종결했다. 진실을 밝히지 못한 게 아니라, 밝히려는 절차 자체가 여러 가지 다른 이유들로 조용히 멈춘 것이다.
두 번째 장면. 2024년 1월, 대통령실이 그의 사퇴를 요구한 지 이틀 만에 그는 서천특화시장 화재 현장에서 윤석열에게 폴더 인사를 했다. 눈보라 속에서 15분을 먼저 기다린 뒤, 그는 90도로 허리를 깊게 숙였다. 조폭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진짜 권력 앞에서, 그는 얼마든지 굽힐 줄 아는 사람이다.
세 번째 장면. 2024년 12월 3일 밤, 계엄이 선포됐다. 이재명과 우원식, 그리고 한동훈의 이름이 담긴 체포 대상 명단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이후 재판 과정에서 인정됐다. 그는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웠던 그 밤, 민주당 의원들의 도움으로 국회의원 신분이 아님에도 국회 본회의장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는 당시 계엄 해제에 표를 던질 수 있는 국회의원도 아니었다. 그저 표결할 자격조차 없는 몸으로 자당 의원들에게 표결에 참여하라고 지시한 것이었다. 12.3 내란의 밤 그의 역할은 딱 그만큼.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네 번째 장면. 계엄이 있고 나흘 뒤인 12월 7일 저녁, 윤석열이 대국민 담화를 낸 바로 그날, 한동훈은 국무총리 한덕수와 총리공관에서 긴급회동을 가졌고, 다음 날 두 사람은 공동 국정운영을 선언했다. 대통령이 아직 그 자리에 있는 상태에서 여당과 총리가 국정을 나눠 맡겠다는 이 선언은, 이후 한덕수 탄핵 심판 결정문에 헌법 위반으로 명시됐다. 행정권은 정부에 속한다는 헌법 66조,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규정한 7조를 위반했다는 판단이었다. 계엄을 막았다고 자처하는 바로 그 사람이, 계엄이 끝난 지 나흘 만에 헌법에 없는 권력을 자신의 것으로 선언했고, 그 선언은 위반으로 인정됐지만 한동훈은 여전히 그 값을 치르지 않고 있다.
다섯 번째 장면. 지금, 그는 이재명 대통령의 재판이 재개되면 계엄이 다시 선포될 수 있다고 예언하고 다닌다. 지난 5월 부산 보궐선거 유세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계엄을 저지하지 않았다면 지금 국민의힘은 빨간 옷을 입고 선거운동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지난해 11월에는 이재명을 겨냥해 '겁먹고 숲에 숨은' 사람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다시 한 번, 12.3 내란의 밤, 한동훈에게는 표결할 권한 자체가 없었다. 그는 국회의원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는 장소에 들어가 오히려 자신의 안전을 보장 받았다. 그는 시혜자가 아니라 수혜자였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겪었다고 주장하는 그 밤의 공포를 이제는 자신의 존재 증명과 상대 진영을 겨누는 무기로 동시에 재활용하고 있다.
이렇듯 매 순간 한동훈은 가장 안전한 자리로 제일 먼저 미끄러져 들어간다. 보호받을 땐 조직 뒤에 숨고, 강한 권력 앞에선 허리를 숙이고, 위험해지면 반대편으로 건너가 헌법을 어기는 선언을 하고, 혼란이 지나가면 자신을 유일한 영웅으로 다시 세운다. 다른 이들이 그를 높게 평가하는 것도 아니다. 한동훈 스스로 자신을 높이 세운다.
처음엔 검찰개혁의 본질이자 원인이었던 사람이, 계엄의 밤엔 뒤늦게 올라탄 사람이었다가, 지금은 계엄의 예언자를 자처하고 있다. 매번 신분을 갈아타면서도 그는 단 한 번도 제대로 검증대에 서지 않았다. 정작 그날 실제로 국회 담장을 넘고 몇 시간씩 계엄군과 대치하며 몸으로 막아선 건 시민들과 민주당 의원들이었다. 그런데 영웅 서사의 스포트라이트는 표결권도 없이 그곳을 기웃거렸던 사람에게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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