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그게 먹히는 나라
작가가 자기 바카라을 천 권 넘게 사는 나라
서점 직원의 교대 시간을 노렸다고 한다. 포장을 일부러 훼손해 파본을 사는 척 꾸미고, 회원으로 사면 같은 날 여러 권을 사도 한 권으로 집계된다는 걸 알고는 비회원으로 결제 이력을 쪼갰다. 전국의 교보문고 매장을 돌며 그렇게 사 모은 자기 바카라이 1,631권. 170만 부가 팔린 《언어의 온도》를 쓴 작가 이기주가 2024년 한 해 동안, 후속작 《보편의 단어》의 판매 순위를 끌어올리기 위해 벌인 일이다. 검찰은 이 작가와 출판사 대표를 9월에 재판에 넘겼다. 사재기한 물량은 그 기간 전체 판매량의 14퍼센트였고, 그 정도만으로도 분야별 베스트셀러 순위는 3, 4위권에서 2, 3위권으로 올라섰다.
이 사건에서 가장 이상한 건 범죄의 치밀함이 아니다. 이렇게까지 해서라도 지키고 싶었던 순위 두 칸이다. 광고비를 쓰는 것보다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르는 게 홍보 효과가 더 크다고 검찰은 밝혔다. 그 말은 뒤집으면 이런 뜻이 된다. 이 나라에서는 순위 그 자체가 광고보다 강력한 설득력을 가진다는 것. 누군가 검증했다는 사실 하나가, 내가 직접 읽고 듣고 판단하는 수고를 통째로 대신해 준다는 것.
이게 유독 서적 분야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는 걸 우리는 이미 안다. 음원 차트 사재기로 몇 번이나 뉴스를 탄 아이돌 팬덤들이 있었고, 상점에선 '여기 뭐가 제일 잘 나가요'부터 묻는 습관이 있고, 서점에 들어가면 베스트셀러 매대부터 훑는다.
온라인으로 넘어가면 이 쏠림은 아예 산업이 된다. 배달 앱과 쇼핑몰에서는 업체가 직원을 동원해 칭찬 후기를 조작하고 불만 후기를 숨기는 일이 오래전부터 적발돼 왔고, 올해 7월에는 병원과 식당의 검색 순위를 끌어올리려고 2만 9,000건에 가까운 허위 후기를 조직적으로 올려 19억 원 넘게 챙긴 광고업체가 부산에서 적발됐다. 적발된 707개 업체 중 병원이 34.5퍼센트로 가장 많았다. 순위를 사고파는 시장이 이미 그만큼 커졌다는 뜻이다.
온라인 공론장도 다르지 않다. 구글 산하 위협분석그룹은 올해 2분기에만 한국 정치를 다룬 유튜브 계정 449개를 조직적 여론 조작을 이유로 폐쇄했는데, 지방선거를 앞둔 5월 한 달에 전체 제재의 81.7퍼센트가 몰려 있었다. 서로 무관한 개인처럼 위장한 계정들이 몰려다니며 여론의 크기를 부풀리는 것도, 결국 검증된 순위와 다수의 목소리에 사람들이 몸을 싣는다는 그 하나의 습성을 이용한 것이다.
그리고 올해 가장 뜨거운 쏠림은 따로 있었다. 국내 증시가 활황을 타면서 개인 투자자가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주식을 사는 이른바 '빚투'가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6월 한 달에만 신용거래융자 잔고가 38조 원을 넘어섰고, 2분기 하루 평균 빚투 규모는 신용융자와 증권담보대출을 합쳐 62조 원에 달했다. 코스피 시가총액 대비 신용거래융자와 레버리지 상품 비율은 코로나 시기의 최고치마저 넘어섰다. 가상자산도 마찬가지다. 올해 초 기준 국내 가상자산 투자자는 천만 명을 넘겼다. 국민 다섯 명 중 한 명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너도나도 투자 시장에 뛰어든 사람들에게는 공통된 심리가 하나 있다. 오를 때는 내 안목 덕이고, 내릴 때는 시장이 이상했거나 누가 물을 흐렸다거나 정부 탓이라는 식이다. 심리학에서는 이걸 자기 위주 편향이라 부른다. 성공은 내 능력으로, 실패는 외부 요인으로 돌리는 아주 보편적인 인지 습관이다. 문제는 애초에 투자라는 행위 자체가 전제하는 게 있다는 거다. 나의 판단, 나의 바카라임. 그런데 지금 한국의 투자 풍경을 보면 그 개인의 판단이라는 게 실은 '뭐가 제일 잘 나가요'와 크게 다르지 않다. 빚내서 남들 다 타는 배에 함께 올라탔다가, 배가 가라앉으면 선장 탓을 하는 것.
이 편향은 개인 투자자에게만 있는 게 아니다. 오른 숫자는 자기 덕으로 여기고 싶고, 내릴 숫자에서는 먼저 발을 빼고 싶은 마음은 권력의 가장 높은 자리에서도 똑같이 작동한다. 그리고 그 숫자 자체가 이미 하나의 시장이 되어 있다.
왜 우리는 이토록 검증된 것에 몸을 싣는가.
우리는 너무 붙어 산다,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나는 어린 시절, 서울이라는 '노른자'를 감싸고 있는 경기도 위성도시, 소위 '달걀흰자'에 살았다. 달걀흰자들의 목표는 오직 하나였다. 인서울. 좋은 대학에 가서 돈 많이 버는 회사에 취직하는 것. 그 동네의 문화적 풍경은 놀랄 만큼 단조로웠다. 중학교 때 동네에 노래방이 들어섰고, 친구들과 문화를 향유한다는 건 폐쇄된 방 안에서 같은 유행가를 목청껏 따라 부르는 것, 그게 전부였다. 나름 즐거웠지만 동시에 선택지가 없다는 것의 다른 이름이기도 했다. 모두가 비슷한 노래를 부르고 비슷한 꿈을 꿨다.
이건 취향의 문제 이전에 땅의 문제이기도 하다. 2026년 8월 기준으로 대한민국 인구의 51.13퍼센트가 수도권에 산다. 서울과 인천과 경기, 남한 땅의 극히 일부에 전 국민의 절반이 몰려 산다는 뜻이다. 다세대주택에 살았을 때 나는 아랫집 아저씨가 언제 술을 먹고 들어와 싸우는지, 언제 화장실 물을 내리는지 다 알았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남의 인생이 그대로 들려오는 것, 그게 이 나라 절반의 사람들이 사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렇게 서로에 대해 속속들이 알면서도 정작 알아야 할 건 하나도 모른다는 거였다. 나는 아랫집 부부의 싸움 소리는 알아도 그 사람들 이름은 몰랐다. 아랫집이 몇 시에 씻는지는 알아도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는 몰랐다. 몰라도 될 소리는 매일 강제로 들었고, 정작 알고 싶은 건 아무도 물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런 밀도 속에서는 혼자 덩그러니 떨어져 있는 시간 자체가 사치가 된다. 문 하나만 닫으면 완전히 혼자가 될 거라는 확신이 없는 집에서는, 스스로를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보는 습관을 배울 기회도 함께 사라진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이 감정이 어디서 왔는지 가만히 앉아 되짚어보는 그 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는 채로 어른이 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 그게 이 밀도가 진짜로 앗아간 것이다.
그런데 돈을 많이 번다고 이 조건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건 아니다. 서울 용산구의 한 아파트는 100억 원대에 거래되는, 이 나라에서 가장 비싼 집 중 하나다. 그런데 이 아파트에서도 층간소음 갈등이 형사사건으로 번졌다. 한쪽이 발소리 때문에 고통받는다며 수차례 항의했고, 급기야 30센티 고무망치로 현관문을 내리치며 욕설을 퍼붓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 집 아내는 쌍둥이를 임신한 상태였고, 그중 한 아이를 잃었다. 한국에서 가장 비싼 집 중 하나에서 층간소음으로 아이를 잃었다고, 그는 언론에 토로했다. 그리고 이민을 가겠다고 했다.
100억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게 있다. 조용히 누워 걱정 없이 잠들 수 있는 고요함. 이 나라에서 그건 돈으로 살 수 있는 재화가 아니다. 벽을 두껍게 만들 수는 있어도, 벽 너머에 누가 사는지 신경 쓰지 않을 자유는 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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