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소와 혐오를 벗어나 애정과 연민을 키운 진짜 어른들.
우리는 오랫동안 정치를 감정으로 대해왔다. 좋다와 싫다, 뜨겁다와 차갑다, 팬과 안티. 세상은 복잡하고 인간은 입체적인데 단 두 칸짜리 감정 밖에서 누군가를 들여다보는 시도조차 사라지고 있는 시대다.
그래서 나는 이재명을 조금 다르게 들여다본다. 정바카라을 평가하는 정치인으로서가 아니라,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그가 어떤 생을 통과해 지금의 말투와 태도를 갖게 됐는지, 그 인문학적인 결을 보고 싶었다. 지지냐 반대냐라는 이분법적 태도를 떠나, 평생 의심 받아온 사람이 그 의심 앞에서 혐오 대신 연민을 택했다는 사실이 나를 붙잡았다. 그리고 그 들여다봄은 결국 나 자신에게로, 비슷한 방식으로 의심받고 비슷한 방식으로 상처를 통과해온 내 삶으로 돌아왔다. 어쩌면 나는 이재명이라는 사람에게 동질감을 느끼는 지도 모르겠다.
비주류의 생존법
2011년, 성남시장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재명은 자기 집무실에 CCTV를 설치했다. 보좌진 중 누구도 반기지 않았을 것이다. 권력을 쥔 사람이 스스로 카메라 앞에 서겠다는 건 투명하겠다는 선언이지만, 동시에 그 투명함 자체가 끊임없는 감시를 자청하는 일이기도 하니까. 숨길 게 없다는 말은 의심에서 벗어난다는 뜻이 아니라 언제든 확인당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그 카메라는 훗날 그를 겨누는 수사 앞에서 그를 지키는 증거로 쓰였다. 정권이 세 번 바뀌는 동안 그 작은 렌즈가 이재명이라는 사람을 설명하는 가장 정확한 상징이 됐다.
나는 이 장면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누군가는 이것을 유난이라 부르고 누군가는 전략이라 부르겠지만, 내가 보는 건 조금 다르다. 이건 평생 의심받아온 사람이 몸에 익힌 비주류의 생존법이다. 이재명은 민주당 안에서도 비주류였다. 경기도지사 시절에도, 대선 경선 과정에서도 그를 겨눈 의혹 제기는 늘 같은 팀인 민주당 안에서 먼저 시작됐다. 바깥의 적보다 안의 의심이 더 오래, 더 집요하게 그를 따라다녔다. 그러니 그가 선택한 무기가 억울함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아니라, 누구나 다시 돌려볼 수 있는 영상 기록이었던 건 당연하다. '나는 결백하다'라고 말로 주장하는 대신, 언제든 꺼내 확인할 수 있는 증거로 남겨두는 쪽을 택한 것이다.
이 기질이 어디서 왔는지를 생각하다 보면, 그의 이력서를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 어린 시절 소년공으로 공장에서 일하다 산재 사고를 당해 영구 장애를 입었고, 어머니가 일하던 시장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상대했다. 검정고시를 거쳐 사법고시에 패스해 들어간 법조계에서 주류 엘리트 기득권과 억울한 서민 피해자들을 동시에 상대했다.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라는 행정가로 보낸 시간에 당대표를 거쳐 지금의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한 사람이 이렇게까지 다른 세계를 차례로, 혹은 동시에 통과하는 일은 흔치 않다. 노동자의 언어와 상인의 언어와 법률가의 언어와 관료의 언어를 전부 몸에 새긴 사람은, 어느 테이블에 누구와 마주 앉아도 낯설어서 움츠러들 일이 없다. 어떤 사람 앞에서든 위축되지 않는다는 것은 허세가 아니라 이미 다 겪어본 사람의 관조와 차분함에 가깝다.
바로 이것이 이재명이라는 사람이 쉬운 언어, 서민의 언어를 구사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좋은 학벌에 꽃길을 걸어온 사람들은 종종 일부러 어려운 언어를 쓴다. 현학적이고 관념적인 언어와 비유, 그 어려움 자체가 곧 권위를 증명하는 방식이니까. 그런데 어려운 언어를 이해하기 힘든 사람까지 끌어안았던 사람의 언어는 반대 방향으로 단련된다. 시장 상인에게 법률 용어를 쓰면 대화가 끊긴다는 걸 몸으로 배운 사람은, 자연히 가장 쉽고 구체적이고 분명한 말을 골라 쓰는 습관을 갖게 된다. 이재명의 외교술이 유연하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외교란 결국 전혀 다른 맥락과 문화, 가치 속에 사는 사람의 두려움과 바람을 읽어내는 일이고, 그는 평생 그 연습을 해온 사람이다.
간판 없이 증명하기
조국 사태가 한창이던 2019년 가을, 서초동과 광화문에는 각각 다른 깃발을 든 사람들이 모였다. 같은 서울 하늘 아래서 어떤 이들은 '조국 수호' '내가 조국이다'와 검찰개혁을 외쳤고 어떤 이들은 조국의 사퇴를 외쳤다. 그 두 함성이 겹치지 않고 나란히 울리던 그 가을이, 지금 돌이켜보면 이 나라가 한 번 크게 갈라진 자리였다.
조국은 서울대를 나와 같은 학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나라에서 가질 수 있는 가장 두꺼운 간판을 단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간판은 정작 그가 국정의 한복판에 섰을 때 그를 지켜주지 못했다. 드러난 것은 선민의식이었고, 무능이었다. 반대로 이재명에게는 그런 간판이 하나도 없었다. 그는 오로지 성과와 숫자로, 실제로 돌아가는 행정으로 자신을 증명해야 했다. 같은 잣대를 둘에게 동시에 들이댔을 때 오히려 간판이 두꺼운 쪽이 초라해지는 역전이 일어났다. 나는 이 역전이야말로 요즘 이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가장 흥미로운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두 사람은 비슷한 연배로 같은 시대를 통과했지만 그 통과 방식은 정반대였다. 조국이 그 시절 대학과 운동권 언저리에 있을 때, 이재명은 너무 가난해서 공부와 생계를 좇느라 민주화운동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이재명은 1986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1989년 사법연수원을 수료했다. 안정적인 판검사가의 길로 들어설 기회가 왔다. 그런데 연수원 시절, 당시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던 노무현의 강연을 듣고, 안정된 자리 대신 약자 곁에 서는 가난한 변호사의 길을 택했다. 같은 나이에 완전히 다른 삶을 산 두 사람이 수십 년 뒤 대한민국 정치계에서 마주한 것이다.
이 역전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문재인 정부의 한 시절을 다시 펼쳐봐야 한다. 2019년 6월, 문재인 대통령은 윤석열을 검찰총장 후보로 지명했다. 적폐청산 수사에 앞장섰다는 이유였다. 한 달 뒤 윤석열은 총장이 됐고, 그로부터 보름 뒤 청와대는 조국을 법무부장관 후보로 지명했다. 보름이라는 시간이 그 뒤 몇 년의 정치 지형을 다 바꿔 놓았다고 생각하면, 돌이켜볼수록 허무할 만큼 짧은 간격이다. 임명장을 받던 날 나란히 웃고 있던 두 사람이 그 뒤로 완전히 다른 역사를 만들게 될 줄은, 그날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조국의 법무부장관 임명은 검찰개혁의 칼자루를 청와대가 직접 쥐겠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그 칼은 방향을 틀었다. 조국이 정식 임명된 지 불과 35일 만에 사퇴했고, 그 35일 동안 나라는 조국수호 집회와 조국사퇴 집회로 둘로 갈라졌다. 그 국면에서 김어준을 비롯한 이들의 방송은 연일 타협이 아니라 결사항전을 종용했다. 검찰에 힘을 실어줄 때도, 그 힘이 부메랑으로 돌아왔을 때도, 김어준 카르텔의 목소리는 늘 더 강경한 쪽을 가리켰다. 그리고 그 바카라임은 결국 정권 재창출의 실패로, 윤석열에게 정권을 내주는 결과로 돌아왔다. 그 정권 상실이 2024년 12월의 비상계엄으로까지 이어졌을 때, 그 밤 국회로 달려가고 이후 반 년을 광장에서 싸운 것도 결국 국민이었다.
문재인 역시 그 카르텔에 베팅을 당한 동시에 베팅을 한 사람이었다. 검찰을 적폐청산의 칼로 쓰기로 한 것도, 그 칼을 쥘 사람으로 윤석열을 세운 것도 그의 권력이 내린 결정이었지만, 조국 사태의 국면에서 타협 대신 결사항전으로 끌려간 데는 그 자신이 끌려다닌 김어준 카르텔의 압박이 있었다. 결정은 그들이 내렸지만, 그 바카라임을 끝내 짊어진 건 결국 국민이었다. 그런데 그 카르텔의 스피커들은 그날도, 지금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실제로 무너진 건 우리 공동체의 구성원, 즉 사람들 사이의 믿음이었다.
이재명이 김어준, 유시민, 조국 카르텔에 기대지 않은 건 이 장면을 가까이서 지켜봤기 때문일 것이다. 그 역시 종종 비판을 받는다. 이재명을 지지하는 이들 또한 하나의 팬덤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한 사람에 대한 지지를 발판 삼아 공공 기관인 정부의 자리, 막대한 수입과 영향력을 얻는 소수의 인플루언서와 아무 대가 없이 그저 지지하는 다수의 시민을 같은 말로 묶을 순 없다.
인문 유튜브 채널 '조하나의 아일랜드'를 운영하며, 종종 대한민국에서 '변방의 비주류' 이재명이라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 국정을 운영하며 발생하는 여러 가지 슬롯 현상과 인간 군상을 들여다 보는 나 역시, 의심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러나 누군가의 판단을 대신 해주는 역할을 자처하며 앞에 나서 '나를 믿으라' '나를 따르라'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나를 믿지 말라' '스스로 독립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라' '집단의식에 기대지 않아도 그리 외롭지 않다' '단 그 판단에 대한 바카라임도 직접 져라'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이것이 곧 카르텔과 지지자를 가르는 선이다.
아마추어 김어준 카르텔
자격이 검증된 주류 기득권 카르텔과 끊임없이 실력을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비주류의 실력 차이는 최근에 벌어진 일만 봐도 알 수 있다. 김어준은 오랫동안 레거시 언론을 조롱하며 B급 정서와 반기득권, 비주류의 이미지를 차용해 민주당의 가장 큰 스피커 노릇을 해왔다. 유시민도 비슷한 어조로 기존 언론을 '재래식 언론'이라 멸칭했다. 레거시 언론이 자기 편 사람들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는 이유였다. 그런데 정작 유시민이 김어준 카르텔 유튜브 방송에 나가 확인되지 않은 느낌과 예감을 사실처럼 말하다 역풍을 맞은 일이, 자신들이 비판해온 기성 언론보다 결코 더 정확하지 않다는 걸 스스로 증명했다.
진짜 문제는 실력이었다. 이재명 정부는 언론개혁의 일환으로 춘추관 출입기자단에 뉴미디어 유튜브 매체를 받아들였다. 대한민국 언론사 최초이자 파격적인 시도였다. 이상호의 고발뉴스, 장윤선의 취재편의점, 김어준의 뉴스공장이 정식 언론사로 등록돼 출입기자를 보냈다. 그런데 뉴스공장 김어준만 청와대 대통령 일정 관련 엠바고를 두 번이나 어겼고, 소속 기자 박현광은 올해만 경호 엠바고를 어겨 2주일, 비보도 간담회 내용을 방송에 흘려 한 달, 출입증과 대통령 순방 일정이 담긴 수첩을 통째로 잃어버려 또 일주일 출입정지를 받았다.
그러자 박현광 기자는 김어준 계열 유튜브 채널 ‘2분 뉴스'에 출연해 억울함을 토로했다. 한 번 출입증을 잃어버렸다고 일주일 출입정지를 받는 건 윤석열 정부 때도 없었던 일이라고 했다. 춘추관 행정관들이 한동안 자신에게 인사도 하지 않았다고, 출입한 지 두 달 만에 왕따당하는 학교에 등교하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순방 때는 춘추관이 숙소도 밥도 따로 쓰라고 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춘추관은 가만있지 않았다. 입장문을 내고 모든 징계는 명백한 본인 과실에 따른 조치라고 밝혔다. 출입증과 함께 대통령의 현지 동선이 담긴 순방 일정 수첩까지 분실한 건 경호와 보안에 직결되는 사안이라고 했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기자가 출입증을 잃어버린 사례는 박현광이 처음이라며, 윤석열 때도 없었다는 그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왕따 주장에 대해서는 개인의 주관적 인식일 뿐 객관적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고, 숙소 문제는 올해 1월 중국 순방 당시 비용 문제로 전체 기자단에 개별 예약이 가능하다고 일괄 공지한 것일 뿐 그를 겨냥한 조치가 아니었다고 밝혔다. 춘추관 직원을 '쓰레기'라고 부른 2분 뉴스 진행자를 향해서도 명예를 훼손했다고 밝혔다. 결국 그 영상은 비공개로 전환되었지만, 이들은 여전히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김어준의 뉴스공장과 박현광 기자는 기회를 받고 증명한 게 아니라, 기회를 받고도 가장 기본적인 선을 반복해서 넘었다. 박현광 기자는 청와대 출입기자가 된 이후로 그 어떤 기사와 취재로도 인정받지 못했다. 늘 청와대 뒷이야기로 썰을 풀거나 자신의 뇌피셜을 말하거나 청와대 관계자의 뒷담화를 했다. 기자는 기사로 승부하고 인정받으면 된다. 그러나 뉴스공장이라는 프로그램은 데스크도 바카라임 기자도 없는지 매번 진행자 김어준과 소속 기자 박현광이 취재 윤리와 엠바고를 어길 때마다 그 어떤 사과나 정정 보도도 나오지 않았다. 정식 언론사로 등록될 자격조차 없는 유튜버일 뿐이란 걸 스스로 선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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