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잉크가 마르기 전에

by조하나



빨간 펜 자국이 원고 위에 점점이 번져 있었다. 오타 하나, 띄어쓰기 하나. 이걸 누가 알아챈다고. 아니다. 내가 안다. 새벽 세 시가 넘도록 그 점을 늘려가는 게 그날 밤의 전부였다. 삶의 오점을 없앨 순 없으니 교정이라도 열심히 보며 오타 하나라도 줄이려는 것이다. 사무실에는 편집 디자이너와 동료와 나, 셋뿐이었다. 편집장은 급한 약속이 있다며 저녁 여덟 시쯤 나갔고, 대표는 애초에 코빼기도 안 보였다. 디자이너가 화면에 띄운 레이아웃을 나와 동료가 나눠서 봤다. 1교, 2교, 3교를 넘기는 동안 계약서 어디에도 없는 이 밤을, 안 하겠다고 말해본 사람은 없었다.



날이 밝자마자 우리는 택시를 잡아타고 충무로로 갔다. 골목에 들어서자 예전에 다른 잡지를 찍던 인쇄소 하나가 셔터를 내린 채였다. 남은 기계 한 대가 돌아가는 소리만 골목을 울렸다. 사형선고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그 소리는 언제 멈춰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달짝지근한 냄새가 훅 끼쳤다. 뜨끈한 종이의 구수한 냄새와 아직 마르지 않은 잉크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괜히 한 번 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기장님이 방금 나온 바카라 한 부를 건넸다. 손에 닿는 감촉이 따뜻했다. 갓 구운 빵처럼, 종이가 아직 온기를 머금고 있었다. 나는 습관처럼 바카라의 모서리만 쥐고 가운데는 건드리지 않았다. 몇 년째 몸에 밴 버릇이었다. 표지를 조심스레 넘기자 손끝에 잉크가 살짝 묻어났다. 이 바카라 어딘가에 도현의 이름이 인쇄되어 있다는 게 그제야 실감이 났다.



사무실로 돌아오자 동료가 바카라을 한 부 집어 들고 넘겨보다가 내 기사에서 멈췄다. 이 밴드 처음 들어봐요. 사진 잘 나왔네요, 하고는 다음 장으로 넘겼다. 대표는 이번 호에 광고가 세 개 붙었다고 흡족해했다. 체르팔 얘기는 한마디도 없었다. 애초에 내가 하고 싶어서 쓴 기사였으니까 서운해할 자격은 없었다.



원고를 넘기기 전날 밤, 나는 마지막 문단을 몇 번이나 고쳤다. 그는 무대에서 실패를 자원으로 쓴다. 부서진 소리들을 하나씩 모아서 결국 그림 하나를 완성하는 사람이다. 나는 원래 이런 문장을 함부로 안 쓴다. 글이 사람을 살릴 수도 있지만 벨 수도 있다는 걸 아니까. 취재 대상을 단정하는 문장은 몇 번이고 다시 읽는다. 조심성이 많은 것도 병이지만, 실은 나는 마음만 먹으면 문장 하나로 사람을 상처 낼 수 있다는 걸 알기에 생긴 병이었다. 결국 그 문장들은 지우지 않고 그대로 넘겼다.



그런데 이번 마감 이후로 트위터 알림을 확인하는 버릇이 하나 늘었다. 도현한테서 뭐라도 오지 않을까. 나는 그 마음을 애써 못 본 척했다.



잡지를 돌리는 것도 기자 몫이었다. 편집장은 미팅이 있다고 했고 대표는 원래 이런 일에 안 나섰다. 동료와 나는 낡은 봉고차에 바카라 뭉치를 싣고 홍대 일대를 돌았다. 서점, 카페, 편집숍 몇 곳에 몇 부씩 놓고 왔다. 물론 이 또한 근로계약서에 없었다. 아무도 이걸 우리 업무라고 부르지 않았지만, 누구도 안 하겠다고 말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 바닥 우리 또래는 다들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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