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화를 낸 그 문장은 누가 잘랐을까
어긋난 대화
밤 늦은 시각, 문이 열린다. 식탁에 앉아 있던 사람이 말한다. "당신은 맨날 이렇게 늦게 들어와?" 신발을 벗던 사람이 대답한다. "맨날? 내가 언제 맨날 늦었어. 지난주엔 세 번이나 일찍 왔잖아."
대화의 주제가 바뀌었다. 늦게 들어온 것에서 '맨날'이라는 단어 하나로. 그리고 반박한 쪽이 이긴다. 실제로 매일 늦은 건 아니니까. 그런데 이기고 나면 원래 하려던 말은 사라진다. 그 사람은 오늘도 늦게 들어왔다. 그건 아무도 반박하지 않았다.
회의실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 "이 방식이 좀 비효율적인 것 같은데요"라고 말하면 "제가 일을 비효율적으로 한다는 말씀이신가요?"가 돌아온다. 제안은 인신공격이 되고, 말을 꺼낸 사람은 그런 뜻이 아니었다고 해명하느라 회의 시간을 다 쓴다. 다음 회의부터 그 사람은 입을 다문다.
온라인에서는 더 자주 일어난다. 몇 해 전, 서울의 한 카페가 사과문에 '심심한 사과'라고 썼다가 하나도 안 심심하다는 댓글들을 받았다. 문장을 끝까지 읽었다면 지루하다는 뜻이 아니라는 걸 바로 알 수 있는 자리였다. 그런데 '심심한'이라는 단어 하나가 눈에 걸리자, 나머지 문장은 아무도 읽지 않았다.
왜 우리는 단어를 붙잡을까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면 우리는 늘 같은 결론을 내린다. 요즘 사람들이 바카라을 안 읽어서, 문해력이 떨어져서.
그런데 정말 그럴까. '맨날'을 물고 늘어지는 배우자도, '비효율적'에 발끈하는 동료도 사실 그 단어의 뜻을 안다. 모르는 게 아니라, 알면서도 잡는 것이다.
왜 그럴까.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그게 더 쉽다. 상대가 하려는 말 전체를 이해하려면 여러 문장을 머릿속에 띄워놓고 앞뒤를 연결해야 한다. 반면 단어 하나를 잡는 데는 아무 노력이 필요 없다. 눈에 걸리는 순간 바로 반응하면 된다. 사람은 힘이 덜 드는 쪽을 고르게 되어 있다.
둘째, 그게 더 이기기 쉽다. 상대의 말 전체를 반박하려면 먼저 정확히 이해해야 하고, 이해하고 나면 상대가 옳을 수도 있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반면 단어 하나만 걸고 넘어지면 이해할 필요도 없고, 상대는 곧바로 해명하는 자리로 밀려난다. 이해하지 않아도 이길 수 있다.
셋째, 그러면 내가 안 바뀌어도 된다. 상대 말이 전체적으로 맞다는 걸 인정하면 내 생각을 고쳐야 한다. 그런데 단어 하나에 흠을 잡으면 그 수고를 안 해도 된다. 상대를 이겼다는 기분까지 덤으로 얻는다.
쉽고, 잘 이기고, 내가 안 바뀌어도 된다. 이 세 가지가 겹치니 사람들이 단어를 잡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온라인에서 더 심해진다
식탁이나 회의실에는 그래도 브레이크가 있다. 상대의 얼굴이 보이고, 내가 한 말이 곧바로 되돌아오고, 내일도 그 사람과 마주 앉아야 한다. 그런데 화면으로 옮기면 이 브레이크가 하나씩 사라진다.
첫째, 반박이 상대에게 안 간다. 답글을 달 수는 있다. 그런데 실제로는 다들 답글보다 캡처나 인용으로 반박한다. 그래야 내 팔로워들이 봐주니까. 그러니 반박은 정작 그 사람이 아니라 구경꾼들에게 향한다. 그 사람에 대해 말하되, 그 사람은 듣지 못하는 자리에서 말하는 셈이다. 그러니 상대가 자기 잘못을 고칠 일도 없다. 그냥 반박했다는 사실만 남는다.
둘째, 구경꾼이 훨씬 많다. 회의실에는 열 명이 지켜본다. 화면에는 수만 명이 지켜본다. 좋아요와 조회수로 그 반응이 바로 숫자가 되어 돌아온다. 눈치로 받던 보상이 이제는 계좌로 입금되는 셈이다.
셋째, 끝까지 읽을 이유가 없다. 상대의 글을 제대로 반박하려면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이해해야 한다. 20분쯤 걸린다. 반면 허술한 문장 하나만 찾아내면 반박은 끝난다. 3분이면 된다. 20분을 들이면 아무도 몰라주고, 3분을 들이면 좋아요가 붙는다. 계산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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