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시브 어택의 노래 한 곡이 펜타포트에서 건드린 오래된 버릇
무대 위의 한 문장
2026년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둘째 날, 영국 밴드 매시브 어택이 헤드라이너로 무대에 올라 서태지와 아이들의 '시대유감'을 커버했다. 영국인 보컬이 한국어 가사를 그대로 부르는 동안, 무대 뒤 LED 전광판에는 문장 하나가 떠올랐다. "케이팝은 독재와 부패에 맞선 저항의 시기에 태동했다." 곧이어 화면은 1980년 5월의 광주로 넘어갔다. 최루탄 연기, 도청 앞에 모인 시민군의 흑백 필름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오랜 에디터의 버릇대로 저 문장부터 걸고 넘어지고 싶어졌다. 일단 사실관계가 정확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걸 파고들수록, 내가 붙잡고 있어야 할 질문은 저 한 문장의 사실관계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이건 우리가 저항이라는 단어를 누구에게는 허락하고 누구에게는 허락하지 않는지, 그 오래된 심사 기준에 대한 이야기였다.
틀린 문장, 그러나 진짜였던 마음
케이팝이라는 단어의 정의를 어떻게 하든, "독재의 시기에 태동했다"는 문장은 시간이 맞지 않았다.
좁게 잡아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뷔한 1992년 이후를 케이팝의 시작으로 본다면, 서태지가 실제로 맞서 싸운 대상은 총칼을 든 군사정권이 아니었다. 그는 이미 1987년 민주화 이후, 문민정부로 넘어가던 시기에 데뷔했고, 그가 부딪힌 건 민주화 이후에도 남아 있던 검열 기구, 공연윤리위원회의 사전심의 제도였다. '시대유감'이라는 곡 자체가 이 심의를 통과하지 못해 가사 없이 연주곡으로 먼저 발매됐을 정도다.
반대로 케이팝을 넓게 잡아 한국 대중음악 전체를 가리키는 말로 쓴다면, 그 뿌리는 굿과 판소리와 트로트를 거쳐 조선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군부독재보다 몇 세기는 앞선 시간이다. 어느 쪽으로 계산해도 시간이 맞지 않는다.
매시브 어택의 공연 무대 화면에 함께 떠오른 또 다른 문장, "1980년 미국은 광주에서 한국 정부가 자행한 민간인 학살을 지원했다"도 마찬가지였다. 완전히 지어낸 말은 아니다. 다만 서로 다른 두 국면이 하나로 뭉개져 있었다.
5월 18일부터 20일까지 공수부대가 시민을 직접 유혈 진압하던 초기, 미국은 그 부대가 애초에 한미연합사의 작전통제권 밖에 있었기에 사전에 알지도 못했고 방관적이었다는 게 공개된 외교 전문들이 보여주는 그림이다.
문제는 그 이후다. 5월 22일에서 27일 사이, 시민군이 도청을 장악한 뒤 벌어진 최종 진압 작전에 대해서는 카터 행정부가 병력 투입을 승인했다는 기록이 실제로 남아 있다. 진압을 지원했다는 말은, 초기의 학살 자체에는 근거가 약하고 이후의 군사작전에는 근거가 있다. 두 시점의 무게가 다른데, 화면 위에서는 하나의 문장으로 합쳐졌다.
정확함은 단지 꼼꼼함의 문제가 아니라 신뢰의 문제다. 대충 뭉뚱그려진 문장 하나가, 그 역사를 정확히 기억하려 애써온 사람들의 노력을 가볍게 만들어버릴 수 있다. 그러니 이 지적은 유효하다. 짚어야 한다.
다만 이 문장의 부정확함이, 매시브 어택이 이 무대를 만든 마음까지 지워버리지는 못한다. 매시브 어택은 1988년 영국 브리스틀에서 결성돼 트립합이라는 장르를 세상에 처음 선보인 밴드다. 데뷔 앨범 《Blue Lines》로 새로운 음악 문법을 세웠고, 'Teardrop', 'Unfinished Sympathy' 같은 곡으로 1990년대 이후 현대 대중음악의 흐름 자체를 바꿔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몽환적인 사운드 뒤에 날카로운 정치적 메시지를 얹는 게 이들의 오랜 방식이었다. 결성 이후 지난 40여 년간 기후 위기와 반전, 인권을 노래해온 밴드다.
스포티파이 최고경영자의 군수기업 투자에 항의하며 신곡을 그 플랫폼에 올리지 않았고, 얼마 전 싱가포르 공연에서는 멤버 두 명이 팔레스타인 국기를 펼쳤다가 재입국 금지 조치를 당했다. 이런 이력을 가진 밴드가, 이번 월드투어 전체의 고정 세트리스트로 굳이 이 낯선 한국 노래를 골랐다. 헬싱키에서도, 후지록에서도, 펜타포트에서도 똑같이 불렀다. 이건 한국에 잘 보이려는 서비스가 아니라, 이들이 어딘가에서 이 노래를 진짜로 발견하고 진짜로 감동했다는 증거다.
정확함과 진심은 서로 다른 층위의 문제다. 이 문장은 고쳐 써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 문장을 쓴 마음까지 함께 지워버릴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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