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미의 '배제'에 대한 BTS의 대답

음악은 지역과 언어로 나뉘지 않는다

by조하나






문이 열리는 소리



광화문 광장에서 BTS는 컴백했다. 나는 그 현장에 없었다. 그들을 넷플릭스 전 세계 생중계로 봤다. 그리고 며칠 뒤 도쿄돔과 탬파의 월드투어 영상을 유튜브와 소셜미디어를 통해 지켜봤다. 그런데도 그 장면들은 이상하게 몸에 남았다. 병역을 마치고 완전체로 돌아온 일곱 명이 부르는 '아리랑'을, 국적도 언어도 다른 수만 명이 그대로 따라 부르는 장면. 일제강점기의 저항을 상징하던 그 노래를 일본인들이, 그리고 우리의 아픈 역사에 대해 잘 모르는 외국인들이 한 음절씩 눌러 부르고 있었다. 슬픔을 담아 만든 곡이 세계 각지에서 사랑과 연대로 되돌아오는, 번역되지 않은 채로도 통하는 순간이었다. 음악의 힘이었다.



지난 2월, 나는 배드 버니가 그래미 '올해의 앨범상'을 받는 장면을 보면서 어떤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래미 68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스페인어 앨범이 본상을 가져간 순간이었다. 그러니 단순한 계산을 했다. 스페인어가 그 문을 통과했으니, 한국어가 통과할 차례도 머지않았다고. BTS가 후보엔 꾸준히 오르면서도 번번이 빈손으로 돌아오던 그 긴 기다림이 이제 보상받을 때가 됐다고.



몇 달 뒤 그래미가 내놓은 답은 내가 기대한 것과 결이 달랐다. 그래미가 BTS에게 물었다. 너희는 어디 소속이냐고.





'미국 팝'이라는 부문이 있다면



그래미를 주관하는 단체, 레코딩 아카데미는 지난 6월 '베스트 아시안 팝 뮤직 퍼포먼스'라는 새 부문을 만들었다. K-팝과 J-팝, C-팝처럼 아시아에서 나왔거나 아시아 언어를 의미 있게 쓴 음악을 위한 자리라고 했다. 처음 이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잠깐 헷갈렸다. 이건 진보인가, 후퇴인가.



한국 음악 시상식 MAMA에 '미국 팝' 부문을 신설하면 어떨까. 영어로 부른 노래만 따로 모아 시상하고, 본상은 한국 음악의 자리로 두고, 미국 팝은 옆방에 정중히 모셔두는 것이다. 상상만 해도 우습다. 그런데 그 우스움이야말로 그래미의 '아시안 팝' 부문이 지구 반대편에서 작동하는 방식을 거울처럼 비춰준다. 기준이 음악이 아니라 언어와 출신이 되는 순간, 그 음악은 보편이 아니라 특수가 된다.



그래미는 한국, 일본, 중국, 태국, 인도네시아의 음악을 '아시안 팝'이라는 하나의 이름 아래 묶겠다고 했다. 그런데 영국, 캐나다, 호주의 음악을 따로 묶어 '앵글로 팝'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언어도 다르고 역사도 다르고 문화도 다른데, 왜 아시아 음악만 하나의 범주 안으로 들어가는가. 오랫동안 서구는 자신을 중심으로 세계를 바라보았고, 비서구 문화는 하나의 이름 아래 묶여 이해되었다. 그 안에는 배제도 있었고 호기심도 있었으며, 존중과 소비가 동시에 존재하기도 했다. '아시안 팝' 부문은 그 오래된 시선의 연장선 위에 서 있다.





'인정'이라는 이름의 격리



그런데 정작 그래미의 기준에 의하면 BTS의 '다이너마이트'도, '버터'도, 로제의 '아파트'도 이 부문 심사 대상이 아니다. 대부분 영어 가사니까. 그렇다면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이 곡들은 영어로 불렸고, 빌보드 정상까지 찍었다. 그런데도 그래미 본상, 올해의 레코드나 올해의 앨범 같은 제너럴 필드의 문턱은 번번이 넘지 못했다. BTS는 '다이너마이트', '버터', 콜드플레이와 함께한 '마이 유니버스'로 3년 연속 같은 부문,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후보에 올랐다. 해마다 다른 노래였지만 돌아오는 자리는 같았다. 수상은 한 번도 없었다. 그사이 BTS가 그래미 무대에 설 때마다 시청률이 올랐다는 건 업계에서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이었다. 무대는 내어주고 트로피는 주지 않고 돌려보내는 일이 3년째 이어졌다. '인정'이라는 이름의 격리는 사실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이번 '아시안 팝' 신설 발표는 앞서 말한 배드 버니의 '올해의 앨범' 수상 이후 이뤄졌다. 다만 라틴 음악에는 2000년부터 이어져 온 라틴 그래미라는 독자적인 생태계가 이미 있었고, 배드 버니의 수상은 그 오랜 축적의 정점이었다. 아시아 팝에는 그런 통로가 없었다. 옆방을 내어주는 일이 늘 나쁜 것만은 아니다. 존재를 인정한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번 '아시안 팝' 신설은 두 가지 의미를 함께 가진다. 아시아 대중음악이 이제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는 인정이면서, 동시에 그 영향력을 미국 문화산업이 만든 분류 체계 안으로 다시 배치하는 일이다.



그래미는 완전한 비영어 작품에도 최고상을 줄 수 있다는 걸 스스로 증명해놓고, 정작 아시아 팝에는 같은 문 대신 새 방을 하나 지어 줬다. 그 방에는 이름표까지 붙었다. 여기까지가 너희 구역이라고. 본상 경쟁의 문은 여전히 저 너머에 있다. '그래미의 게토화'라는 말이 발표 당일부터 따라붙은 이유다.



타이밍도 의미심장했다. BTS가 컴백 앨범 《아리랑》을 내고 월드투어를 도는 한복판에, 난데없이 '아시안 팝' 부문이 신설됐다. 나는 이 행태를 좋게 봐줄 생각이 없다. 교활하고, 무례하고, 무지했다. 세계 곳곳에서 매진을 기록하며 다니는 그룹을 향해, 하필 지금 굳이 '언어'와 '지역'이라는 잣대를 새로 들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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