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메멘토 모리

by조하나


계단을 내려가는데 한 남자가 앰프를 안고 올라오고 있었다. 키가 작고 비쩍 말라서 안고 있는 물건이 자기 상체보다 커 보였다. 나는 벽에 붙어 길을 비켜줬다. 로드 매니저인 줄 알았다. 지나가고 나서야 낡은 패딩 소매에 검은 테이프가 감겨 있는 걸 봤다. 터진 자리를 꿰매는 대신 붙여 놓은 거였다.



일찍 공연장에 가는 길이었다. 사무실에 앉아 있느니 지하에 앉아 있는 게 나았을 뿐이다. 대표가 이번 호 커버로 그레이 서울을 정했고, 마지막 순서가 그레이 서울이니 겸사겸사 다녀오라는 얘기였다. 라인업은 네 팀이었다. 조악한 디자인의 공연 플라이어를 아래에서 위로 훑었다. 맨 아래 큼직하게 그레이 서울, 그 위에 이름 정도는 아는 팀이 둘, 그리고 맨 위에 Zerfall. 괄호 안에 체르팔이라고 한글을 달아 놨다. 이름은 얼핏 스친 것 같기도 한데 무대는 처음이었다. 첫 순서라는 건 대개 한 가지 뜻이다. 티켓을 못 파는 팀이라는 뜻.



사운드 체크는 짧았다. 엔지니어가 시간 없다고 두 번 말했고 두 번째엔 대답도 안 기다리고 콘솔에서 손을 뗐다. 첫 순서에 주어지는 건 십오 분이다. 바에서 맥주를 시키며 물어봤다. 저 팀 어때요. 직원이 잔을 닦으며 대답했다. 인천 애들인데요, 잘하긴 해요. 근데 안 팔려요. 오늘도 첫 순서잖아요.



무대 옆에 기타 한 대가 세워져 있었다. 몸통에 알파벳 대문자로 MEMENTO MORI(메멘토 모리)라고 적혀 있고 그 아래 한 남자의 절규하는 얼굴이 거친 붓으로 그려져 있었다. 이빨을 다 드러낸 얼굴 같기도 하고 뒤엉킨 짐승 같기도 한 그림이었다. 나는 그 기타를 보고 수첩에 휘갈겨 썼다. 죽음을 새겨 넣은 악기, 손으로 그린 괴물, 인천, 첫 순서. 이 정도 조합이면 문장은 저절로 나온다. 절박함에 가격표를 붙여 놓은 팀. 이 지하 세계에 그런 팀은 얼마든지 있다.



객석은 스무 명 남짓이었다. 대부분 뒤쪽 바에 붙어 서서 맥주를 들고 있었다. 마지막 순서를 기다리는 자세다. 무대 앞에 붙어 선 사람은 예닐곱 명뿐이었고, 그들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다. 나는 수첩을 꺼내 무릎에 올려 뒀다. 이미 써둔 문장들로 충분할 거라 여겼다.



인천에서 온 체르팔입니다. 그 남자가 말한 건 그게 전부였다. 아까 계단에서 앰프를 안고 올라오던 사람이었다. 기타를 메니까 사람이 더 작아 보였다. 몸이 악기에 딸려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첫 음이 나왔다.



목소리가 몸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몸을 통째로 울림통처럼 쓰고 있었다. 저 깡마른 몸 어디에 그런 게 들어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고음으로 올라가는데 소리가 얇아지지 않았다. 보통은 올라갈수록 목이 좁아지고 소리가 가늘어지는데 그는 올라갈수록 굵어졌다. 이 작은 지하 공연장에 쓸 성량이 아니었다.



나는 음악을 그림에 빗대는 걸 싫어한다. 소리를 소리로 설명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쓰는 방법이다. 그날은 그 게으른 방법 말고 쓸 게 없었다. 그 목소리는 한 덩어리가 아니었다. 갈라지는 소리, 긁히는 소리, 깨끗하게 뻗는 소리가 따로따로 찍혀서 왔다. 하나씩 떼어 놓으면 하나도 예쁘지 않았다. 어떤 건 그냥 흠이었다. 그런데 그게 다 찍히고 나면 한 발 물러서서 볼 때처럼 그림 하나가 서 있었다. 물감을 섞지 않고 점으로만 찍어 두면 보는 눈이 알아서 섞어 버린다. 그의 목소리는 그런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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