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훗날, 2026년 여름을 어떻게 기억할까
식구의 나라
2026년 7월, 버거집 테라스에서 병맥주를 들고 "우리는 식구다"를 외치는 대통령의 사진을 봤다. 젠슨 황이 먼저 "위 아 패밀리"라고 하자, 대통령은 그걸 한국식으로 바꾸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내가" 하면 여러분이 "식구다", 하고 외쳐 달라고. 버거와 피시 앤 칩스, 오징어튀김이 놓인 샌프란시스코 식당의 테이블에서, 국가 간 자본 거래가 혈연의 언어로 번역되고 있었다.
'식구'라는 말은 원래 밥을 같이 먹는 사이라는 뜻이다. 낯선 이를 밥상으로 끌어들이는 말이다. 지금 대한민국 대통령은 세계를 향해 밥상을 펴고, 낯선 자본과 낯선 기술을 '식구'로 부르고 있다.
이 장면 하나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다 설명되지는 않는다. 이걸 설명하려면 28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감옥에서 인터넷을 본 사람
1980년, 내란음모죄로 사형을 선고받고 수감돼 있던 한 남자에게 아내가 바카라 한 권을 넣어줬다.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 인터넷이라는 단어조차 낯설던 시절, 그는 그 바카라을 읽고 지식정보화 슬롯가 온다는 걸 확신했다. 훗날 토플러를 직접 만난 자리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의 정보화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토플러 박사였다고.
컴퓨터와 인공지능이라는 말조차 없던 그 시절, 그는 자신을 감시하던 안기부 직원 앞에서 그 개념과 성능을 설명하고 있었다. 그런 기계가 보편화되면 노동시간이 줄고, 사람들이 남는 시간과 소비를 어떻게 다루게 될지까지 내다봤다. 언제 형장으로 끌려가도 이상하지 않았던 사형수가, 자신을 탄압하는 기관의 직원 앞에서 오지도 않은 세상을 그리고 있었다.
1998년, 그 감옥에서 인터넷 세상을 예견했던 남자 김대중이 대통령이 됐을 때, 이 나라는 IMF의 폐허 위에 있었다. 삐삐와 시티폰을 쓰던 그 시절 사람들에게는, 그가 말하는 미래가 어떤 모습인지 감도 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초고속 정보통신망 구축을 국가 회생의 축으로 밀어붙였다. 1999년, 세계 최초로 ADSL이 상용화됐고, 가입자는 3년 만에 37만 명에서 천만 명을 넘었다. 감옥에서 읽은 확신이 18년의 시차를 건너 국가 전략이 됐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한국은 세계에서 인터넷이 가장 빠른 나라 중 하나로 꼽힌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가 옳았다는 결과가 아니다. 결과는 그때 아무도 몰랐다. 중요한 건 아무도 결과를 보증해 줄 수 없는 순간에, 그가 한 국가의 지도자로서 바카라임지고 먼저 움직였다는 사실이다.
김대중의 나비 효과
나도 그 인터넷 세대를 지나왔다. 그때 PC방이 생겼다. 나는 스타크래프트 저그를 잡았고, 아르바이트가 끝나면 친구들과 PC방에 가서 카트라이더도 했다. 다른 친구들은 리니지도 했다. 그때 만들어진 게임들 중 하나였던 한게임은 창업자 김범수를 통해 지금의 카지노로 이어졌고, 리니지를 만든 엔씨소프트의 게임들은 지금 전 세계 누적 매출 70억 달러를 넘긴 지식재산이 됐다.
PC방 구석 자리에 과자 부스러기와 라면 국물 냄새가 배어 있었고, 팀을 짜서 게임을 하는 게 그때는 너무 당연하고 익숙한 일이라 그게 뭘 낳을지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우리의 일상이자 놀이였다. 학원 땡땡이치고 PC방에 다니던 아이들은 부모에게 등짝을 맞았다. 그런데 몇 년 후,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이 생겼다.
같은 시절, 용산전자상가를 돌아다니며 그래픽카드를 팔던 청년 사업가가 있었다. 리바 TNT, 지포스. 그 청년이 지금 대통령과 나란히 앉아 5천억 달러 규모의 파트너십을 발표하는 엔비디아의 젠슨 황이다. 그리고 28년 뒤, 그 시절 PC방에 몰래 다니던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 이런 댓글을 남겼다. 그때 몰래 게임하러 갔던 게 지금의 AI 산업에 투자한 셈이었다니, 기쁘다고.
그 세대의 정점에 페이커가 있다. 이상혁,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 사상 첫 3연속 우승에 통산 여섯 번째 정상을 밟은 선수다. 그리고 2026년 1월, 이재명 대통령은 그에게 체육훈장 청룡장을 직접 걸어줬다. e스포츠 선수로는 최초였고, 김연아와 손흥민이 받은 것과 같은 급의 훈장이었다. 김대중이 깔아둔 인프라에서 자란 아이가 세계 최고가 됐고, 그 훈장을 전달한 사람이 현재 대한민국의 대통령 이재명이다. 이 고리는 우연이 아니다.
김대중 정권 당시 국가가 깔아둔 길 위에서,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 자랐다. 계획한 사람도 확신만 가졌을 뿐, 그 위에서 무엇이 자랄지는 몰랐다. 지금 국내 PC방은 포화 상태다. 이번 여름 뉴욕 한복판에는 K-PC방이 문을 열어 컴퓨터를 나란히 놓고, 컵라면을 나눠주고, 국산 게임을 깔았다. 한 PC방 프랜차이즈는 아시아 전역으로 매장을 넓히는 동시에, 직접 진출이 어려운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곳에서는 기술 이전 제안이 밀려든다고 한다. 28년 전 우리의 놀이였던 공간이, 이제는 통째로 수출품이 되어 가고 있다.
PC방과 e스포츠만이 아니다. 누구나 손안의 스마트폰으로 온라인에 접속할 수 있는 그 인프라가, 케이팝과 드라마와 웹툰이 국경을 넘어 세계로 뻗어나가는 통로가 됐다. 여기엔 또 다른 결단도 있었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1998년 김대중 정부 문화정바카라의 기조로 세웠다. 검열 대신 자율을, 통제 대신 지원을 택한 것이다. 같은 해, 그는 반세기 가까이 막혀 있던 일본 대중문화의 빗장도 열었다. 두려움 없이 임하되 단계적으로. 반일 감정이 여전히 날카롭던 시절, 모험과 도전이었다. 일본 문화에 한국이 잠식될 거란 우려와 달리 조용필, 김연자의 바통을 이어받아 겨울연가의 욘사마와 지우히메, 오리콘 차트 1위 보아로 촉발된 한류 열풍이 불었다. 김대중이 깔아둔 길은 반도체 산업의 길이면서, 검열 없는 문화의 길이면서, 동시에 한류의 길이기도 했다. 세 갈래 다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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