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이 '냄새'를 언급한 이유
계급주의의 '냄새'
드라마 《김부장》에서 민지는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한다. 성적이나 말투나 행동이 아니라 냄새다. 엄마 없는 홀아비 냄새가 난다고, 돈 많은 집 외동딸 혜리는 민지에게 말한다. 이 말의 잔인함은 반박이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성적이 나쁘다는 말에는 성적표를 들이밀 수 있다. 거짓말쟁이라는 말에는 알리바이를 댈 수 있다. 그런데 냄새가 난다는 말 앞에서 아이는 무엇을 할 수 있나. 자기 몸에서 나는 냄새를 자기는 맡지 못한다. 민지가 아무리 코를 킁킁대며 확인해봐도 소용이 없다. 냄새를 판정하는 권한은 언제나 나 아닌 사람에게 있기 때문이다.
나홍진의 영화 《호프》에도 비린내가 있다. 날것의 살, 피, 물기. 그 냄새들은 인물을 설명하지 않고 인물의 위치를 표시한다. 어디까지가 사람의 자리이고 어디부터가 짐승의 자리인지, 냄새가 먼저 선을 긋는다.
봉준호의 《기생충》은 이 감각의 정치학을 가장 정확하게 찍어낸 작품일 것이다. 극 중 박 사장은 기택에게서 나는 냄새를 두고 몇 번이나 코를 찡그린다. 지하철을 오래 탄 사람의 냄새, 반지하의 냄새라고. 박 사장은 그 냄새를 딱히 나쁜 냄새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선을 넘어오는 냄새라고 말할 뿐이다. 이 영화가 정확히 짚어낸 것은, 계급은 때로 소득이나 학벌이 아니라 코로 먼저 판별된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옷을 잘 차려입고 말투를 다듬어도 냄새는 위조되지 않는다는 그 믿음이야말로 가장 완강한 계급의 방어선이다.
조지 오웰은 《위건 부두로 가는 길》에서 노동자들의 하숙집 풍경을 기록하며 가난이 냄새로 감각되는 과정을 가감 없이 그렸다. 그가 그 바카라에서 정면으로 건드린 것은, 상류층이 하층민을 멀리하는 진짜 이유가 계급 그 자체가 아니라 그들에게서 냄새가 난다는 감각적 확신일 때가 많다는 사실이었다.
냄새는 이렇게 오래전부터 계급을 가르는 데 가장 자주 동원된 감각이었다. 논리적 차별은 부끄러워도 감각적 거리 두기는 부끄럽지 않다고, 사람들은 오랫동안 스스로를 속여왔다.
문학과 영화가 오래도록 냄새를 써온 이유가 여기 있다. 냄새는 증거를 남기지 않으면서 낙인을 남긴다. 논리는 반박되면 무너지지만 냄새는 반박당하지 않는다. 한번 코에 박히면 몇 년이 지나도 그 사람 이름 옆에 붙어 있다. 그래서 냄새는 늘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가난한 집 아이에게, 육체노동자에게, 노인에게, 이주민에게. 냄새 난다는 말을 들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 말을 하는 쪽에는 언제나 자신이 냄새를 판정할 자격을 가졌다고 믿는 사람이 서 있다.
후각은 다섯 가지 감각 중에 가장 이상한 감각이다. 눈은 감을 수 있고 귀는 막을 수 있지만 코는 막아도 숨을 쉬는 한 계속 무언가를 들이마신다. 그래서 냄새는 동의를 구하지 않는다. 상대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스며든다. 다른 감각은 대상과 나 사이에 거리를 두지만 후각은 그 대상의 입자를 내 몸속으로 끌어들인다. 누군가에게서 냄새가 난다고 말하는 순간, 말하는 사람은 이미 그 사람과 자신 사이에 넘을 수 없는 경계를 그은 것이다. 나는 이쪽, 너는 저쪽. 냄새는 그래서 가장 원초적인 배제의 언어다.
슬롯학자 어빙 고프먼은 1963년 저서 《스티그마》에서 낙인을 이렇게 설명한다. 슬롯는 어떤 특성을 가진 사람에게 표식을 찍고, 그 표식은 그 사람의 슬롯적 정체성을 오염된 것으로 만든다고. 중요한 건 그 표식이 낙인찍히는 사람의 성질이 아니라 낙인찍는 사람과 낙인찍히는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발생한다는 점이다. 냄새도 정확히 이 구조를 따른다. 냄새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누가 누구에게 냄새난다고 말할 수 있는 위치에 서 있느냐가 문제다.
이 이야기를 왜 하냐면, 지금 한국 정치에서 가장 큰 목소리로 '냄새'를 말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어물전 밖에 서서 코를 킁킁대는 남자
유시민은 최근 몇 달 사이 이재명 정부를 향해 단계를 밟아 비판 수위를 올려왔다. 처음에는 민주당을 재건축할 게 아니라 증축해야 한다고 했다. 다음에는 이 대통령이 필연적으로 실패의 길을 가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어물전을 꺼냈다. 아무리 좋은 생선을 파는 어물전도 비린내는 나기 마련이라고. 그러니 썩은 내가 나기 전에 정화해야 한다고. 자신처럼 후각이 예민한 사람이 먼저 말을 해줘야 한다고.
이 비유를 한 겹씩 벗겨보자. 그는 생선을 파는 상인이 아니다. 손님도 아니다. 그는 가게 밖에 서서 코를 킁킁거리며 안쪽을 향해 냄새가 난다고 외치는 사람이다. 아직 썩지는 않았지만 곧 썩을 거라고, 자기 코가 그렇게 말한다고.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보이는지. 냄새는 원래 씌워지는 것이었다. 민지는 냄새를 맡히는 쪽이었고, 냄새를 판정한 것은 아이들이었다. 그런데 유시민은 그 구조를 뒤집어 자기가 판정하는 자리에 올라선다. 낙인의 피해자가 서는 자리가 아니라 낙인을 부여하는 재판관의 자리다. 그리고 그 자리는 매우 편리하다. 왜냐하면 냄새는 증명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하나요?'
'내 코가 예민해서요.'
이 대화가 성립하는 세계에서는 어떤 반론도 무의미하다. 그래서 이 화법은 비평이 아니라 주술에 가깝다. 점집에 앉아 액운이 보인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통계를 들이밀 수 없는 것과 같다.
왜 하필 지금, 왜 하필 냄새인가
그가 냄새를 들고 나온 시점을 보면 이 화법의 정체가 더 분명해진다.
그는 이재명 정부가 검찰개혁을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사실 관계에서부터 어긋난다. 공소청법과 중수청법은 올해 3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10월 2일 시행이 확정돼 있다. 검찰청은 없어지고 기소만 담당하는 공소청이 되며, 수사는 중수청으로 넘어간다. 검찰개혁의 본질인 수사권과 기소권의 분리가 이미 이뤄진 것이다. 정부는 작년 7월 검찰총장이 물러난 뒤 후임을 임명하지 않고 대행 체제로 버텨왔다. 몇 달 뒤면 사라질 자리에 새 사람을 앉히는 일이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검찰개혁을 안 한 게 아니라, 검찰이라는 조직 자체를 없애는 중이다.
숫자는 그의 편이 아니다. 그가 실패를 예언한 정부의 코스피 5000 공약은 올해 1월 장중에 조기 달성됐고, 반년 만에 9000선을 넘어섰다. 공약의 거의 두 배다. 지지율은 3월 한국갤럽 조사에서 67퍼센트로 취임 후 최고치를 찍었다.
논리로 칠 구석이 없으니 감각으로 옮겨간 것이다. 여론조차 그의 편이 아니었다. 7월 한국갤럽 조사에서 검사의 보완수사권을 유지해야 한다는 응답은 61퍼센트, 폐지해야 한다는 응답은 23퍼센트였다. 그가 요구하는 더 강한 개혁은 국민 다수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다. 실적으로도 여론으로도 그의 자리가 없다. 남은 무기는 하나뿐이다. 사실과 논리가 필요하지 않는 말. 그래서 반박 당하지 않는 말.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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