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귀신을 무서워하지 않는다|넷플릭스 《동궁》

by조하나

《동궁》




(스포일러 있습니다)



한국인은 왜 귀신을 무서워하지 않나



밤에 읽기 좋은 이야기가 있다. 남주혁은 《동궁》의 대본을 그렇게 표현했다. 두 페이지를 읽고 너무 재미있어서 잠시 덮었다가, 결국 그 자리에서 4부까지 단숨에 읽었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조금 다르게 이해한다. 밤에 읽기 좋은 이야기란, 불을 끄고 이불 속에서 읽어도 낯설지 않은 이야기라는 뜻이다. 한국인에게 귀신 이야기는 원래 그런 것이다. 무섭지만 익숙하고, 익숙해서 서글프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동궁》이 공개됐다. 조선 왕실이라는 가장 화려하고 폐쇄적인 공간이, 귀의 세계를 넘나드는 구천의 눈을 통해 원혼과 저주가 도사리는 또 다른 세계로 겹쳐 보인다.



구천(남주혁)은 그 두 세계를 동시에 볼 수 있는 존재이고, 검으로 귀신을 벤다. 그 곁에는 죽은 자들의 소리를 듣는 궁녀 생강(노윤서)이 있다. 왕(조승우)의 부름을 받은 두 사람이 동궁에 깃든 저주를 파헤친다.



넷플릭스는 이 작품을 '미스터리 오컬트 사극'이라 부르고, 공개 직후 한국과 태국에서 1위, 글로벌 순위 8위로 출발했다. 나는 이 작품을 보면서 내내 한 가지 생각을 붙들고 있었다. 한국인이 죽음과 영혼을 바라보는 관점과 세계관, 우리에게 너무 익숙해져서 익숙한지조차 모르는 이 오래된 감각이, 그것을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서구권 시청자들에게는 과연 어떻게 가 닿을까.







'기묘한 이야기'는 발명하고, '동궁'은 발견한다



《동궁》을 두고 여러 작품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킹덤》의 조선 사극 배경, 《기묘한 이야기》의 두 세계가 겹쳐지는 구조,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그린 한국적 사후 세계. 이 조합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기묘한 이야기》와 비교하는 순간, 오히려 이 작품의 진짜 정체가 또렷하게 드러난다.



《기묘한 이야기》의 뒤집힌 세계, 업사이드 다운은 그 드라마가 발명한 것이다. 시청자는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그 세계의 규칙을 새로 배우고, 배우는 동안만 받아들인다. 드라마가 끝나면 그 세계관도 함께 닫힌다. 반면 《동궁》이 그리는 귀의 세계는 발명된 게 아니라 발견된 것이다. 무속은 이 작품이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지금 이 순간에도 한국 슬롯 곳곳에서 실제로 작동하고 있는 믿음의 체계다. 그래서 시청자가 이 세계관을 받아들이는 방식 자체가 다르다. 업사이드 다운을 볼 때 우리는 낯선 규칙을 학습하지만, 구천이 귀의 세계로 넘어갈 때 한국인 시청자는 이미 몸에 새겨진 감각을 다시 확인한다.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고, 굿을 하고, 원한을 풀어줘야 한다는 정서가 낯설지 않은 슬롯에서는, 이 설정이 판타지의 발명이 아니라 오래된 현실의 극화로 읽힌다.



그러니 이 작품을 '미스터리 오컬트 사극'이라 부르는 공식 분류에 나는 살짝 이의를 달고 싶다. '미스터리'는 누가, 왜라는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서사의 동력이 되는 장르다. 그 답이 밝혀지는 순간 이야기가 완결된다. 그런데 《동궁》에서 저주의 정체를 추적하는 구조는 이야기를 앞으로 밀고 가기 위한 골격에 가깝다. 진짜 무게중심은 귀의 세계라는 또 다른 층위, 그 세계의 규칙과 존재들, 그리고 그 세계와 얽힌 인물들의 감정과 욕망 쪽에 실려 있다. '미스터리'는 질문과 해답의 게임이고, '판타지'는 세계 자체를 경험하게 하는 장르다. 이 작품이 시청자를 붙드는 힘이 저주의 범인 찾기가 아니라 귀의 세계가 뿜어내는 질감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관계와 정서라면, 이건 '판타지 오컬트 사극'이라 부르는 편이 더 정확하다. '미스터리'는 그 '판타지'를 조직하는 기능적 장치일 뿐이다.








한국인은 죽은 자를 '데몬'이라 부르지 않는다



왜 한국인에게는 산 자와 죽은 자가 한 공간에 공존한다는 설정이 위화감을 주지 않는가. 우리가 죽음과 영혼을 바라보는 방식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서양의 사후 세계는 대체로 이분법이다. 구원받은 영혼은 천국으로, 저주받은 영혼은 데몬이 되어 지옥으로 간다. 죽은 영혼은 산 자의 세계에서 추방된다. 한국은 그렇지 않다. 죽은 영혼 모두가 데몬이 아니다. 죽은 자들은 여전히 산 자와 함께 살아간다고 여긴다. 다만 그 관계의 방식이 다를 뿐이다. 무속에서 죽은 영혼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제사와 차례를 받으며 산 자와 순조롭게 관계를 이어가는 조상신 계열이 있고, 원한을 풀지 못한 채 구천을 떠도는 원귀 계열이 있다. '구천'이라는 이름을 배경으로 삼은 이 작품이 다루는 건 후자다. 그러나 이 원귀조차 태생부터 악한 존재가 아니다. 관계와 사연 속에서 한을 갖게 된 존재다. 그 한을 풀어주면, 그러니까 해원이 이루어지면, 영혼은 좋은 곳으로 가서 더는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



한국의 귀신 이야기가 유독 촘촘하고 다채로운 것도 이 세계관 덕분이다. 우리 설화 속 존재들은 하나의 이름으로 뭉뚱그려지지 않는다. 억울하게 죽어 원한을 품은 처녀 귀신, 물에 빠져 죽어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려는 물귀신, 사람이 죽어 된 귀신이 아니라 나쁜 기운이 한곳에 오래 고여 썩고 문드러지며 생겨난 귀매(鬼魅)까지, 존재마다 태어난 사연과 다루는 법이 다르다.



《동궁》의 극본을 쓴 권소라와 서재원 작가는 이 점을 정확히 짚었다. 두 사람은 한국의 설화와 민간전승에 수많은 귀매가 있는데 그중 스토리 진행에 도움이 되는 능력을 가진 귀매들을 골라 일부 설정을 극에 맞게 변형했다고 밝혔다. 원작 웹툰이나 소설이 따로 있는 작품이 아니다. 우리 땅에 오래 구전되어 온 야담들을 재료 삼아 새로 지어 올린 세계다. 서양의 판타지가 없던 규칙을 발명해야 할 때, 한국의 창작자는 이미 있는 설화의 곳간에서 재료를 꺼내 쓴다. 곳간이 이토록 풍요로운 건, 죽은 자를 산 자의 세계에서 추방하지 않고 곁에 두어 그들의 사연을 하나하나 기억해 온 문화이기 때문이다.



이 차이가 왜 중요한가. 서양의 데몬은 물리쳐야 할 악이지만, 한국의 원귀는 달래고 풀어주어야 할 사연이기 때문이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이야기할 때도 나는 같은 말을 했다. 한국인은 그 작품 속 진우가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원한을 풀고 좋은 곳으로 천도되었다고 여긴다. 《동궁》의 구천이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진우 같은 존재가 무섭기보다 서글프게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 있다. 우리는 그 존재를 악의 카테고리가 아니라, 못다 푼 인간관계의 연장으로 바라본다. 귀신을 벤다는 건, 실은 그 한을 끊어 자유롭게 놓아준다는 말이다. 검을 휘두르는 구천의 액션이 시원하기보다 애잔한 건 그래서다.



그리고 이 세계관은 박물관에 박제된 옛이야기가 아니다. 21세기 한국에서도 무속과 주술은 여전히 강하게 살아 있다. 이사 날짜를 잡을 때 손 없는 날을 따지고,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사주를 보고, 새 사업을 시작하며 고사를 지낸다. 그 사람들이 스스로를 무속인이라 생각하지 않아도, 그 행위 자체가 이미 이 세계관 위에서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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