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할 수 없는 것과 마주쳤을 때 인간이 무엇을 하는가
낙타의 등: 극과 극의 한국 슬롯
영화 《호프》가 누적 관객 200만 명을 넘어섰다. 개봉 닷새 만이다. 연상호 감독의 《군체》가 세운 올해 최단 기록보다도 빨랐고, 개봉 엿새째인 오늘까지 6일 연속 박스오피스 정상 자리를 지키고 있다.
포털의 평점창 그래프가 흥미롭다. 보통 완만한 산 모양을 그려야 할 점수 분포가, 이 영화는 양 끝에만 봉우리가 솟은 쌍봉낙타의 등처럼 갈라져 있다. 9점에서 10점 사이가 53퍼센트, 1점에서 2점 사이가 22퍼센트. 그 사이, 그러니까 그럭저럭 괜찮았다는 말이 나올 자리가 텅 비어 있었다. 극장은 사람들로 미어터졌는데, 그 사람들이 문을 나서며 하는 말은 서로 다른 언어처럼 만날 자리가 없었다.
내가 본 나홍진의 《호프》는 '이해할 수 없는 것과 마주쳤을 때 인간이 무엇을 하는가'를 묻는 영화였다. 그런데 그 질문이 스크린의 경계를 넘어 정확히 개봉 이후의 현실 속으로 걸어 들어오는 걸 지켜보게 될 줄은 몰랐다.
벽장 속 무기를 꺼내어
먼저 눈에 들어온 건 국내와 해외의 불만이 정확히 반대 방향에서 왔다는 사실이었다. 한국 관객들의 후기를 훑다 보면 같은 문장이 반복해서 나온다. '액션은 최고인데 이야기가 안 받쳐준다.' '보고 나니 물음표만 남는다.' '이 감독이 대체 뭘 하고 싶었던 건지 모르겠다.' 서사가 듬성듬성하다는, 그러니까 뭔가 빠져 있다는 불만이었다.
그런데 정확히 같은 시기, 칸에서 나온 해외 평론가들의 비판은 방향이 완전히 달랐다. 긴 러닝타임과 세계관의 과잉을 문제 삼았다. 영화 결말부에서 감독은 외계인의 입을 빌려 세계관의 대규모 확장을 선언하는데, 오히려 정보량이 과하다는 지적이었다.
한쪽은 이 영화가 아무것도 설명해주지 않는다고 화를 냈고, 다른 한쪽은 이 영화가 너무 많은 걸 한꺼번에 쏟아붓는다고 화를 냈다. 정반대의 불만이 같은 시기, 같은 작품을 두고 동시에 터져 나온 것이다. 결국 관객들이 붙잡고 갈 서사적 손잡이는 주어지지 않은 채, 낯선 세계관의 파편들만 잔뜩 쥐여진 상태로 극장 밖으로 떠밀려 나온 셈이었다. 이렇게 되면 관객은 혼란스럽다. 낯설다. 자, 이제 관건은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것과 마주쳤을 때 무엇을 하는가이다.
그다음은 훨씬 더 노골적이었다. 온라인 게시판을 열면 감독의 이름을 비튼 멸칭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 뒤로 패륜적인 조롱과 비하, 저주에 가까운 말들이 줄줄이 따라붙는다. 영화 한 편에 이럴 일인가 싶어서 몇 번이나 화면을 다시 들여다봤다. 어떤 관람객은 극장을 나오면서 들은 게 욕뿐이었다며, 그날 이후로는 지인들과 있을 때 이 영화 얘기를 아예 꺼내지 않는다고 적었다. 싸움이 날까봐. 자신과 영화를 보고 난 후 느낀 감상과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에게 온갖 혐오 발언을 쏟아내는 댓글도 흔하다.
이쯤 되면 이건 영화 한 편에 대한 반응이라 부르기 어렵다. 영화는 그저 핑계다. 이미 오래전부터 쌓여 있던 자기만의 분노와 혐오가, 마침 손에 잡히는 대상 하나를 만나 터져 나온 것에 가깝다. 마치 영화 속 호포 마을 사람들이 평소엔 벽장 깊숙이 숨겨두었던 무기를 꺼내 와 낯선 것을 향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방아쇠부터 당기는 것처럼. 영화를 함께 보고 감상을 나누는 자리는 원래 낯선 경험을 서로에게 통역해주는 자리였다. 그런데 그 자리마저, 서로를 향한 혐오의 언어로 채워지고 있다.
웰컴 투 호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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