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코스타 콩코르디아호: 바다 위의 악몽》
수면 아래 15미터쯤 아래로 내려가면 색이 사라진다. 빨강이 가장 먼저 사라지고, 다음은 주황, 그다음은 노랑. 무지개 색깔 순이다. 결국 남는 건 푸르고 검은 세계다. 나는 한국을 떠나 이름도 낯선 작은 섬에서 몇 해를 그 세계로 내려가 살았다. 초대받지 않은 손님처럼 조심스럽게, 숨을 아껴 쉬면서. 그런데 어떤 날은 그 춥고 어두운 물속에서 다른 생각이 찾아왔다. 여기, 이 아래에서 그 아이들은 얼마나 무섭고 외로웠을까. 얼마나 추웠을까. 얼마나 엄마가 보고 싶었을까.
며칠 전 공개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코스타 콩코르디아호: 바다 위의 악몽》.
2012년 1월, 이탈리아 토스카나 앞바다에서 4천2백 명을 태운 호화 유람선이 암초에 부딪혀 옆으로 쓰러진 사건이다. 32명이 죽었다. 생존자들의 증언과 그날 밤의 휴대폰 영상, 블랙박스 음성이 화면을 채우는 동안 나는 내내 다른 배를 생각하고 있었다. 같은 바다 위의 재난인데, 어째서 한쪽은 이야기가 끝나고 다른 쪽은 12년이 지나도 끝나지 않는가. 이 글은 그 질문에서 시작한다.
"가만히 있으라"
콩코르디아가 기울기 시작했을 때 승무원들은 방송을 내보냈다. 정전일 뿐이니 객실로 돌아가라고. 배가 이미 45분 넘게 옆으로 눕고 있는데도 그랬다. 그런데 승객들은 그 방송을 믿지 않았다. 한 캐나다인 승객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발전기 고장이라면 배가 이렇게 기울 리 없다고. 그들은 안내를 거스르고 갑판으로 기어 올라가 구명보트에 매달렸고, 어떤 이들은 350미터를 헤엄쳐 질리오 섬에 닿았다. 물론 조건은 유리했다. 육지가 눈앞에 있었고, 지중해의 물은 차갑지 않았고, 대부분이 방송의 언어를 알아들었다. 그래도 4천 명이 넘는 승객 가운데 사망자 수가 32명에서 멈춘 결정적 이유 하나는 분명하다. 사람들이 권위의 지시를 의심하고 몸을 움직였다는 것.
2014년 4월, 세월호는 정확히 그 반대였다. "가만히 있으라." 그 방송이 반복되는 동안 아이들은 훈련받은 대로 어른의 말을 믿는 대로 구명조끼를 입고 선실에서 기다렸다. 그 사이 선장과 핵심 선원들은 먼저 배를 버렸다. 콩코르디아의 선장 프란체스코 스케티노도 승객이 다 빠져나오기 전에 구명보트에 올랐다. 해안경비대가 배로 돌아가라고 명령했지만 그는 돌아가지 않았다. 두 배 모두, 키를 잡은 사람이 승객보다 먼저 도망쳤다.
2년이라는 시간차와 이탈리아, 한국의 바다는 달랐지만, 결국 같은 재난이었다. 승객들의 운명을 갈라놓은 것은 배의 구조가 아니라 방송의 언어였다. 한쪽은 "별일 아니니 선실로 돌아가라"는 말을 의심했고, 다른 쪽은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끝까지 믿었다. 믿음이 죄가 되는 나라. 우리가 아이들에게 가르친 순종이 아이들을 선실에 가둔 열쇠였다는 사실을, 나는 오래 곱씹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생명
콩코르디아 다큐에서 나를 오래 붙든 장면은 구조대였다. 좌초 30시간이 지난 뒤, 소방대원들이 물에 잠기지 않은 선체 안에서 비명을 들었다. 남자 목소리 하나, 여자 목소리 하나. 신혼여행을 온 한국인 부부였다. 그들은 특수 수색팀까지 동원돼 살아 나왔다. 그리고 36시간 뒤에는 다리가 부러진 채 식당에 갇혀 있던 승무원 한 사람이 구조됐다. 그는 근처에 있던 프라이팬을 집어 벽을 두드렸다고 했다. 구조대가 자신을 찾을 때까지. 좌초 이후 하루하고도 반나절이 지나도록 구조대는 뒤집힌 선체를 손으로 만지며 사람을 찾고 있었다. 마지막 한 사람까지.
이 대목에서 나는 숨이 막혔다. 이탈리아 앞바다에서는 한국인 부부가 선체 안에서 살아 나왔는데, 2년 뒤 자기 나라 앞바다에서는 아이들이 선체 안에서 나오지 못했다. 세월호는 완전히 뒤집혀 물속에 잠겼고, 에어포켓에 생존자가 있을지 모른다는 절박함 속에서도 잠수사의 진입은 늦어졌다. 결국 배 안에서 구조된 생존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골든타임이라는 말이 그해 한국어 사전에 새로 새겨졌다. 흘려보낸 시간의 다른 이름으로.
처벌도 닮은 듯 갈렸다. 콩코르디아 선장 스케티노는 16년형을, 세월호 이준석 선장은 무기징역을 받았다. 대형 인명 사고 바카라임자에게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를 물은 한국 최초의 판례였다. 두 사건 모두 가장 무거운 형은 배를 버리고 도망친 선장에게 떨어졌다.
그런데 그 뒤에 가려진 것을 봐야 한다. 콩코르디아의 모회사 코스타 크루즈는 100만 유로의 벌금과 합의금으로 형사재판 자체를 피했다.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는 재판이 열리기도 전에 주검으로 발견됐다. 배를 그 자리에 세운 시스템, 안전을 비용으로 취급한 회사와 규제를 걷어낸 손들은 선장이라는 한 사람의 얼굴 뒤로 흐려졌다. 처벌은 개인의 얼굴에 응축되고, 구조는 몸통을 비껴간다. 스케티노 본인이 재판 내내 "바카라임이 전부 나한테만 떨어졌다, 나는 희생양이다"라고 외친 것이 역설적으로 이 구조를 증언한다. 한 사람을 제단에 올리면 나머지는 심판을 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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