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가 사람을 지우는 방식과 몸이 사라지는 상상력, 우연일까?
바늘이 홈을 찾고, 사잔 올 스타즈(Southern All Stars)의 '이토시노 에리'(Ellie My Love)가 방 안을 채운다. 그러자 형체도 없이 떠돌던 무언가가 서서히 돌처럼 굳어간다. 한 사람의 몸이, 노래 한 곡을 딛고 다시 태어나는 방식으로. 넷플릭스 시리즈 《가스인간》을 보는 내내 나를 붙든 건 괴수도 액션도 아니었다. 몸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가 노래 하나로 다시 형체를 되찾는다는 그 상상력 자체였다.
한 나라가 원치 않는 몸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나는 그 질문을 오래 붙들고 살아온 사람이다. 강제동원된 조선인들이 어디로 끌려가 어떻게 죽었는지, 그 마지막 기록조차 남지 않은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극 중 '인간연료'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곧바로 일제에 끌려가 불태워진 조선인들을 떠올렸다. 이게 나만의 피해의식인가 잠깐 의심했다.
연상호 감독이 이 작품의 주제를 직접 밝힌 인터뷰를 찾아 읽었다. 집단의 이익과 희생되는 개인의 충돌. 그가 참고했다는 소설, 오쿠다 히데오의 《양들의 테러리스트》도 도쿄 올림픽이라는 국가적 대의를 위해 한 개인이 테러리스트로 갈려나가는 이야기였다. 이 한 문장을 손에 쥐고 나니, 내가 느낀 피해의식이 사실은 이 극이 처음부터 겨냥한 과녁이었다는 걸 알았다.
권력이 특정한 목숨을 소모품으로 취급하는 논리는 국경을 건너 반복된다. 그러니까 우리가 나눠 가진 한(恨)이라는 게 은유가 아니라는 뜻이다. 일본 IP에 일본 배우, 일본 로케이션인데, 이 작품의 엔진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사의 트라우마로 돌아간다.
작품이 만들어진 방식
《가스인간》은 2026년 7월 2일 넷플릭스를 통해 190여 개국에 동시 공개된 8부작 시리즈다. 한국 제작사 와우포인트가 일본 도호와 손잡고 만든 한일 합작 프로젝트다. 1960년 도호가 만든 특촬영화 《가스인간 제1호》를 원작으로 삼되 이야기는 완전히 새로 썼다. 연상호 감독이 총괄 프로듀서와 각본을 맡고 류용재 작가가 공동 각본에 참여했으며, 연출은 가타야마 신조 감독에게 맡겼다. 기획에만 6년, 각본 개발에 3년이 걸렸다니 유행을 좇아 급하게 나온 결과물이 아니다.
형사 오카모토 켄지 역은 오구리 슌, 기자 코노 쿄코 역은 아오이 유우가 맡았다. 궁핍한 스트리머 남매로 히로세 스즈와 하야시 켄토가, 야쿠자 출신 기업인 모리 역으로 타케노우치 유타카가 나온다. 정작 극의 중심에 있는 가스인간 역은 연기 경험이 전혀 없는 모델 우타에게 돌아갔다.
시각효과는 《고질라 마이너스 원》으로 일본 영화 최초 아카데미 시각효과상을 받은 시로구미가 맡았고, 사잔 올스타즈의 '이토시노 에리'가 극 전체를 관통하는 키송으로 쓰였다.
키송에만 집중하면 이 작품의 음악을 절반은 놓치게 된다. 극 전체의 오리지널 스코어, 그러니까 '이토시노 에리'가 흐르지 않는 나머지 시간을 채우는 음악은 오오마마 다카시라는 1988년생 작곡가가 맡았다. 센조쿠 가쿠엔 음악대학에서 작곡과 편곡을 와타나베 토시유키에게 사사했고, 장르를 가리지 않는 다작형 음악감독으로 알려져 있다. 대형 애니메이션 《기동전사 건담 수성의 마녀》부터, 사형수를 다룬 스릴러 《사형에 이르는 병》, 도주극 《정체》 같은 서스펜스 영화까지 그의 필모그래피는 폭이 넓다. 흥미로운 건 그가 가타야마 신조 감독의 다른 시리즈 《간니발》 시즌2의 음악도 맡았다는 사실이다. 두 사람은 《가스인간》 이전부터 이미 손발을 맞춰본 사이였다. 그의 오리지널 스코어는 '이토시노 에리'가 등장하지 않는 장면에서 긴장과 정적을 조율하는 역할을 한다. 키송이 감정의 폭발이라면, 오오마마의 스코어는 그 폭발이 오기 전까지 숨을 참게 만드는 쪽에 가깝다.
연상호라는 이름을 조금 더 붙잡고 싶다. 그는 2016년 《부산행》 이후 쉬는 텀이라는 게 없는 사람이다. 《반도》, 《염력》, 《정이》, 《계시록》, 《군체》까지 직접 연출한 영화가 이어졌고, 《지옥》과 《기생수: 더 그레이》, 《선산》 같은 넷플릭스 시리즈에도 감독이나 각본으로 이름을 올렸다. tvN 드라마 《방법》의 극본을 썼고, 웹툰 《지옥》의 원작 스토리도 그가 썼다. 감독과 각본가와 제작자 사이를 오가며 한 해에 서너 편씩 내놓는 속도는 성실하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물론 이 다작에는 굴곡도 있다. 《얼굴》은 평론가와 관객 모두에게 고르게 호평받았지만, 《염력》은 양쪽에서 다 혹평을 받았다. 그런데도 그는 멈추지 않는다. 실패조차 다음 작품으로 넘어가는 에너지로 쓰는 사람처럼 보인다. 지난해 《얼굴》을 찍으면서 새로운 시스템 안에서의 작업을 갈망하게 됐다고, 앞으로는 더 실험적인 것에 도전하고 싶다고 그는 최근 인터뷰에서 말했다. 《가스인간》은 연상호 감독에게 안식이 아니라 또 하나의 실험이었을 것이다.
정성 들여 만든 만듦새와 본새가 좋은 일본 워크웨어 스트리트 브랜드 같은 시리즈. 《가스인간》을 보는 내내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액션 연출과 배우들의 표정 하나까지 어디 하나 허투루 다듬어진 구석이 없다. 일본식 장인정신, 그러니까 '모노주쿠리'라 부르는 그 집요함이 겉감을 짜고, 그 위에 한국 장르 영화 특유의 대담함이 재단선을 넣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 대담함이 어디서 왔는지는 뒤에서 다시 이야기하겠다.
인간을 연료로 쓴 나라
《가스인간》이 그리는 '화이트센터'는 취약한 사람들을 쓰고 버린 비밀 프로젝트다. 집단의 이익과 희생되는 개인이라는 연상호의 화두가 여기서 가장 먼저 몸을 얻는다. 극 중 화이트센터는 거리 정화라는 명목으로 노숙인과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데려갔고, 그들은 행방불명되거나 억울한 죽음을 맞았다. 형제복지원. 선감학원. 한국 관객이라면 누구나 떠올릴 이름들이다.
원작인 1960년 도호 영화에는 없던 설정, 각본을 쓴 연상호와 류용재가 일본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 안에 한국의 상처를 심어 넣었다. 하지만 한국의 상처가 일본 배경 위에 옮겨 심어진 결과로만 읽기에는 성에 안 찬다. 일본에도 이런 법이 있었다. 우생보호법. 1948년부터 1996년까지, 거의 반세기 동안 시행됐다. 유전병이나 장애가 있다고 판단되면 본인 동의 없이 불임수술대에 올랐다. 몸을 묶고, 마취를 시키고, 다른 병 때문이라고 속이기도 했다. 확인된 피해자만 1만 6,500명. 법이 사라진 지 20년도 더 지난 2019년에야 정부는 처음으로 고개를 숙였다.
2016년에는 사가미하라의 한 요양시설에서 전직 직원 우에마쓰 사토시가 장애인 19명을 살해했다. 그는 경찰에 자수하며 중증 장애인이 슬롯에 문제만 일으키는 원인이라고, 의사소통할 수 없는 이들은 안락사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몸이 문자 그대로 기체가 되어 사라진다는 이 드라마의 상상력은, 제도가 사람을 서류에서 조용히 지워온 오랜 역사와 같은 뿌리에서 자란 것처럼 보인다.
제도가 사람을 지우는 방식과, 몸이 정말로 사라지는 상상력. 이 둘을 정말 다른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까. 이 모든 게 일본의 원죄, 다시 말해 제국주의 전쟁범죄의 유전자에서 그대로 이어진 결과가 아닐까. 식민지를 소모품으로 다루던 논리는 패전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이번에는 자국의 부랑인과 장애인을 향해 형태만 바꿔 작동했다.
사람을 태워버린 국가의 가스라이팅
2차 세계 대전, 전쟁이 끝나갈 무렵 일본은 '옥쇄'와 '특공'이라는 말로 국민의 죽음을 미화했다. '산산이 부서지듯 아름답게 스러진다'는 그 말은, 보급도 증원도 없이 병사들을 버려둔 상부의 바카라임을 가리기 위한 수사였다. 패망 후 히가시쿠니 내각은 '일억총참회'를 내세웠다. 국민 모두가 반성해야 한다는 말이었는데, 정작 국민을 총동원해 죽음으로 몰아넣은 쪽은 사과하지 않고 되레 반성을 요구했다. 역사학자 요시다 유타카는 당시 다수의 민중이 "속았다"는 형태로 자기 협력의 문제를 넘겨버렸다고 짚었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네 바카라임도 있다고 돌리는 이 구조를, 가스라이팅이라는 말 말고 달리 부를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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