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서 홍대까지는 전철로 한 시간 남짓이었다. 수업이 끝나면 나는 강의실을 나서기 무섭게 그 한 시간을 향해 달렸다. 뭐가 그렇게 급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홍대에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매일 그 전철을 탔고, 홍대입구역 2번 출구 계단을 두 칸씩 밟아 올라왔다. 계단 끝에서 바깥 공기가 얼굴에 훅 끼치는 순간이 좋았다. 학교에서는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종류의 급함이었다.
지금 내가 매일 오르는 계단은 사무실 4층까지다. 그 계단은 숨이 차고, 나는 엘리베이터가 없어서라고 믿어두기로 했다. 그런데 스물두 살의 나는 누가 시키지도 않은 계단을 하루도 안 거르고 뛰어 올라갔다. 같은 두 다리로 오르는 계단인데 그때는 숨이 안 찼다. 아마 내려가는 쪽이 아니라 올라가는 쪽이라고 믿었기 때문일 거다.
대학에 가서도 하고 싶은 건 끝내 생기지 않았다. 2학년을 마치고 나는 한 해를 쉬었다. 남들은 그걸 방황이라고 불렀지만 나한테는 그냥 그만두고 싶어서 그만둔 거였다. 강의실에 앉아 있는 게 지겨웠고, 지겨움을 견디는 데 쓸 돈도 없었다. 그 한 해 동안 편의점 계산대와 고깃집 불판 사이를 전전하며 시급을 벌었다. 복학할 무렵엔 학교보다 알바 자리 쪽이 더 익숙해져 있었다.
수업이 끝나면 곧장 홍대로 달려간 건 복학하고부터였다. 클럽 근무는 주말뿐이었지만 나는 요일을 가리지 않고 그리로 갔다. 근무가 없는 날에도 갈 데가 거기밖에 없었다. 아는 사람이 사람을 구한다기에 따라간 지하 클럽에서, 나는 입구 도장을 찍고 빈 병을 치우고 취해 늘어진 사람을 문밖으로 끌어냈다. 4년제 다니는 애가 여기서 뭐 하냐는 말을 몇 번 들었지만 대꾸하지 않았다. 대꾸하는 순간 그 말이 맞는 말이 되니까. 백지로 낸 시험지가 틀려서 받은 빵점보다 덜 아프다는 계산을, 나는 그때도 여전히 쓰고 있었다.
태성은 그 클럽에서 같이 일하던 애였다. 나보다 두 살 어렸고, 서울에 있는 대학에서 컴퓨터를 전공했다. 원래는 무용을 했다는데, 그 얘기를 할 때만 목소리가 반 톤 낮아졌다가 금세 원래대로 시끄러워졌다. 현실적인 이유였다고, 춤으로는 밥을 못 먹더라고, 그마저도 농담처럼 흘렸다. 태성은 뭐든 농담처럼 말하는 애였다. 걸레를 던지며 소리 누나 오늘 표정이 장송곡이라고 놀리고, 빈 병 상자를 나르면서도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나는 시덥잖은 걸로 하루 종일 웃을 수 있는 인간을 그때 처음 봤다. 낯설었고, 조금 신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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