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잠을 처음 알게 된 건 잡지를 돌리러 다니던 어느 오후였다. 레코드 가게 스피커에서 낯선 노래가 흘러나왔다. 오후 네 시, 낮잠, 게으른 산바카라. 제목부터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사장님한테 물어보니 앨범 재킷을 보여줬다. 남자 둘이 벤치에 늘어져 자는 사진이었다. 세상에 급할 게 하나도 없다는 표정으로. 그 표정이 하루 종일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사무실에 돌아와 이번 호는 낮잠을 인터뷰하겠다고 했다. 편집장이 사진을 보고 감탄했다. 요즘 애들은 저렇게 여유를 판다니까. 판다는 표현이 정확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여유도 결국 상품이다. 상품인 이상 잘 포장할수록 잘 팔린다. 섭외비 같은 건 처음부터 기대도 안 했다. 이 잡지에서 그런 걸 바라는 사람은 없다.
동료가 사진을 넘겨보며 한마디 던졌다. 선배, 저도 이렇게 살고 싶어요. 아무것도 안 하는데 뜨는 삶. 나는 대답하지 않고 노트북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약속 장소는 홍대 골목의 오래된 카페였다. 약속 시간을 이십 분 넘겨서야 두 남자가 나타났다. 늦어서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그냥 자연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늦었다는 자각조차 없어 보였다. 시계를 볼 이유가 없는 사람들 같았다. 나는 그 이십 분을 커피 한 잔과 원고 뭉치로 채웠다. 늦는 사람을 탓하는 건 의미가 없었다. 그럴 에너지도 없었다. 다만 내가 늦을 땐 죽어라 뛰었고, 저 둘은 걸었다는 게 다르다면 다른 점이다.
인터뷰는 예상대로 흘렀다. 우리는 그냥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요. 열심히 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해요. 곡도 그냥 놀다가 나와요. 웃으면서 하는 말들이 하나같이 힘을 뺀 문장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 그들에게 동조하지도, 그렇다고 한심한 눈빛으로 내가 너보단 낫다라고 판단하지도 않았다. 그들의 삶과 음악을 판단하는 건 내 몫이 아니다. 그럴만큼 내 삶이 그들보다 멋지지도 않다. 게으름이 콘셉트인 밴드. 그저 그렇게 쓰면 되는 거였다. 취재를 오래 하면 손이 먼저 안다. 어떤 대답은 굳이 더 캐물을 필요가 없다. 이미 완성된 문장으로 나온다. 데뷔는 어떻게 하게 됐냐고 물었더니, 그냥 어느 날 이렇게 됐어요,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냥이라는 말을 이렇게 자주 쓰는 사람들은 대개 그냥이 아닌 이유를 숨기고 있다. 나도 인천의 그 대학을 왜 갔냐고 물으면 아직도 그냥이라고 답한다. 그 말 뒤에 숨은 게 뭔지는 나만 안다.
그들의 그늘도 사실은 취향이 아니었다. 개미로 살 자리 자체가 없어서 배짱이인 척 드러누운 거다. 정규직 공채는 해마다 줄었고, 남은 자리는 계약직 아니면 열정으로 채우라는 자리뿐이었다. 노래나 부를란다, 라는 말은 여유가 아니라 체념이 만든 농담이다. 나는 그 농담을 웃으며 받아 적었다. 웃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같이 무너질 것 같아서였다.
몇 해 전엔 아프니까 청춘이다, 라는 바카라이 나와서 다들 그 말을 위로로 받아 삼켰다. 아프면 환자지 청춘이냐고 되받아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도 그 바카라을 사서 읽었다. 화가 나지 않았다. 화를 내는 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화를 내봤자 달라질 게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마 그렇게 찍소리도 못 하고 아픈 걸 당연하게 받아들인 첫 세대였을 거다. 부모 세대보다 가난한 첫 번째 세대라는 저주를 슬롯는 우리가 스무 살 언저리 때부터 걸었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