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끝줄 소년, 허문오와 이강은 같은 사람일까

맨 끝줄의 유산|넷플릭스 시리즈 <맨 끝줄 소년>

by조하나






(스포일러 있습니다)



2026년 6월 26일, 넷플릭스 시리즈 《맨 끝줄 소년》이 여섯 편 전편으로 공개됐다. 첫 소설 이후 차기작을 쓰지 못하는 작가이자 연서대 국문학과 교수인 허문오가 강의실 맨 끝줄에 앉는 학생 이강의 재능에 사로잡히며 벌어지는 심리 서스펜스다.



연출은 《트렁크》와 《우리들의 블루스》, 《괜찮아, 사랑이야》를 통해 인물의 내면을 섬세하게 포착해온 김규태 감독이 맡았고, 원작은 스페인 극작가 후안 마요르가가 쓴 동명 희곡이다. 국내에서는 2015년 연극으로 먼저 무대에 올라 관객과 평단의 호평을 받았던 작품이다. 최민식이 첫 넷플릭스 출연작으로 허문오를, 최현욱이 이강을 연기했고 허준호와 김윤진, 진경, 정이서가 그 곁을 채운다.



화면의 결도 짚어볼 만하다. 안개가 낀 듯 낮은 명도와 높은 채도로 인물의 심리를 눌러 담는 톤은, 같은 감독의 전작 《트렁크》가 쓰던 문법과 겹쳐 보인다. 감독 스스로도 인물들의 심리와 내면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몰입하게 될 연출을 택했다고 밝힌 바 있는데, 이 안개 낀 색감은 그 몰입을 시각적으로 뒷받침하는 장치로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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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자리, 다른 시간



강의실 맨 끝줄에는 두 사람이 앉아 있었다. 시간을 스무 해쯤 벌려 놓고 보면 그렇다.


허문오 교수가 젊었을 적 그도 눈에 띄지 않는 자리에서 세상을 관조하던 소년이었다. 지금은 국문학과 교수라는 직함을 달고 학생들의 과제를 냉소로 채점하는 남자가 되었지만, 그 냉소의 뿌리를 따라 올라가면 한때 조용히 세상을 지켜보기만 하던 소년이 있다. 그리고 이강이 있다. 부모 없이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벌며 대입까지 치른, 강의실에서 가장 눈에 띄지 않는 자리를 스스로 선택한 학생이다.



같은 자리에서 시작한 두 사람이 스무 해의 시차를 두고 스승과 제자로 마주 앉는다. 이 작품이 서스펜스의 탈을 쓴 채 정말로 하려는 이야기는 아마 여기에 있을 것이다. 맨 끝줄에 앉았던 소년은 자라서 무엇이 되는가. 그리고 그 답을 먼저 살아버린 사람 앞에서, 아직 그 답을 살지 않은 사람은 무엇을 느끼는가.



원작 희곡에서 두 사람은 고등학교 문학교사와 학생이었다. 나이 차이는 있어도 같은 제도, 같은 교실 안에서 만나는 사이였다. 한국판은 이 무대를 대학으로 옮기고 신분의 낙차를 훨씬 크게 벌려 놓았다. 허문오는 명문대 국문학과 교수라는, 한국 슬롯가 가장 선망하는 학벌과 지위를 동시에 쥔 인물이고, 이강은 부모 없이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대며 대입까지 치른 공대생이다. 이 각색의 선택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원작이 개인 대 개인의 은밀한 관찰극이었다면, 한국판은 거기에 학벌과 계급이라는 한국 슬롯 특유의 축을 겹쳐 놓음으로써 이야기를 훨씬 구조적인 것으로 확장시켰다.



허문오가 몸담은 학교의 이름, 연서대학교도 눈여겨볼 만하다. 한국 드라마에서 연세대는 흔히 연희대나 신촌대 같은 이름으로 변형되어 등장해왔는데, 연서대라는 조어도 그 관습 위에 있다. 공교롭게도 연세대는 한강이 나온 학교이고, 한강은 실제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다. 이 작품이 다루는 건 정확히 문학이라는 제도의 권위를 누가 쥐고 누가 훔치는가라는 문제다. 실패한 소설가가 교수라는 직함 하나로 버티는 학교가 그런 이름을 달고 있다는 사실은, 허구 안에서 무너지는 문학의 권위와 현실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한국 문학의 위상을 나란히 놓고 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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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이라는 갑옷



이강은 처음부터 관계 속에 완전히 들어가지 않는다. 친구의 가족에게 다가가고, 그 집의 온기와 풍요를 지켜보고, 그 모든 것을 글로 옮기면서도 정작 자신은 그 안에 녹아들지 않는다. 이건 이강의 성격이 아니라 선택에 가깝다. 감정에 완전히 젖어드는 순간, 자신도 허문오처럼 무너질 것을 이강은 이미 알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래서 그는 관찰자라는 자리를 스스로 택하고, 모든 것을 소재로 치환함으로써 감정으로부터 자신을 차단한다.



그런데 마지막 화이자 여섯 번째 화에서 드러나는 사실은 이 방어가 완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앞선 다섯 편의 에피소드에서 카메라에 잡히지 않던 순간마다 이강의 눈빛과 표정에는 미세한 균열이 있었다는 것이 마지막 화에서 쏟아져 나온다. 그의 무심함은 타고난 성정이 아니라 매 순간 힘주어 유지해야 했던 자세였다. 그렇다면 이강도 결국 허문오와 다른 방식으로 같은 함정에 빠져 있었던 셈이 된다. 한쪽은 감정을 참지 못해 무너졌고, 다른 한쪽은 감정을 참는 일에 자신의 존재 전체를 걸었다. 관찰자의 자리를 받아들인다는 건 자유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내린 오랜 형벌에 가까웠다.



이강의 관찰이 어디까지 사실이고 어디부터 창작인지는 극이 끝날 때까지 확정되지 않는다. 그가 소설 속에 등장시킨 가사도우미라는 인물은 극 후반, 애초에 이강이 만들어낸 허구였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 인물을 둘러싼 불륜과 도벽, 죽음까지 전부 이강의 창작이었다. 이 반전이 무서운 이유는 단순한 트릭이어서가 아니다. 관찰자를 자처한 이강이 실은 관찰한 것과 지어낸 것의 경계를 스스로도 흐리며 살아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관찰이라는 갑옷 안에서 그는 현실을 보는 사람이 아니라 현실을 다시 쓰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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