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지금까지 호남이 아니었는가"를 물어야 한다

혐오의 청구서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by조하나





2026년 6월 29일, 같은 날, 두 개의 함성



오늘은 두 번 울었다. 한 번은 기뻐서, 한 번은 참담해서.



대한민국 역사에 커다란 뉴스가 공개됐다. 청와대 영빈관 무대에 이재용과 최태원이 직접 올라가 국민을 상대로 프리젠테이션을 했다. 삼성전자가 2655조원, SK하이닉스가 2100조원, 합쳐서 4755조원. 낯선 숫자다. 올해 정부 예산의 6.5배이자 우리나라 1년 GDP의 두 배에 해당하는, 역대 최대 규모의 투자 계획이었다. 그 가운데 800조원이 광주를 비롯한 서남권으로 간다고 했다. 메모리 반도체 공장 네 기가 그 평야 위에 들어선다고 했다.



광주에 800조원. 나는 그 숫자를 한참 들여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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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가 어떤 땅인가. 그 넓고 평평한 땅, 고층 건물이 드물어 하늘이 시원하게 트인 그 땅이 왜 비어 있었는지 우리는 안다. 1980년 5월 이후, 그곳의 모든 발전은 멈췄다. 사람들은 이력서에 고향을 광주라고 적지 못했다. 적으면 떨어졌으니까. 그래서 비워 두었다. 자기 고향의 이름을, 자기가 태어난 곳의 이름을, 빈칸으로 두고 살았다.



그 빈 땅, 그 빈칸이 이제 와서 AI 시대 반도체 공장의 최적 입지가 되었다는 것. 수탈의 흔적이 자연스러운 입지 조건처럼 불린다는 것. 나는 그 역설 앞에서 한 번 울었다.



그리고 오후, 두 번째 뉴스를 봤다.



같은 날, 목동야구장. 청룡기 야구대회 광주제일고와 배재고의 경기. 6대 2로 앞서던 8회초, 배재고 덕아웃에서 선수들이 단체로 율동까지 곁들여가며 외쳤다. "가야지 가야지 스타벅스 가야지." 최근 5·18을 조롱한 논란이 있던 스타벅스를 끌어와, 광주 팀을 향해 부른 응원가였다. 누군가는 '탱크데이'를 외쳤다. 광주제일고 코치진이 참다못해 항의하고 나서야 심판진이 중재에 나섰다.



율동까지 맞춰서. 단체로. 광주 팀을 향해서.



이놈의 나라는 광주 사람들이 하루 기뻐하는 것도 허락하질 않는구나.









"왜 지금까지 호남이 아니었는가"



정부 발표에 정치권이 들끓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용수와 전기와 인력 같은 제반 여건은 기업이 검토해 결정할 문제"라고 했다. 신동욱 최고위원은 이재용과 최태원을 향해 "권력이 무서워도 국가의 미래가 더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추경호 대구시장 당선인과 이철우 경북도지사, 대구·경북 의원들은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이것이 국가균형발전이 아니라 '국가 균열 발전'이라고 규정했다.



웃기고들 있다.



이 논리의 뼈대는 '기업의 자율적 판단을 정치가 왜곡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논리가 성립하려면 박정희 독재 시대 포항에 제철소 세운 것도, 구미에 전자산업 단지 조성한 것도 전부 관치이자 특정 지역 특혜가 되어야 한다. TK가 수십 년 누려 온 그 산업 인프라가 바로 그렇게 만들어졌다. 국가가 방향을 잡고 기업과 협력해 미개발 지역에 인프라를 까는 방식. 그게 산업 정바카라이다. 그 방식으로 지금까지 모든 것을 가져간 쪽이, 이제 그 방식으로 광주에 무언가가 가니까 '관치'라고 외친다.



더 우스운 건 그들이 든 두 가지 칼이 서로의 날을 벤다는 점이다. 한쪽에서는 "관치경제"라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기업이 권력에 팔이 비틀렸다"고 한다. 그 두 가지가 동시에 참이 되려면, 삼성과 SK가 4755조원짜리 경영 판단을 정치 압력 하나에 날려 버릴 만큼 무능하거나 겁이 많아야 한다. 지금이 군사독재 시대인가? 팔을 비튼다고 기업이 수천조를 쏟아붓나? 그 의심이야말로 이재용과 최태원을, 그리고 그 두 기업의 모든 주주를 모욕하는 말이다. 두 사람이 무대에 직접 올라 국민 앞에서 프리젠테이션을 한 건 그래서였을 것이다. 이건 내 판단이라고, 누가 시킨 게 아니라고, 국민 앞에서 직접 말하려고.



그리고 입지 논리. AI 시대에는 전력과 용수, 재생에너지 확보가 공장의 사활을 가른다. 수도권 용인 클러스터는 2030년대 중반이면 포화 상태에 이른다. 재생에너지가 풍부한 서남해안, 넓은 부지, 이미 들어선 국가AI데이터센터, 낮은 지진 위험. 기업이 이걸 몰랐을 리 없다. 그러니 "왜 호남이어야 하느냐"는 질문은 처음부터 틀린 질문이다. 옳은 질문은 이것이다. "왜 지금까지 호남이 아니었는가".



윤석열 정부 때 국가 첨단산업 특화단지 공모에서 광주·전남이 최고 점수를 받고도, 정무적 판단이라는 이름으로 그 점수가 뒤집혀 용인과 평택과 구미만 선정됐다. 그게 진짜 '관치'였다. 그때 '관치'를 외친 사람은 없었다.








광주를 사랑한다던 사람들은 어디 있는가



내란을 저질러도 자기 당 사람이면 입을 꾹 닫던 국회의원들이, 광주에 공장 하나 가는 일에는 악을 쓴다.



선거 때만 되면 광주를 찾던 사람들이 본색을 드러내는 타이밍이 바로 지금이다. 개혁신당 이준석은 틈만 나면 광주에 가서 눈물을 보였다. 그런데 오늘 그는 국민의힘 유의동 의원과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전략산업을 전당대회 경품으로 삼는다며 정부를 규탄했다. 두 사람의 지역구가 각각 동탄과 평택이라는 사실이 기사에 또박또박 적혀 있었다. 자기 지역구 이해관계를 국가산업 논리로 포장한 것이다. 광주가 불이익을 받던 그 특화단지 결정 때 그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광주가 수혜를 받는 날, 국민의힘과 나란히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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