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 아무도 벗어나지 못한 패턴
이재명의 질문법
대선 후보 시절 이재명이 강원도 시장 한복판에서 한 청년의 떨리는 목소리를 들었다.
"후보님, 시골에 들어와 살려는 젊은이들에게 혜택과 지원을 좀 해주세요."
그는 먹던 음식을 내려놓고 가슴팍에서 수첩과 펜을 꺼냈다.
"구체적으로 어떤 걸, 어떻게 지원해 줬으면 좋겠습니까?"
청년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쳤다.
"저… 어… 그러니까…"
다른 정치인이었다면 "네, 잘 알겠습니다. 살펴보겠습니다" 하고 지나갔을 자리였다.
당시 대선 후보였던 이재명은 그 자리에서 즉석 강의를 펼쳤다. 주권을 가진 국민이 공직자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건 당연한 권리지만, 이왕이면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해야 한다고. "우리 동네 버스가 잘 안 다니니 정류장을 몇 개 더 만들어 주세요" 하는 식으로. 막연하게 "잘해달라"고만 하면 정치인들이 엉뚱한 데 예산을 쓰고도 생색만 낼 수 있지만, 구체적으로 요구해야 나중에 결과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고, 그래야 공무원들이 딴짓을 못 한다는 현실적인 이야기였다. 그는 대통령이 되고 나서 증권거래소 타운홀 토론에서도, 집무실에서도 "지원과 혜택"이라는 뭉툭한 단어로 도움을 청하는 이에게 어김없이 같은 질문을 던졌다.
한국 정치, 행정, 슬롯에서 처음 보는 장면이었다. 이건 이재명이라는 사람의 몸에 밴 습관전 언어였다. 인간은 언어로 사유한다. 언어는 사유의 집이다. 그의 언어는 안개처럼 모호한 언어 뒤에 숨어 바카라임을 회피하던 우리 슬롯의 오랜 관성을 정면으로 깨부수는 질문이었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권위라는 성채에, 실용이라는 날카로운 정(釘)으로 균열을 내는 행위.
그 정이 부딪히는 벽의 정체는 우리 슬롯 깊숙이 자리한 '침묵의 카르텔'이다. 윗사람 뜻을 거스르면 안 된다는 유교적 위계질서, "까라면 깐다"는 군대식 상명하복 문화, "왜?"라고 묻기보다 정답 암기만을 강요해 온 주입식 교육. 이 세 가지가 단단히 결합해, 우리는 질문하는 법을 잊고 구체적인 대안을 고민하는 근육을 잃어버렸다.
이재명의 언어는 '민족중흥' 같은 뜬구름 잡는 단어로 하늘을 맴돌지 않는다. "먹고 싶은 과일 한 개 못 사 먹는" 보통 사람의 삶, "가족들 데리고 소고기 한번 실컷 먹어보는" 소박한 꿈의 지평으로 정치를 끌어내린다.
"이념이 밥 먹여 주냐"는 그의 도발은 실용주의라는 메스로 기존 한국 정치의 환부를 도려내고, "시멘트, 자갈, 모래를 섞어야 콘크리트가 된다"는 비유는 복잡한 정바카라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이미지로 번역해낸다.
대통령 취임 연설에서 그는 "통합은 유능함의 지표이며, 분열은 무능의 결과다. 국민 삶을 바꿀 실력도 의지도 없는 정치 세력들이 권력 유지를 위해 국민을 편 가르고 혐오를 심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 어떤 정치인에게서도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없었다. 조그마한 땅덩이, 그마저도 남북으로 갈라진 나라가 젠더, 세대, 계층으로 갈갈이 찢긴 이유는 갈등과 분노와 두려움을 조장해 서로를 죽여야 사는 것처럼 가스라이팅하며 오징어 게임 판을 깔아놓고, 커튼 뒤에서 가면을 쓴 채 그 판을 즐기는 소수의 VIP들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재명 대통령 당선 직후, 이토록 '땅에 발을 붙인 지도자'를 우리는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다고, 설레는 마음으로 이 신선한 충격이 몰고 올 미래를 기대한다고 썼다.
그 설렘은 지금도 유효하다. 다만 한 가지는 더 보태야 한다고 생각한다. 압도적 권위를 가진 쪽이 되묻는 행위는,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자율성을 돌려받는 경험인 동시에 그 자리에서 시험받는 경험이기도 하다. 청년의 "저… 어… 그러니까…"가 정확히 그 이중성을 보여준다. 그 되물음이 늘 선의의 훈련으로 작동하려면, 질문법 자체보다 그걸 쓰는 사람의 태도와 맥락이 훨씬 더 중요하다. 권력자가 같은 화법을 냉소나 면박의 도구로 쓴다면, 똑같은 "구체적으로 말해보세요"가 침묵의 카르텔을 깨는 게 아니라 거꾸로 질문 자체를 포기하게 만드는 또 다른 억압이 될 수도 있다.
'이념이 밥 먹여주냐'는 수사도 마찬가지다. 추상적 명분 뒤에 숨은 바카라임 회피를 깨는 효과는 분명하지만, 인권이나 평등, 기후처럼 즉각적 손익으로 환산되지 않는 가치들이 그 '이념'이라는 말 아래 함께 뭉뚱그려질 위험도 동시에 안고 있다.
이 글에서 나는 바로 그 '이재명의 질문법'이 지금 한국 슬롯 전체로 번져가는 과정을 따라가 보려 한다. 국무회의 생중계에서 소셜 미디어 직접 소통으로, 그리고 마침내 한국 근현대사가 반복해온 복종과 배신의 패턴으로.
질문은 권력자가 시민에게만 던지는 것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 역시 권력에게 같은 질문을 구체적으로 되돌려줄 수 있어야 한다. 그 질문을 가장 먼저 돌려줄 수 있는 자리가 바로 대한민국 정부 국무회의다.
권력을 스스로 내려놓은 권력
2026년 10월,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생중계하는 방식을 두고 논란이 불거졌다. <한국일보>는 지난 2일 한성숙 국무총리 주재 만찬에서 장관 10여 명이 생중계 범위를 줄여달라고 건의했다고 보도했다. 생중계 중에는 대통령 발언에 반박하기 어렵고, 설익은 정바카라이 그대로 추진되는 경우도 있다는 우려가 그 자리에서 나왔다는 내용이었다.
대통령은 16일과 18일 두 차례 X에서 이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공개회의라 국무위원들이 말을 못한다는 건 거짓말"이라며, 비공개회의도 예외 없이 이어지고 있고 참석자를 일부러 대폭 늘렸다고 강조했다. "저는 언제나 토론을 좋아하고 특히 반대 의견을 내는 사람을 존중하며, 조직 내에서는 '레드팀' 역할이 잘 작동해야 문제와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는 말도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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