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날아오른 선수의 날개를 꺾는 나라

축구 대표팀은 대한민국 슬롯의 축소판

by조하나





캡틴 소니가 벤치 멤버로 시작했다



2026 북중미 월드컵 한국 vs 남아공 조별 리그 3차전. 그라운드에 손흥민이 없었다. 워밍업하러 선수들이 나왔을 때, 전광판에 그의 얼굴이 뜨자 관중석에서 함성이 터졌다. 그 함성은 환호가 아니었다. 그가 거기 있어야 한다는 외침이었고, 동시에 그가 거기 없다는 사실에 대한 항의였다. 선수도 관중도 모욕감이 드는 순간이었다.



손흥민은 2014년 브라질부터 매 월드컵을 선발로 뛰어온 선수다. 12경기 연속 선발이었다. 그런 선수가 커리어의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무대에서, 그것도 비기기만 해도 올라가는 경기에서 처음으로 벤치에 앉았다. 그리고 한국은 졌다. 후반에 그가 들어왔지만 이미 늦었다. 경기가 끝난 뒤 그는 고개를 숙였다. "팀이 지는 걸 경기장에서 많이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다." 날씨 탓도 분위기 탓도 아니라고 그는 선을 그었다.



무능한 감독이 만든 상황과 그로 인한 결과 앞에서, 프리미어 리그 득점왕 캡틴 소니가 대신 고개를 숙였다. 나는 이 장면을 한참 들여다봤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건 한 경기의 패배가 아니다. 이건 한 나라가 자국민을, 아니 자기 자식을 다루는 방식의 축소판이다.



이번 대회 내내 손흥민이 겪은 일들을 떠올려 보면 더 그렇다. 첫 경기를 치르기도 전에, 그를 전담 취재해야 할 한국 기자들이 열린 마이크에 뒷담화를 흘렸다. 주장이라고 소대장처럼 뛴다느니, 군대도 안 갔다 온 XX라느니. 병역은 한국에서 가장 예민한 자리를 건드리는 말이다. 손흥민은 2018년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정당하게 면제를 받았는데도, 그 면제가 조롱의 빌미가 됐다.


생각할수록 씁쓸한 일이다. 그 기자들은 손흥민을 취재하러 따라간 사람들이다. 그의 경기를, 그의 기여를 본국에 전달하러 간 사람들이 뒤에서는 그가 이룬 기여로 받은 병역 면제를 조롱했다. 기자들의 뒷담화는 단순한 실언이 아니다. 한국의 전통적인 시스템 안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그 제도 밖에서 훨씬 더 큰 세계를 개척한 사람을 마주했을 때 느끼는 근원적 불편함이다. 손흥민은 수능을 잘 봐서 출세한 것도 아니고, 선배들한테 잘 보여서 올라간 것도 아니다. 스스로 세계로 나가서 세계적 수준이 된 사람이다. 그 존재 자체가 한국의 서열 문법을 무력화한다.


선수들이 자국 언론을 보이콧할 만큼 분노했고, 이 음성은 순식간에 해외로 퍼졌다. 한국인은 늘 자기 것을 깎아내리는 데 안달이 난 이상한 민족이라는 조롱까지 따라붙었다.



한국 축구 대표팀은 한국 슬롯의 축소판이다. 국제무대에서, 전 세계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스스로 날아오른 슈퍼스타 손흥민은 자기 편이어야 할 고국 사람들에게 두 번 베였다. 한 번은 고국 취재진의 마이크에, 또 한 번은 감독의 라인업에. 어른들은 서로 바카라임을 미루고, 청년은 입을 닫는다. 가장 많은 것을 짊어진 선수들이 가장 말이 없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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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키웠다"는 거짓말



국가대표 축구팀 홍명보 감독은 공식적으로 "체력 안배"를 말했다. 상대가 지친 후반에 손흥민을 투입하는 게 팀에도 본인에게도 낫다고 판단했다고. 전술처럼 들리지만, 세계에서 자기 가치를 증명한 선수를 대회 내내 본래 포지션이 아닌 자리에 세워 못하게 만든 다음, 그 부진을 근거로 벤치로 보낸 흐름을 보면 다른 그림이 보인다.



여기서 손흥민이 어떻게 만들어진 선수인지를 떠올려야 한다. 그의 아버지 손웅정은 한국 유소년 축구 시스템 바깥에서 아들을 키웠다. 우승 타이틀에 집착하는 진학 시스템을 거부하고, 직접 가르쳤다. 그리고 그 아버지는 오랫동안 축구협회에 쓴소리를 해온 사람이다. 손흥민은 한국 축구 카르텔이 "우리가 키웠다"고 말할 수 없는 거의 유일한 슈퍼스타다.



다만 손웅정을 깨끗한 영웅으로 그리고 싶지는 않다. 그는 2024년 자신의 축구 아카데미에서 유소년 선수를 체벌하고 폭언한 혐의로 고소당했고, 법원은 그와 코치진에게 벌금형과 아동학대 치료프로그램 이수를 명령했다. 손흥민 자신도 체벌을 포함한 혹독한 방식으로 길러졌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니까 손웅정은 한국 체육 관료 카르텔에는 저항했으면서도, 한국 체육계의 폭력적 훈련 문화는 자기 손으로 재생산한 사람이다. 시스템의 부조리는 거부했지만, 시스템이 만든 신체 통제의 방식은 몸에 새기고 있었던 것이다. 이게 한국 스포츠 폭력 문화의 가장 복잡한 층위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한 사람 안에 같이 산다. 누군가는 자신이 견딘 폭력을 다음 세대에게 그대로 물려주는 것으로 자기 고통을 정당화한다.



바로 그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한국의 체육 관료 문화에서 선수의 성공은 시스템의 공으로 귀속되어야 한다. 그런데 손흥민에게는 그 서사가 성립하지 않는다. 토트넘이라는 외부 거점에서,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이라는 객관적 증거로, 협회의 승인 없이 이미 더 큰 존재가 되어버린 선수. 통제 밖에 있는 선수를 한국 시스템은 어떻게 다루는가. 인정이 아니라 견제다.



홍명보가 손흥민에게 개인적 열등감이나 자격지심을 품었는지 나는 알 수 없다. 그저 짐작만 할 뿐이다. 다만 구조적으로 두 사람은 처음부터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카르텔이 자리에 앉힌 감독과, 카르텔 바깥에서 자란 선수. 홍명보는 한국 축구 카르텔 안에서 레전드이고 그 권위로 감독직에 올랐다. 2014 월드컵 참사에도 불구하고 그를 다시 감독직에 올린 건 축협 고대 카르텔이었다. 한편, 손흥민은 국내 시스템과 무관하게 세계 무대에서 스스로 증명한 선수다. 권위는 시스템에서 나오는데, 그 선수의 가치는 시스템과 무관하게 증명된 것이다.



그래서일까. 한국 위계 구조에서 자신의 권위와 승인 없이 이미 더 큰 존재가 된 선수 손흥민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르는 홍명보 감독의 모습이 월드컵 경기 내내 드러났다. 홍명보의 문제는 전술적 능력의 문제만이 아니다. 시스템의 문제다. 자신보다 모든 면에서 훨씬 탁월한 선수를 전술적으로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 그 선수 위에 위계적으로 앉아 있는 상황. 이건 한국 조직 어디서나 반복되는 패턴이다. 능력이 아니라 연차와 인맥으로 자리에 올라간 사람이, 자신보다 뛰어난 아랫사람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르고, 결국 그 사람을 잘못 쓰다가 망친다.



여기에 더해 홍명보 감독은 자기 사람은 성과와 무관하게 썼다. 홍명보 표 '인맥 축구'다. 울산 시절 인연인 설영우는 부진 속에서도 계속 선발로 나왔고, 독일 대표팀까지 포기하고 어머니의 나라를 택한 옌스 카스트로프는 세 경기 내내 단 1분도 뛰지 못하다가 지는 경기 후반에야 들어왔다. 데려와서 벤치만 달구게 할 거였다면, 왜 옌스를 귀화까지 시켜 데려온 건가.







금메달을 따야만 말할 수 있는 나라



손흥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안세영도 있다. 그는 손흥민과 달리 해외 거점도 없었다. 국내 실업팀 소속으로, 협회 시스템 안에 완전히 들어와 있으면서 세계 1위가 됐다. 협회가 "우리가 키웠다"고 말하기 가장 좋은 구조였고, 그래서 통제도 가장 심했다. 부상은 방치됐고, 대표팀 악폐습을 건의했지만 "오래된 관습"이라는 이유로 묵살됐다. 선수 개인의 후원 계약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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