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완수사권 전면 폐지'라는 아홉 글자의 함정
아홉 글자의 기회비용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
이 아홉 글자가 지난 1년 동안 대한민국 국회 의사일정을 모조리 잡아먹었다. 모든 언론의 지면을 차지했다. 모든 시사 정치 유튜브 라이브 채팅창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밀려난 법안들이 있다. 의료비 부담을 낮추는 법안, 돌봄 공백을 메우는 법안, 청년 주거를 지원하는 법안. 22대 국회 전반기 법안 가결률은 여야 평균 7% 안팎, 역대 최저였다. 열 개 중 아홉 개가 그 자리에서 잠들었다. 그 잠든 법안 하나하나의 뒤편에는, 의료비를 걱정하고, 집값을 계산하고, 아이 맡길 곳을 찾다 지쳐버린 조용한 사람들이 있다.
시끄러운 싸움이 조용한 포기를 만든다. 그리고 그 포기의 대가는 언제나 싸움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이 치른다.
이 구조가 낯설지 않다. 한국 슬롯 곳곳에서 반복되는 패턴이다. 사법, 검찰, 공무원, 언론, 교육, 노동에서 문화와 체육까지. 학연, 지연, 배경으로 똘똘 뭉친 카르텔들이 제도 안에 내장되어 있고, 그 카르텔 안에 있는 사람들은 딱히 나쁜 의도가 없어도 자연스럽게 '자기 사람'을 밀어주고 '바깥 사람'을 배제한다. 악의가 아니라 관성으로 작동하는 게 더 무서운 이유다. 그리고 누군가 그 카르텔을 건드리려 하면, 카르텔은 항상 같은 방식으로 반응한다. '지금은 더 큰 적과 싸울 때니까 내부 비판은 나중에.' 그러나 그 '나중'은 영원히 오지 않는다.
한 세기 가까이 아무도 건드리지 않은 곳
종교 카르텔.
이재명 정부가 건드리기 전까지, 한 세기 가까이 아무도 감히 건드리지 않았던 곳이다.
바로 어제 6월 24일, 이만희 신천지 총회장이 구속됐다. 95세. 신도 5만여 명을 국민의힘 바카라임당원으로 조직적으로 가입시킨 혐의다. 이재명 대통령 지시로 출범한 정교유착 검경 합동수사본부가 출범 169일 만에 그의 신병을 확보했다. 오늘 6월 25일 오전 8시, 사랑제일교회에 경찰이 압수수색에 들어갔다. 2020년부터 2025년 상반기까지 31차례, 102억 원. 자유통일당에 흘러들어간 돈이다. 금전대차계약이라는 형식을 빌린 사실상의 불법 정치자금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사랑제일교회를 건드린 건 2020년 코로나 집단감염 때였다. 방역 명분이었다. 정교유착의 구조를 문제삼은 게 아니었다. 위기가 지나자 다시 손을 뗐다. 신천지와 통일교는 아예 손도 대지 않았다. 왜였을까. 이들은 민주당에게도 '표밭'이기 때문이다. 종교 세력은 진보든 보수든 가리지 않고 권력이 있는 쪽에 문을 두드린다. 카르텔은 실용적이다. 그리고 정치인은 그 실용성을 알면서도 침묵을 선택해 왔다. 광복 이후 한 세기 가까이.
이재명 정부는 그 침묵을 깼다. 종교 카르텔을 건드린 대한민국 최초의 정부. 그런데 이 정부가 '반개혁'이라고?
'개혁'과 '진보'라는 이름의 카르텔
검찰 권력의 핵심은 수사권이 아니라 기소독점권에 있다. 누구를 기소하고 누구를 기소하지 않을지 결정하는 그 권한이 검찰을 정치권력과 결탁하게 만드는 근본 원인이다. 이걸 뻔히 아는 사람들이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라는 아홉 글자만 내세우고 있다.
이재명 정부가 실제로 공을 들이는 건 기소독점권의 분리다. 오는 가을 10월, 검찰청이 폐지되고 기소와 공소유지를 담당하는 공소청과 중대범죄를 수사하는 중수청이 정식 출범한다. 수사와 기소를 구조적으로 분리하는 것. 이게 진짜 개혁의 방향이다.
그렇다면 공수처는? 문재인 정부가 '검찰개혁'의 가장 큰 업적이라며 만든 그 기관. 공수처는 수사권이 있지만 기소권이 없는 사건이 많다. 공수처가 기소 의견을 내도 검찰이 불기소로 덮으면 그만이다. 설계 단계부터 실패였다. 독립성도 취약하게 만들어졌다. 그 실패작을 방치한 채 지금 다시 개혁을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조국혁신당이다.
슬롯학자 로베르트 미헬스는 1911년에 이미 말했다. "어떤 조직이든, 아무리 민주적 이념으로 출발했어도,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소수 지도층이 권력을 독점하는 과두제로 변한다." '과두제의 철칙'이다. 혁명 조직도, 진보 정당도 예외가 없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 실패는 도덕적 실패가 아니라 이 구조적 필연이었다. 검찰을 개혁하겠다던 사람들이 결국 검찰을 장악하려 했다. "검찰을 내 편으로 만들겠다"는 욕심이 "검찰을 정상으로 돌리겠다"는 마음을 먹어버린 것이다. '적폐 청산'을 명분으로 윤석열 검찰의 특수부를 확대해주고, 결국 그 칼이 자신에게 향하자 뒤늦게 검찰개혁을 외쳤다. 카르텔 안에서 비판 능력을 잃으면 판단력이 아니라 소속감으로 움직이게 된다. 그 소속감이 만든 공간에서 카르텔은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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