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 유시민, 그리고 손흥민과 이재명

벤치에 앉은 영웅, 그라운드에 선 카르텔

by조하나


손흥민이 벤치에 앉은 날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 리그, 한국 대 남아프리카 공화국 경기.



손흥민은 벤치에 앉아 있었다.




2026062511043882561_1782353079_0030019023.jpg




그는 후반전 호각이 울리고 나서야 그라운드에 들어갔다. 세계가 십 년 넘게 그의 이름을 부르고, 그가 뛰던 리그가 그를 주장으로 세웠던 그 선수가, 정작 자기 나라인 대한민국 대표팀의 마지막 조별리그 경기에서는 가장 늦게 불려 나왔다. 그리고 한국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 0 대 1로 졌다. 조 3위. 와일드카드 결과를 사흘이나 더 기다려야 하는 굴욕의 자리로 내려앉았다.



감독은 설명을 내놓았다. 체력 안배라고. 대표팀과 선수 본인을 위한 판단이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을 의심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어떤 장면은 설명 보다 먼저 우리 몸에 와서 박힌다. 가장 강한 선수가 가장 늦게 들어가는 장면. 야생에서 진짜 실력으로 올라온 사람이, 자기를 키우지 않은 시스템 앞에서 묘하게 작아지는 장면. 우리는 그 장면을 많이 봤다. 축구장에서만 본 게 아니다.







2026062511123188219_2.jpg
images.jpg



자기보다 잘난 사람을, 죽어도 못 보는 사람들



상징적 이름을 불러본다. 홍명보. 그리고 유시민.



한 사람은 한국 축구 기득권의 한복판에서 자랐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참사로 한 번 낙마했다가, 십 년 뒤 그 시스템의 힘으로 다시 돌아왔다. 다른 한 사람은 친노에서 친문으로 이어지는 대한민국 진보 진영 최대의 상징 자본을 수십 년간 손에 쥐었다.



그리고 두 사람 앞에, 그 틀 바깥에서 올라온 두 사람이 있다. 손흥민은 대한축구협회의 학연 라인이 키운 선수가 아니다. 유럽 무대에서 순전히 발로, 몸으로 만들어진 선수다. 이재명은 친노의 적통이 아니었다. 성남이라는 지역 바닥에서 자생적으로 솟아오른 정치인이다.



야생에서 올라온 자를 카르텔 안의 사람이 마주했을 때 벌어지는 일은 늘 비슷하다. 그 불편함을 공적인 언어로 갈아입힌다. 손흥민의 기용을 둘러싼 판단은 '전술'이 되고, 이재명 지지층을 향한 분류는 '가치'가 된다. 유시민이 민주당 지지자를 A와 B와 C로 나누어 부르자 여권 민주당 지지자 전체가 흔들렸고, 결국 국무총리에 대통령까지 나서서 통합을 말하며 집권당으로서의 태도와 바카라임을 직접 지적하고 설명해야 했다. 사적인 경쟁심이 공적인 정의의 옷을 입는 과정. 우리는 그걸 실시간으로 지켜봤다.



이 사람들의 공통점은 딱 하나다. 안전한 곳에서 자랐고, 안전하지 않은 곳에서 진짜 실력으로 올라온 사람을 견디지 못한다. 그 못 견딤이 얇은 정의의 포장지를 뚫고 비어져 나온다. 사람들 눈에 다 보인다. 포장이 얇을수록 더 잘 보인다.



그 안전한 곳의 이름이 있다. 한쪽은 고려대고, 한쪽은 서울대다.



대한축구협회의 핵심 라인을 들여다보면 하나의 학교가 반복된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은 고려대 경영학과 80학번이다. 이임생 기술총괄이사는 홍명보와 같은 고려대 출신으로 2년 터울 선후배 사이다. 홍명보 감독은 고려대 체육교육과 87학번이다. 사퇴한 정해성 전력강화위원장도 고려대를 나왔다. 협회장, 기술이사, 대표팀 감독이 모두 같은 학교 선후배다. 감독 선임 과정에서 이임생이 전력강화위원들에게 사실상 통보로 절차를 처리했고, 문화체육관광부 감사에서 권한 없는 선임이 가장 먼저 지적됐다. 홍명보는 감독 선임 과정에서 다른 외국인 감독들과 달리 서류조차 내지 않았다는 것이 지난 청문회에서 드러났다. 결론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고려대 선후배 사이에서.



유시민의 카르텔은 다른 교정에서 시작된다. 그는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이다. 1980년 서울대 총학생회 대의원회 의장을 지냈다. 운동권의 핵심 인물로 이해찬 의원의 보좌관을 거쳤고, 노무현 정부에서 장관을 했으며, 노무현 사후에는 재단 이사장으로 그 상징 자본의 수문장이 됐다. 서울대, 운동권, 친노. 한국 진보 정치에서 이 세 가지가 겹치면 다른 어떤 자격증도 필요 없다.



그러나 이재명은 그 자격증이 없다. 검정고시 소년공 출신, 중앙대 법학과, 성남시장, 경기도지사. 친노의 눈길 한 번 받지 않고 자기 힘으로 민주당 대표가 됐고 대통령이 됐다.



학연 카르텔이 무서운 이유는 비리의 문제가 아니다. 같은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의 판단을 자연스럽게 신뢰하고, 그 신뢰가 공식 절차를 비공식으로 대체하는 과정에서 외부인은 처음부터 배제된다는 것이다. 아무도 '고려대를 뽑자'라고 회의를 열지 않는다. 그냥 가장 익숙한 사람을,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부른다. 그 익숙함과 신뢰의 지도 위에 고려대가 있고, 서울대 운동권이 있다. 지도 바깥에 손흥민이 있고, 이재명이 있다.








전성기가 지난 사람들이 다음 세대를 만나는 방식



이 지점에서 우리는 시스템을 잠시 내려놓고 두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봐야 한다. 시스템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것이 있다. 홍명보는 왜 손흥민을 저렇게 쓰는가. 유시민은 왜 이재명 앞에서 저렇게 반응하는가.



홍명보의 전성기는 2002년 여름에 끝났다. 그해 그는 아시아 선수 최초로 월드컵 브론즈볼을 받았고, FIFA 올해의 선수 17위에 올랐으며, FIFA 100 선정 선수가 됐다. 한국 축구 역사상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선 수비수였다. 그것이 그의 최고점이었다.



이후 감독으로서의 홍명보는 다른 이야기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은 참사와 다름없었다. 좋은 선수가 반드시 좋은 감독이 되는 게 아니다. 그의 국제 경기 감독 능력은 이미 충분히 드러났다.



그리고 10년이 지났다. 반면 손흥민은 계속 올라갔다. 홍명보가 선수로서 닿지 못한 세계로. EPL 득점왕, 토트넘의 주장, 유럽 팬들에게 진심으로 사랑받는 아시아 선수. 세계가 그의 이름을 안다. 그것도 한국 축구 협회가 만든 것이 아니라, 손흥민 혼자 만든 것으로.



발달심리학자이자 아동정신분석학자인 에릭 에릭슨은 성인 발달의 핵심 과제로 '생성감 대 침체'를 말했다. 자신보다 나은 다음 세대를 키우고 넘겨주는 일이 성숙한 어른의 과제라고. 그 과제를 완수하는 사람은 자기 전성기가 지났어도 침체에 빠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을 하지 못하고 다음 세대의 성공을 자신의 위협으로 처리하는 사람은 침체가 온다. 그 침체가 개인 안에서만 머문다면 그나마 낫다. 그것이 감독의 권한, 논객의 영향력과 결합하면 공동체의 재앙이 된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조하나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나를 위해 쓴 문장이 당신에게 가 닿기를|출간작가, 피처에디터, 문화탐험가, 그리고 국제 스쿠버다이빙 트레이너

3,087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17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338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