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깨어있다고 믿으면 오히려 깨어나기 어렵다

민주주의의 탈을 쓴 전체주의

by조하나



2024년 12월 3일 밤, 계엄군이 국회로 향했다. 그날 우리는 대놓고 민주주의를 짓밟으려는 권력이 어떤 얼굴인지 똑똑히 봤다. 탱크와 군홧발과 헬기. 그건 알아보기 쉬웠다. 누구나 그게 무엇인지 알았기에, 사람들은 그 밤 국회 앞으로 달려갈 수 있었다. 본능이 먼저 움직였다. 저건 아니라고.



그런데 요즘은 12.3 내란 때보다 더 자주 마주치는 다른 얼굴이 있다. 탱크도 군홧발도 없는 얼굴. 오히려 민주주의라는 말을 가장 크게 외치는 얼굴. 자신이 민주주의를 지킨다고 굳게 믿으면서, 정작 반민주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들. 나는 이쪽이 더 무섭다.






확신이라는 출발점



한나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전체주의가 어떻게 시작되는지를 파고들었다. 그가 본 전체주의의 출발점은 거창한 악의 선언이 아니었다. 사실과 허구를 가르는 감각이 무너지는 자리, 거기서 전체주의는 자란다. 자신이 옳다는 확신, 그 확신을 위해 사실을 재배열하는 능력. 팩트를 통째로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팩트의 배열과 맥락을 바꿔 전혀 다른 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그 그림을 매일 들이켠 사람에게는, 그 그림이 곧 현실이 된다.



지금 한국 슬롯에서 이 능력이 정교하게 작동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자신을 '민주 진영의 적통'이라 부른다. 자신이 죽어도 옳다는 확신을 쥐고, 사실을 재배열하며 사람들을 호도한다. 선거 결과는 자기가 이길 때만 정당하고, 표현의 자유는 자기편의 말에만 적용되고, 적법한 절차는 자기 목적에 유리할 때만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면서 스스로를 민주주의자라 규정한다. 바깥에서 그걸 지적하면 오히려 공격받는다. 민주주의의 적이라고. 반민주 세력이라고.



대놓고 외치는 전체주의보다 이게 더 위험한 이유가 있다. 군홧발은 저항을 부른다.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경계하니까. 그러나 민주주의의 언어로 포장된 전체주의적 사고는 저항 자체를 봉쇄한다. 그걸 비판하는 순간, 당신이 민주주의의 적이 되니까. 비판의 언어를 미리 빼앗아 가는 것이다. 말을 빼앗긴 사람은 싸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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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 재판의 진짜와 가짜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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