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나무를 심는 어른이 있는가

검찰개혁과 포퓰리즘

by조하나


나무를 심는다는 말



영국 수상 마거릿 대처가 1982년 보수당 전당대회에서 이런 말을 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자녀와 손자들을 위해 나무를 심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우리가 정치를 할 이유가 없다." 연설문 속 그 문장은 지금도 보수당 지지자들이 즐겨 인용한다. 나는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이상하게 마음이 걸렸다. 좋은 말이었다. 너무 좋은 말이었다. 그래서 걸렸다.



대처는 "슬롯 같은 것은 없다"고 선언한 사람이다. 복지국가의 뼈대를 걷어내고, 노조를 해체하고, 금융 규제를 풀어 단기 수익 중심의 경제 구조를 영국 땅에 심은 사람이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가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1984년 탄광 파업이 한창이던 더럼의 작은 마을, 아버지와 형이 피켓을 들고 거리에 서 있는 동안 열한 살 빌리는 발레를 배운다. 그 영화가 아름다운 건 빌리의 재능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재능이 피어나는 배경이 대처의 정바카라으로 무너져 내리는 노동자 공동체였기 때문이다. 탄광이 닫히고, 일자리가 사라지고, 아버지의 자존심이 꺾이는 그 시간 속에서 빌리는 춤을 췄다.



대처가 자녀와 손자들을 위해 심는다고 했던 그 나무의 그늘 아래, 빌리의 아버지 같은 사람들은 앉아 쉬지 못했다. 그녀가 실제로 심은 것은 다음 세대가 그늘에 앉아 쉴 수 있는 나무가 아니었다. 당장 수확 가능한 작물이었다. 그 작물의 이름은 사유화였고, 규제 완화였고, 금융화였다. 그리고 그 수확은 그녀의 시대에, 그 세대에 거의 다 이루어졌다.



말과 행동 사이의 이 구조적 단절을 나는 '나무 심기의 언어'라고 부르고 싶다. 미래를 위한 헌신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현재를 위한 포지셔닝인 말. 정치의 세계에서 이 언어는 너무 자주 쓰인다. 그리고 너무 잘 먹힌다.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 아홉 글자의 마법



지금 한국에서도 이 언어가 쓰이고 있다. 다만 형태가 다르다.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 아홉 글자다. 광복 이후 지금까지 한 세기에 가깝도록 아무도 손대지 못했던 검찰개혁을, 문재인 정부 5년 내내 시작도 못했던 그 거대하고 까다로운 과제를, 이 아홉 글자로 치환해 '개혁의 마침표'라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 중 일부는 검찰개혁에 실패한 당사자들이다. 또한, 그들 중 일부는 그 시절 검찰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은 개혁의 선명성 경쟁에서 가장 큰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들이 만들어 놓은 공수처는 어떻게 됐는가. 검찰 견제를 명목으로 설계하고 통과시킨 그 기관이 출범 이후 무엇을 했는지, 그들은 왜 말하지 않는가. 공수처의 구조적 한계를 직시하고, 그것을 제대로 보완하거나 고쳐 쓸 생각은 하지 않으면서, 아홉 글자만 외치고 있다. 자신들의 실패작은 방치한 채 다음 개혁을 외치는 것. 이것은 개혁인가, 면피인가, 아니면 사적 복수인가.



검찰 권력의 핵심은 기소독점권에 있다. 누구를 기소하고 누구를 기소하지 않을지 결정하는 그 권한이 검찰을 정치 권력과 결탁할 수 있는 기관으로 만들어온 근본 원인이다. 이재명 정부는 검찰청을 폐지하고 수사 기능은 중대범죄수사청으로, 기소 기능은 공소청으로 분리하는 길로 갔다.



이제 몇 달 후인 2026년 10월 검찰청이 문을 닫는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그런데 이 거대한 구조 개편이 진행되는 와중에 민주당 일부와 조국혁신당, 즉 '국회' 일부에서는 그것과 별개로 보완수사권 폐지를 독자적 깃발로 세워 흔들고 있다. 큰 그림의 설계는 정부와 법무부가 정교한 수술하듯 조용히 진행하고 있는데, 그 옆에서 아홉 글자 슬로건을 들고 카메라 앞에 서서 언론의 조명과 사람들의 관심을 돌린다. 마치 보완수사권을 없애면 완벽한 검찰개혁을 이루는 것처럼 사안을 극도로 단순화하고 이슈화한다. 그로 인해 시민들이 충분한 숙의를 통해 슬롯적 합의를 할 시간과 에너지가 소진된다. 검찰개혁의 구조와 절차를 모르고 저 아홉 글자를 외친다면 개혁을 말할 자격이 없는 것이고, 알면서 외친다면 국민을 속이는 것이다.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BBC 저널리스트 리처드 피셔의 바카라 《롱 뷰》를 떠올렸다. 피셔는 현대인이 '현재의 섬(Island of Now)'에 갇혀 있다고 말한다. 기술과 자본주의가 우리의 단기 지향적 본능을 극도로 증폭시켜, 우리가 24시간 뉴스 사이클과 유튜브 알고리즘과 실시간 댓글의 섬에 발이 묶였다는 것이다. 그 섬 안에서는 아홉 글자 슬로건이 그럴 듯한 개혁처럼 보인다. 조회수가 민심처럼 들린다. 전당대회 표밭이 국민의 목소리처럼 느껴진다.






가장 큰 피해자가 가장 신중하다는 역설



이 상황의 가장 깊은 아이러니는 따로 있다.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검찰 권력의 가장 직접적인 표적이 된 사람, 연어 술파티 의혹, 증언 회유, 압박, 조작 기소, 국회 체포동의안 통과까지 겪은 사람, 그래서 구속영장 심사대 앞까지 끌려갔다가 판사의 기각으로 겨우 살아 돌아온 사람. 그 이재명 대통령이 지금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에 가장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는 "검찰 권한을 배제해야 하는 건 맞지만 국민이 피해를 봐선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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