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별거 아닌 하루

by조하나


4층까지 계단을 오르며 숨이 차는 건 운동을 안 해서가 아니라 이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없어서다. 나는 그렇게 믿어두기로 했다. 그쪽이 여러모로 견디기 수월하다.


사무실 문을 열면 제일 먼저 맞아주는 건 사람이 아니라 냄새다. 눅눅한 종이와 식다 만 믹스커피, 그리고 누군가 어젯밤 비우지 않고 간 재떨이. 창문은 한쪽뿐인데 그마저 옆 건물 잿빛 벽을 마주 보고 있어서, 환기란 결국 매캐한 공기를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겨 앉히는 일에 가깝다.


내 자리는 창가다. 창가 자리라고 하면 듣기엔 그럴듯하지만, 겨울엔 외풍이 목덜미를 파고들고 여름엔 오후 볕이 모니터에 그대로 내리꽂힌다. 아무도 안 앉으려는 자리가 막내 차지가 되는 건 어느 온라인 게임이나 똑같다. 인디 잡지라고 별수 없다.


동료는 나보다 늘 십 분쯤 늦는다. 오늘도 어김없이 십 분 늦게, 편의점 삼각김밥 두 개를 들고 들어왔다. 하나는 자기 것, 하나는 내 것이다. 월급이 같으니 끼니도 사이좋게 비슷한 수준으로 초라하다. 영화를 하다 말았고, 한동안은 시나리오를 쓴다고 했는데 요즘은 그 얘기를 꺼내지 않는다. 꿈을 접었다는 말은 둘 다 입에 올리지 않는다. 접은 게 아니라 잠깐 개켜둔 거라고, 그렇게 우겨야 출근이 가능한 아침이 있다.


“선배, 어제 또 밤샜어요?”


선배. 입사 두 달 차이로 나는 선배가 됐다. 두 달 먼저 이 가난에 발을 들였다는 게 무슨 자랑이라고. 그래도 누가 나를 선배라고 부르면 잠깐은 사람 구실을 하는 기분이 든다. 그 잠깐을 위해 나는 매달 80만 원을 받는지도 모른다.


편집장은 점심때가 다 돼서 나타났다. 나타나서 하는 일이라곤 대체로 어딘가에 전화를 걸어 옛날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누구누구가 한때 우리 잡지 표지를 따겠다고 줄을 섰다느니, 그 밴드가 뜨기 전에 제일 먼저 알아본 사람이 자기라느니. 그 한때가 정확히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그 한때 이후로 잡지가 해마다 얇아졌다는 것만은 모두가 안다.


대표는 일찌감치 광고주를 만나러 나갔다. 나가기 전에 내 바카라상 모서리에 손을 짚고 한마디 얹었다. 소리 씨, 오늘 아무개와 나머지들 공연 가서 인터뷰까지 좀 따와. 섭외비? 그런 거 없는 거 알지. 안다. 섭외비가 없다는 건 6년 전부터 세상이 나한테 가장 일관되게 가르쳐 온 진실이다. 열정으로 메우라는 뜻이고, 열정이 모자라면 자존심으로 메우라는 뜻이다. 나한테 남아도는 게 딱 그 두 가지라, 대표 입장에선 나만 한 직원도 없을 거다.


대표가 나가고 나면 오후 일과는 늘 비슷하다. 동료와 나는 갓 나온 이번 호를 끈으로 묶어 양손에 나눠 들고 홍대 골목을 돈다. 우리 잡지엔 배본 대행 같은 게 없다. 잡지를 받아주는 카페와 레코드 가게를 발로 뛰며 한 부 한 부 직접 꽂아두는 게 유통의 전부다. 받아주면 고맙고, 지난 호가 그대로 쌓여 있으면 민망해서 슬그머니 그 위에 새 호를 얹는다. 누가 가져가긴 하는 걸까. 굳이 확인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표지에 내 이름 석 자가 박힌 종이 뭉치를 남의 가게 한구석에 내려놓는 그 순간만은, 80만 원짜리 인생도 잠깐쯤 종이값은 하는 기분이 든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조하나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나를 위해 쓴 문장이 당신에게 가 닿기를|출간작가, 피처에디터, 문화탐험가, 그리고 국제 스쿠버다이빙 트레이너

3,078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14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331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01화1화. 테헤란로, 새벽 다섯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