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테헤란로, 새벽 다섯 시

by조하나


머리에서 김이 피어올랐다.



12월의 테헤란로 한복판, 새벽 다섯 시. 찜질방에서 나온 지 십 분도 안 된 정수리에서 허연 수증기가 가로등 불빛을 받으며 흩어지고 있었다. 누군가가 멀리서 봤다면 머리에 불이라도 붙은 줄 알았을 거다. 하지만 그 시간 그 거리엔 나를 봐줄 사람이 없었고, 그래서 나는 마음 놓고 우스워질 수 있었다. 어차피 나를 비웃는 일은 늘 내 몫이었으니까.



올이 나간 스타킹 사이로 찬 바람이 종아리를 핥았다. 부은 발은 하이힐 안에서 제 것이 아닌 것처럼 굴었다. 신었다기보다 욱여넣었다는 편이 옳았다. 어젯밤 입은 싸구려 블라우스에선 술과 담배와 남의 향수 냄새가 뒤엉켜 났다. 갈아입을 옷 같은 건 없었다. 첫 출근날 큰맘 먹고 산 정장 한 벌이 내 슬롯생활의 전 재산이었다.



그 회사가 멀쩡한 곳이라고, 나는 사흘을 믿었다.



지금 와서 가장 견디기 힘든 대목이 거기다.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걸 알아채는 데 사흘이나 걸렸다는 사실. 깔끔한 사무실과 그럴듯한 명함과 사장의 매끄러운 말솜씨를, 나는 의심 없이 받아 삼켰다. 누구보다 사람을 잘 읽는다고 자부하던 눈이, 정작 내 밥줄이 걸린 자리에서는 아무것도 보지 못한 거다. 속인 자보다 속은 자가 부끄러운 법이고, 그 부끄러움의 주인은 명백히 나였다.



회식은 입사 첫 주였다. 신입사원 셋 중 여자는 내가 유일했다. 부장이 고부라진 목소리로 "나는 코요태가 좋더라", 한마디를 흘렸을 때, 그 뒤에 따라올 밤의 윤곽이 이미 방 안에 깔렸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다. 시킨 사람은 없는데 모두가 알고 있는, 그런 종류의 침묵이 있었다.



나는 나이트클럽 룸에서 밤새도록 코요태 노래를 불렀다. 부장의 박수가 끊기지 않는 한 멈출 수 없었다. 체력은 왜 또 그리 좋은지. 과장과 대리의 박수가 거기에 장단을 맞췄다. 거울로 둘러싸인 방이라 어디를 봐도 춤추는 내가 비쳤다. 똑똑하다, 잘났다, 입버릇처럼 굴던 여자애가, 부장 비위 하나 거스르지 못해 사방의 거울 속에서 똑같이 흔들리고 있었다. 멈추고 싶었다. 그런데 멈추는 법을 몰랐다. 입으로는 누구한테도 안 진다고 떠들면서 몸은 늘 가장 먼저 굽히는 것, 그게 내가 나에게서 가장 미워하는 부분이었고, 그날 밤 나는 그 꼴을 거울로 원 없이 구경했다.



새벽녘, 관광 나이트를 나서며 과장이 만 원짜리 한 장을 손에 쥐여줬다. 찜질방이나 다녀오라고, 출근까지 시간이 좀 비니까, 라는 말과 함께였다. 회식이 끝난 게 아니라 회식과 출근 사이에 잠깐 숨 쉴 틈이 생긴 것뿐이었다. 나는 그 돈을 받았다. 집어던지는 상상은 나중에야 수백 번 했지만, 그 순간 내 손은 얌전히 세종대왕님을 받아 쥐었다. 그 종이 한 장이 오래도록 나를 가장 오래 갉아 먹었다.



대충 씻고 나와 찜찜함이 덕지덕지 묻어 있는 같은 옷을 다시 껴입고, 나는 테헤란로로 나섰다. 머리에서 김을 피워 올리며.



회사는 왼쪽이었다. 두 블록. 자리에 앉아 모니터를 켜고 아침 구호를 따라 외치면 그만인 거리였다. 사흘 만에 취업 사기인 줄 알고도 첫 주 회식까지 버틴 사람에게, 고작 두 블록은 아무것도 아니어야 했다.



그런데 발이 오른쪽으로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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