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월드컵 기자들의 손흥민 뒷담화로 본 한국 슬롯

세계가 사랑하는 사람을, 우리는 도대체 왜

by조하나







화면 캡처 2026-06-18 001943.png




처음엔 기자들이 마이크가 켜져 있는 줄 몰랐던 모양이다.



2026년 6월, 멕시코 과달라하라의 한 훈련장. 월드컵을 코앞에 둔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이 땀을 흘리고 있었다. 카메라는 주장의 몸을 따라가고 있었다. 서른 넷의 나이에도 소대장처럼, 아니 그 누구보다 앞장서서 뛰는 사람. 그때 화면 바깥에서 두 남자의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취재하러 멕시코에 간 한국 기자들이었다.



여성 기자가 "카메라가 돌고 있다"고 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두 남성 기자들은 멈추지 않았다. 아니, 더 자극적인 말을 골라하는 듯 했다.



"주장이라고 소대장 뛰듯이 뛰는 건가. 군대에서 간부가 뛰는 것처럼 뛰네."


"군대도 안 갔다 온 게."



그 대화는 그대로 송출됐다. 전 세계로 퍼졌다. 멕시코 현지인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영국 매체와 미국 매체가 이를 받아썼다. 한국 대표팀은 공식 일정 외의 국내 언론 인터뷰를 보이콧했다. 손흥민은 체코전에서 두 골이 터지는 승리를 이끌고도 믹스트존을 말없이 지나쳤다.



그리고 세계가 물었다. 왜 한국은 자기 나라가 낳은, 세계가 사랑하는, 반짝거리는 선수의 빛을 빼앗지 못해 안달인가.



이건 손흥민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다. 김연아가 세계 챔피언이던 시절에도 한국 기자들은 그에게 채점 시비와 태도 논란과 은퇴 압박을 들이밀었다. BTS가 빌보드를 점령하는 동안 한국 언론은 그들의 음악보다 그들의 병역을 먼저 입에 올렸다.



세계가 경의를 표하는 바로 그 순간, 우리는 자로 잰다. 저 사람이 우리 기준에 맞는가. 자격이 있는가.



도대체 우리는 왜 이러는가.









단일민족인데 왜 더 가혹할까



처음엔 이상하게 느껴진다. 한국은 단일민족 국가다. 아무리 못되게 굴어도 결국 제 민족은 챙긴다는 사람들. '국뽕'이라는 말이 일상어가 될 만큼 자국 자부심이 강한 나라. 그런 나라가 왜 자기 영웅에게 더 모질까.



답은 거꾸로 있다. 단일민족이기 때문에 더 가혹하다.



여러 인종, 여러 문화가 섞여 사는 나라에서는 누군가 비범하게 튀어 올라도 그것이 자연스럽다. 애초에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서로 다른 길을 걷는 게 전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다 같다'는 믿음이 뼛속까지 박힌 슬롯에서는 다르다. 그 믿음 위로 누군가 혼자 솟아오르면, 그것은 성취가 아니라 이탈로 읽힌다. '저 사람은 우리와 다른 길을 갔다'는 사실이 박수의 이유가 아니라 의심의 근거가 된다. 같음을 떠받드는 공동체일수록 대열을 벗어난 자를 더 세게 끌어내린다.



그러니 '국뽕'은 무조건이 아니다. 조건부다. 정확히 말하면 이렇다. '저 사람이 한국인이라 자랑스럽다'가 아니라, '저 사람이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한국을 대표하기에 자랑스럽다'. 손흥민이 런던과 LA에 살고, 영어와 독일어로 인터뷰하고, 점점 세계의 사람이 되어 갈수록, 그는 '우리 손흥민'에서 '우리 것만은 아닌 손흥민'으로 미끄러진다. 세계가 그를 가져가기 시작하면 우리 안의 어떤 감정이 뒤집힌다. 국뽕은 그가 '우리 것'으로 남아 있는 동안만 작동하는 사랑이었다.








"나는 군대 갔다 왔다"는 마지막 패



다른 나라에도 엘리트 언론이 있다. 기득권이 펜을 쥐는 건 어디나 비슷하다. 그런데 한국에만 있는 변수가 하나 있다. 바로 군대다.



한국의 병역은 의무가 아니라 통과의례다. 남성 전체를 하나의 경험으로 묶는, 지금 살아 있는 가장 강력한 평준화 장치. 그것을 다른 방식으로 치른 사람, 면제받은 사람은 이 거대한 공유 경험의 바깥에 선 사람이 된다. "나는 군대 갔다 왔다"는 말이 한국 남성 슬롯에서 일종의 계급 증명서로 통하는 이유가 거기 있다.



생각해 보면 기이한 장면이다. 영국 기자가 손흥민을 취재하러 갈 때, 그는 손흥민 앞에서 자신이 우월하다고 느낄 구석이 없다. 모든 면에서 손흥민이 압도적이니까. 그런데 한국 기자에게는 단 하나, 자기에게만 있고 손흥민에게는 없다고 믿는 것이 남아 있다. '나는 군대를 다녀왔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몸값의 아시아 축구 선수 앞에서, 평생을 시험과 서열 속에 갈아 넣은 사람이 끝내 꺼내 드는 마지막 패가 군필 이력이라는 것. 이 한 장면이 우리 안의 어떤 병을 통째로 보여준다.








마이크가 꺼진 줄 알았던 그 순간이 진짜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조하나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나를 위해 쓴 문장이 당신에게 가 닿기를|출간작가, 피처에디터, 문화탐험가, 그리고 국제 스쿠버다이빙 트레이너

3,087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17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338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