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가 된 유시민에게

당신에겐 산초가 있나요

by조하나



마이크를 든 돈키호테



라만차의 늙은 기사는 풍차를 보고 거인이라 믿었다. 종자 산초가 아무리 저건 그냥 풍차라고 말려도 소용없었다. 그는 창을 꼬나쥐고 달려들었고, 날개에 걸려 나뒹굴었다. 우리는 이 장면을 우스개로 기억한다. 어리석은 노인이 헛것과 싸우다 망신을 당하는 이야기로.



그런데 나는 요즘 그 장면이 자꾸 슬프게 읽힌다. 돈키호테가 비웃음을 사는 건 그가 비겁해서가 아니다. 정확히 그 반대다. 그는 용감하다. 겁쟁이였다면 풍차 앞에서 그냥 조용히 늙어갔을 것이다. 한때 진짜 거인과 싸웠던 사람만이, 거인이 사라진 들판에서도 창을 내려놓지 못한다. 비극은 거기서 온다.





한때 거인은 진짜였다



운동권에 몸담았던 사람, 거대한 사상의 깃발을 들었던 사람, 기득권의 대항마로 떠올랐던 사람. 그중 일부는 나이가 들면 돈키호테가 된다. 나는 이 현상을 오래 들여다봤다. 변절이라 하기에도 석연치 않다. 변절자는 적어도 자기가 진영을 바꿨다는 걸 안다. 어제의 동지에게 등을 돌렸다는 자각이 있다.



그런데 돈키호테가 된 사람은 자기가 여전히 싸우고 있다고 믿는다. 자기 머릿속에서는 한 점의 모순도 없다. 문제는 세상이 바뀌었는데 그가 들고 있는 싸움의 지도가 바뀌지 않았다는 데 있다. 한때 그 지도는 실제 지형과 정확히 맞아떨어졌을 것이다. 그래서 확신이 생겼다. 그리고 확신이 오래되면, 그것은 갱신을 거부하는 신념이 된다.



특히 평생을 싸움으로 정의해온 사람에게 이 일은 쉽게 일어난다. 정체성의 핵심이 '나는 싸우는 사람'이라는 데 있기 때문이다. 싸울 상대가 사라지면 정체성 자체가 흔들린다. 그래서 상대를 계속 찾는다. 찾다 보면, 없는 상대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풍차가 거인이 되는 건 그 지점이다.



가장 아픈 역설은 따로 있다. 그들이 싸워 이긴 덕분에 세상이 조금 바뀌었는데, 그 바뀐 세상에서 그들은 이미 어느 정도 권력의 자리에 올라 있다. 그런데 자기 인식은 여전히 변방의 저항자다. 자신이 예전에 치열하게 싸우던 기득권, 그 자체가 되었다는 것을 절대 인정하지 못한다. 손에 쥔 것과 머릿속의 자기 그림 사이에 벌어진 그 틈을, 본인만 보지 못한다.





우리에겐 68혁명이 없었다



유럽이 1968년의 봄을 통과할 때, 우리는 군홧발 아래 있었다. 이 시차가 모든 걸 갈랐다고 나는 생각한다.



68혁명은 싸워야 할 대상이 사방으로 흩어져 있었다. 베트남전 반대, 여성해방, 성의 해방, 자본주의 비판, 권위에 대한 거부, 생태주의까지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적이 하나가 아니었다. 그래서 68 이후 유럽의 활동가들은 자연스럽게 갈라졌다. 누구는 정체성 정치로, 누구는 환경운동으로, 누구는 시민슬롯로 흩어지며 각자의 길을 갔다. 이념의 다양화가 먼저 일어난 것이다.



한국의 민주화운동은 적이 너무도 선명했다. 군사독재. 그 선명함이 운동의 밀도를 끌어올렸고, 그들은 실제로 이겼다. 그러나 선명한 적을 상대로 싸운 경험은 강한 부작용을 남긴다. 세계를 '우리 편과 적'이라는 두 칸으로 읽는 사고방식이 몸에 새겨진다. 1987년 이후에도 그 사고의 회로를 끄지 못한 사람이 많았다. 거기에 NL이냐 PD냐를 가르던 운동 내부의 교조적 언어까지 더해지면, 민주화 이후의 복잡한 세계를 읽기에는 너무 거친 도구가 손에 남는다.



그리고 결정적인 차이. 우리는 이겼다. 직선제를 쟁취했고, 두 번의 평화로운 정권교체를 이뤘고, 운동권 출신들이 제도권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유럽의 68 세대가 문화적으로는 이겼어도 제도 안에서는 비주류로 남은 것과 다르다. 이긴 사람들이 권력을 잡았는데, 그 머릿속은 여전히 저항자였다. 그 틈이 우리 쪽이 더 크고, 더 빨리 왔다.








같은 강을 건넌 두 사람



여기 같은 강에서 출발한 두 사람이 있다.



김문수는 노동운동의 전설이었다. 서울대에서 학생운동을 하다 두 차례 제적당했고, 구로공단에 위장취업해 노조위원장을 지냈으며, 두 번 구속됐다. 그러다 1994년 김영삼의 권유로 보수정당에 입당하면서 길을 바꿨다. 그 뒤의 행로는 우리가 아는 그대로다. 태극기 집회, 극우 유튜브, 전직 대통령을 향한 차마 옮기기 어려운 험한 말. 노동운동에 바친 시간의 두 배가 넘는 세월을 그는 정반대편에서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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