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은 스시가 아니다

우리가 잃을 뻔했던 것과 되찾은 것에 대하여

by조하나


남한? 북한?



처음으로 혼자 떠난 해외여행은 태국 방콕이었다. 출장이 아니라 온전히 나만의 시간으로 떠난 첫 여행이었다. 낯선 도시에서 새로 사귄 외국인들에게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돌아오는 질문은 늘 같았다. "남한? 북한?" "김정은 알아?" 불과 10년 전의 일이다.



그 시절에는 한국인들도 외국인을 만나면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두유 노 김치?" "두유 노 싸이?" 우리가 우리를 소개할 때 꺼낼 수 있는 말이 그만큼 빈곤했다. 세계 무대에서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얼굴은 언제나 일본이었다. 한국의 처지는 늘 이랬다. 반 전체가 한 아이를 두고 "쟤는 정말 예쁘고 친절하고 똑똑해"라고 입을 모으는데, 나 혼자만 "아니야, 사실 저 아이는 나쁜 애야"라며 붙잡고 늘어지는 아이가 있다. 세상이 사랑하던 그 인기 많은 아이가 일본이었고, 아무리 과거의 잘못을 이야기해도 변명처럼 들리던 외로운 아이가 한국이었다. 그렇게 한국은 일본과 중국 사이 어딘가에, 이름도 없이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반복되는 거짓말은 듣는 사람의 마음에 자리를 잡는다



중국은 한글과 한복, 비빔밥과 김치가 모두 자기 나라에서 왔다고 주장했다. '한국은 언제나 중국의 속국이었다'는 동북공정을 멈추지 않았다. 일본은 35년에 걸친 끔찍한 식민 지배와 조선인 학살을 두고, 한국이 스스로 발전할 능력이 없었기에 지배가 필요했으며 그것이 오히려 한국을 계몽하고 근대화시킨 일이라고 말했다. 모두 명백한 역사 왜곡이다. 그러나 거짓말 자체보다 더 무서운 일이 따로 있었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말은 결국 그 말을 듣는 사람의 마음 어딘가에 조용히 뿌리를 내린다는 사실이다. 처음에는 화가 나고 억울하던 말도, 매일같이 듣다 보면 어느 순간 "혹시 정말 그런가" 하는 의심으로 바뀐다. 가스라이팅이 무서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행복해지는 법을 배울 시간이 없었다



"우리는 한참 멀었다." 많은 한국인이 그렇게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자격지심과 피해의식, "왜 우리를 몰라주나" 하는 서러움, 그리고 인정받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 이건 나약함이 아니다. 오랜 세월 바깥으로부터 자신의 가치를 부정당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겪을 수 있는 일이다.



게다가 한 나라의 정체성이 수십 년 동안 지워질 뻔한 경험에서 비롯된 상처와 살아남으려는 본능은 세대를 거쳐 대물림되었다. 우리는 행복해지고 싶었지만, 행복해지는 법을 배울 시간이 부족했다. 겨우 먹고살 만해지면 무너지고 부서지고, 다시 일어나 살 만해지면 또 빼앗기고 짓밟혔다. 그렇게 반복된 역사는 사람들의 마음에 "좋은 시절은 오래가지 않는다"는 불안을 새겨 넣었다.



그래서 우리의 전통은 촌스럽고 시대에 뒤처졌다고 여기는 사람이 많았다. 새것, 모던한 것, 트렌디한 것이 더 멋지다고 믿었다. 우리가 가진 문화와 언어, 역사와 전통, 그리고 성숙한 시민의식이 얼마나 아름답고 독창적인지 우리 스스로 그 가치를 알지 못했다. 전통 요소가 조금이라도 쓰이면 "닭살 돋는다", "국뽕에 취했다"며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를 깎아내리기 바빴다. 가장 아프고 슬픈 일은 남이 우리를 무시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를 먼저 의심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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