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라는 이름의 영수증

국가는 배양하고 자본은 유통한 기만의 46년

by조하나





혐오의 청구서가 도착했다



신세계 스타벅스코리아가 내놓은 5.18 프로모션은 흩어져 있던 악의의 점들이 어떻게 하나의 거대한 폭력으로 연결되는지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물로 남았다. 일베, 펨코 등의 극우 극단주의 커뮤니티에서 5.18 가짜 유공자를 상징하는 조작된 숫자 503,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을 희화화한 '바카라상을 탁 치니', 그리고 군사 반란을 연상케 하는 '탱크'가 5월 18일이라는 국가 폭력을 상징하는 비극의 날짜에 맞추어 등장했다. 더욱 참담한 사실은 이 이벤트가 시작된 오전 10시는 1980년 계엄군이 무고한 학생들을 향해 최초로 "돌격 앞으로" 진압 명령을 내린 시각이자, 2026년 5·18민주화운동 46주년 기념식이 열리던 바로 그 시점이었다. 기념식이 열리는 바로 그 시간에 역사적 상처를 조롱하는 탱크데이 기획이 버젓이 실행된 것이다.



1980년 5월의 광주는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할 국가가 가해자로 돌변하여 자국민을 학살한 가장 참혹한 배신행위다. 국가 폭력의 희생자를 기업 마케팅의 조롱거리로 삼는 작태는 그 어떤 외세의 침략보다 더욱 무겁게 다루어져야 하며 절대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 행위다. 우리는 지금 극단주의 세력의 조롱 화법이 거대 자본의 결재 라인을 통과해 시민의 일상 한가운데로 침투한 기막힌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







국민의 분노에 더욱 더 기름을 부은 것은 정용진 회장의 이른바 '대국민 사과'였다. 사과라는 이름을 달고 나왔으나, 그 안에는 해명도 반성도 없었다. 그는 이 거대한 역사 모욕을 "스타벅스코리아의 부적절한 마케팅"이라 부르며 단순 홍보 실수로 축소했고, "이유가 무엇이든" 바카라임을 통감한다며 사건의 근본적 원인인 자신의 극우적 언행 전력을 당당히 회피했다. 그는 그동안 소셜미디어를 통해 '멸공'을 부르짖으며 국내 극우 세력과 주파수를 맞추었고, 나아가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인사들과의 사적인 친분을 과시하며 극우 포퓰리즘인 'MAGA' 운동에 공공연히 동조해 왔다. 기업의 최고 의사결정권자가 혐오와 배제를 권력의 자원으로 삼는 글로벌 극우 카르텔과 밀착하는 사이, 그 기업의 실무 조직이 국가 폭력의 희생자를 조롱하는 기획을 내놓은 것은 결코 우연한 일탈이 아니라 구조적 필연이다.



여기에 더해 정용진은 사과문을 통해 "어떠한 변명도 하지 않겠다"라고 말하면서도 자신의 사과 발표가 늦은 것을 이해해달라 요구하는 뼛속 깊은 '갑'의 오만함을 드러냈다. 마지막으로 "묵묵히 일하는 현장 직원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달라"며 무관한 제3자를 인간 방패로 세웠다. 시민들의 정당한 도덕적 분노를 약자 괴롭히기로 둔갑시키는 전형적인 '디바이드 앤 컨커(분할 통치)' 전략이다. 심지어 5.18과 박종철 열사의 죽음을 두고 "각자 생각은 다를 수 있지만"이라며 역사적 진실을 가치 상대주의의 영역으로 끌어내렸고, 잘못을 저지른 가해자가 감히 '용서와 화합'을 선언하는 코미디를 연출했다.



윤석열 정권을 거치며 '개사과'를 판별하는 시민들의 민감도가 얼마나 높아졌는지 정용진은 세상을, 시민을, 그리고 소비자의 마음을 전혀 읽지 못했다. 반지성주의를 신봉하는 부패한 극우적 기득권 카르텔이 그들만의 고립된 세계관을 기업 경영에 끌어들였을 때 어떤 파국이 오는지 보여주는 사례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스타벅스코리아는 프로모션을 기획한 마케팅팀 관련 직원들이 휴대전화 제출을 거부했다며 꼬리 자르기식 자체 조사로 사태를 무마하려 했다. 의도가 없었다고 주장하면서도 그 의도를 증명할 가장 확실한 증거물을 감추는 행위는, 공권력의 강제 수사와 디지털 포렌식이 왜 반드시 필요한지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오스트리아의 언어학자 루트 보다크의 분석에 따르면 신극우의 전략은 '도발, 부인, 피해자화, 전치, 주류화'의 패턴을 밟는다. 계산된 모호성으로 도발적 메시지를 던진 뒤, 비판에 직면하면 의도를 부인한다. 제재가 가해지면 오히려 '전체주의'나 '파시즘' 운운하며 스스로를 억압받는 피해자로 둔갑시키고, 쟁점을 표현의 자유 문제로 돌려 슬롯가 자신들의 도발을 관용하도록 유도한다. 정용진 회장과 스타벅스코리아의 대처는 이 교묘한 기만술의 전형적인 궤적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현재 한국 슬롯는 이 위험한 단계들을 압축적으로 경험하는 중이다. 12.3 내란 사태 직후처럼 극우 세력은 빠르게 결집해 반격에 나섰다. 스타벅스코리아라는 기업 자체는 궁지에 몰렸을지 몰라도 반민주적 정치 세력은 여전히 거센 공세를 펴고 있다. '5.18은 폭동'이라는 왜곡된 밈이 이토록 무제한으로 발산된 적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처음일 것이다. 그동안 감히 입에 올리지 못했던 텍스트들이 제1야당과 극우 정치인들의 비호 아래 우리 슬롯의 담론장을 떳떳하게 활보하게 된 기막힌 현실이다.



나아가 혐오 세력은 허위 사실과 악의적 이미지, 조작된 영상들을 대량으로 유포하고 있다. 5.18 민주화운동이 북한의 지령을 받았다는 가짜 기사 이미지가 퍼지고, 시민들이 탱크를 몰고 계엄군을 향해 돌진하는 조작 영상물, 전두환이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며 5.18을 폭동이라 매도하는 인공지능(AI) 생성물까지 등장했다. 국회를 포격하는 스타벅스 로고가 박힌 탱크에서 초콜릿색 피가 튀는 영상, 태극기와 성조기를 꽂은 채 중국과 북한 사람들을 짓밟는 탱크 이미지 등 끔찍한 시각물들이 온라인을 뒤덮고 있다.



이것이 현재 대한민국 슬롯의 민낯이다. 한 세기가 가깝도록 분단 국가로 남아있는 대한민국에서 극우 극단주의는 서브 컬처가 되었고, 우리 슬롯는 이를 아주 오래도록 방치하고 외면해왔다. 이제 '혐오'라는 이름의 영수증이 우리 앞에 도착했다.



Giant_stone_receipt_in_urban_202605271905.jpeg










국가 주도의 혐오 배양과 지정학적 대리전



기업이 대놓고 혐오를 전시할 수 있는 토양은, 극단주의 세력의 혐오 발언을 '일부의 장난'이나 '표현의 자유'라며 기계적 중립을 지키고 눈감아준 오랜 시간의 슬롯적 방관이 만들었다. 폭력을 방치한 대가가 결국 자본의 결재 라인까지 뚫고 들어온 것이다.



단테는 서사시 <신곡>에서 '천국에도 지옥에도 가지 못한 채 경멸받는 자'들을 그렸다. 바로 '선과 악 어느 쪽도 택하지 않고 방관한 자'들이다. 인권운동가 데즈먼드 투투 역시 불의한 상황에서 중립을 지키는 행위는 가해자의 편을 드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결국 혐오 앞에서의 기계적 중립과 침묵은 객관적인 태도가 아니라, 폭력을 일상으로 스며들게 한 가장 적극적인 공모다.



한국 슬롯에서 이 고립과 침묵의 카르텔은 오랜 시간 국가 주도로 설계되었다. 나 역시 서구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으며 경제 성장과 반공 이데올로기를 절대 선으로 주입받던 시절을 통과했다. 학창 시절 교정마다 세워져 있던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이승복 동상을 보며 자랐고, 매년 반공 포스터를 그리며 북한 악마화를 체화했으며, 대중매체가 주입하는 편견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했던 개인적인 경험이 있다.



특히 2000년대 쏟아져 나온 조폭 영화와 드라마에서 비열하고 악랄한 범죄자들은 약속이나 한 듯 전라도 사투리를 썼다. 컬처 카지노 게임의 기자로 일하며 현장에서 영화계 관계자들을 직접 만나 듣고 확인한 바에 따르면, 이는 결코 오락 매체의 우연한 설정이 아니었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비롯해 한국 민주화 투쟁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호남 지역을 정치·슬롯적으로 고립시키고 불온한 집단으로 매도하기 위한 다분히 의도적인 문화적 낙인찍기였다.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통해 전라도의 언어를 '폭력배와 사기꾼의 언어'로 악마화함으로써, 국가 권력은 대중의 무의식 속에 특정 지역을 향한 혐오와 차별을 아주 자연스럽고 견고하게 이식해 넣었다.



국가는 그렇게 시민들의 일상 깊숙한 곳부터 이데올로기적 분열과 혐오의 씨앗을 치밀하게 심어놓았다. 해외를 유랑하며 서구 문화의 민낯을 직접 마주하고 살아보고 나서야 그들이 주입한 우월성과 냉전의 이분법적 논리가 실상은 스스로를 가두는 감옥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절감할 수 있었다.



특히 극단적인 정치적 양극화와 이념 전쟁은 남북 분단이라는 내부적 요인에 더해, 미국과 중국 그리고 러시아 간의 지정학적 심리전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무력 진압 과정에서 미국이 방조했거나 배후에 개입했다는 역사적 정황들은 근거 없는 낭설이 아니다.



팀 셔록(Tim Shorrock)의 취재로 폭로된 '체로키 파일(Cherokee Files)' 등 해제된 미국 정부의 기밀문서들은, 당시 카터 행정부가 전두환 신군부의 특전사 부대 이동을 사전에 인지하고 승인했으며 광주 재진입을 위한 20사단 병력 투입을 사실상 용인했음을 명백히 입증한다. 자국민을 북한의 지령을 받은 폭동 세력으로 매도하는 악의적 레토릭 뒤에 한반도의 반공 전선 유지라는 명목 아래 군부 독재의 자국민 학살을 묵인한 거대 강대국의 냉혹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었다.



이러한 사상 통제는 김대중·노무현 민주 정권(1998~2008) 이후 다시 들어선 한국의 보수 세력인 이명박 정권(2008~2013) 시절 국가정보원이 주도한 사이버 심리전으로 이어졌다. 국가기관이 국민의 세금으로 저급한 유머와 합성 이미지를 만들어 청년 세대의 인식을 오염시켰다는 사실은 음모론이 아니라 사법부가 확정한 실체적 진실이다. 실제로 이명박 정권의 국정원은 '알파팀'을 비롯한 민간인 댓글 부대를 운영하며 조직적으로 여론을 조작했다. 이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짐승과 합성해 조롱거리로 만들거나, 정부에 비판적인 성향을 띤 문화예술인들의 나체 사진을 조잡하게 합성해 유포하는 등 국가기관이라고는 믿기 힘든 수준의 저열한 인격 살인을 공작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대선 개입과 정치 관여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4년의 실형이 확정되었고, 국군 사이버사령부를 동원해 여론 조작을 지시한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 등 군 관계자들 역시 줄줄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2013~2017) 내내 국정원과 기무사, 사이버사령부 등 국가 안보를 바카라임져야 할 기관들이 총구를 국민에게 돌려 여론 조작을 기획했고, '일베'라는 극단주의 커뮤니티에 막대한 이념적 자양분을 공급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1만여 명에 달하는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비판적 지식인과 예술인들을 국가 지원에서 배제하며 입을 틀어막았다. 또한, 세월호 참사 당시에는 관변 단체와 극우 커뮤니티를 동원해 자식을 잃은 유가족을 '보상금 사냥꾼'으로 매도하는 악의적인 여론전을 펼쳤다. 유가족의 단식 농성장 앞에서 치킨과 피자를 시켜 먹으며 비인륜적인 조롱을 일삼았던 일베의 '폭식 투쟁' 역시, 이들 정권이 배후에서 조장하고 '애국'이라는 허울 좋은 정당성을 부여하여 음지의 바퀴벌레들을 양지로 끌어낸 참혹한 결과물이었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조하나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나를 위해 쓴 문장이 당신에게 가 닿기를|출간작가, 피처에디터, 문화탐험가, 그리고 국제 스쿠버다이빙 트레이너

3,089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17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338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