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셋을 빼앗긴 아이

고통의 올림픽을 지켜 보며

by조하나



방랑자가 되어 버린 휴양지의 진짜 주인



필리핀 보라카이 섬에 프랑스 친구 벤을 만나러 갔던 기억이 선명하다. 작고 아름다운 섬의 서쪽 해변은 그야말로 지상 낙원 같았다. 하얗고 고운 모래사장을 따라 고급 리조트가 끝없이 이어져 있었고, 붉게 타오르는 일몰을 배경으로 백인 관광객과 부유한 장기 체류자, 그리고 동아시아 사람들이 여유롭게 칵테일 잔을 부딪쳤다. 완벽하게 세팅된 안락한 풍경이었다.



하지만 호기심에 걸음을 옮겨 도달한 섬의 동쪽은 전혀 다른 세계를 품고 있었다. 현지인들보다 훨씬 피부가 검고 체구가 작은 원주민 아이들이 쓰러져가는 판잣집들 사이에 모여 있었다. 이 아이들은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 섬에 살면서도 가장 아름다운 해변의 일몰을 감상할 권리를 잃어버렸다. 자본에 의해 선셋을 완벽하게 빼앗긴 상태였다.



멕시코 킨타나로오주의 플라야 델 카르멘이나 툴룸에 머물며 세노테 수중 동굴을 탐험할 때도 기시감을 느꼈다. 미국과 유럽에서 온 백인들은 멕시코의 척박하면서도 아름다운 자연 한가운데에 자신들만의 타운을 군사 요새처럼 구축해 놓았다. 거대한 출입문 앞에는 무장한 경호원들이 서서 사람들의 신분을 철저히 통제했다. 담장 안쪽은 평화로운 미국 본토의 부촌이나 다름없었지만, 그 견고한 장벽 밖의 세상은 치안이 붕괴된 게토의 끔찍한 현실을 고스란히 노출하고 있었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자본을 무기 삼아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며 소비하는 이들을 '관광객', 생존의 벼랑 끝에서 변두리로 밀려나 옴짝달싹 못하는 이들을 '방랑자'라 명명했다. 백인과 동아시아인 관광객이 독점한 보라카이의 해변과 북미, 서유럽인들로 가득한 멕시코의 요새 타운은 자본의 공간적 조정 과정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아름다운 자연환경조차 구매력을 갖춘 특권층만의 전유물로 전락하고, 원래 땅의 주인은 가장 비참한 곳으로 쫓겨난다. 겉으로는 피부색의 차이로 교묘하게 위장되어 있지만, 실상은 자본이 안전과 풍경을 철저히 독점하는 잔혹한 계급 불평등의 생생한 현장이다. 자본을 통한 공간의 식민화이자 총칼만 없을 뿐 과거 제국주의 시대의 군사 요새와 똑같이 기능하는 관광 신식민주의 현상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인종 차별의 얼굴을 하고 있으나 이면에는 사람의 가치마저 구매력으로 줄 세우는 극단적인 계급 문제가 철저히 은폐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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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올림픽과 제로섬 게임



최근 영어 유튜브 채널에 백인 주류 슬롯의 인종차별에 관한 영상을 올린 후, 나는 은폐된 권력 구조가 소수자들 사이에서 얼마나 기형적인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목격할 수 있었다.



가장 먼저 날아온 비수는 아이러니하게도 흑인 커뮤니티의 반응이었다. 그들은 아시아인이 겪는 차별에 공감하기는커녕 "나의 세계에 온 것을 환영한다(Welcome to my world)", "우리 흑인들은 아시안들보다 훨씬 더 오래전부터, 더 혹독하게 당해왔다"라며 기괴한 비아냥과 조롱을 퍼부었다. 마치 자신들만이 인종차별의 유일한 과녁이자 피라미드의 맨 밑바닥이라는 절대적 확신에 차 있는 듯했다. 심지어 아시아인들이 백인 주류 슬롯의 눈에 들기 위해 흑인 차별에 침묵했다거나, 한술 더 떠 백인들의 흑인 인종 차별에 아시안이 앞장서서 동참했다는 원망 섞인 비난까지 쏟아냈다.



흑인들이 아시아인을 피라미드 상단에 더 가깝게 느낀다는 이러한 반응은 클레어 진 김 교수의 '인종적 삼각화' 이론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백인 주류 슬롯가 아시아인을 경제적으로 흑인보다 우위에 두면서도 문화적으로는 철저히 이방인 취급을 하는 교묘한 계급 구조를 설계했고, 이 과정에서 흑인 커뮤니티 내부에 아시아인을 향한 열등감과 불안함이 형성된 맥락이 존재한다.



철저하게 자신들만이 유일한 피해자라는 강렬한 확신에 갇혀 세상을 이분법적인 구도로만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오직 자신들의 고통이라는 거대한 렌즈를 통해서만 세상을 해석하려 든다. 그러니 아시아인이 겪는 혐오나 다른 역사적 맥락의 차별은 아예 시야에 들어오지 않거나 지극히 사소한 문제로 치부해 버리고 마는 것이다.



이들의 뾰족한 태도를 마주하며 LA 폭동 당시 백인 시스템을 향해야 할 분노가 가장 만만한 한인 타운으로 쏟아졌던 아픈 역사가 겹쳐 보였다. 거주지 분리와 경제적 제약 속에서 백인 중심 자본주의의 최전선에 놓여 일종의 '중간자적 소수계' 역할을 강요받았던 한인들이 가장 눈에 띄고 방어력이 취약하다는 이유로 희생양이 된 잔혹한 결과물로 해석할 수 있다.



르네 지라르가 갈파한 '희생양 메커니즘'이 내 유튜브 댓글 창에서 정확히 재현되는 순간이었다. 절대적인 권력을 쥔 기득권을 직접 타격하기 두려울 때 억압받는 집단은 분노를 해소할 가장 만만한 대체물을 찾기 마련이다. 방어력이 취약한 타자를 제물로 삼아 화풀이를 하는 수평적 폭력의 적나라한 민낯이다. 억압받은 자가 권력에 저항하는 대신 취약한 대상을 타격하는 방식을 택할 때 진정한 연대의 고리는 끊어질 수밖에 없다. 팬데믹 기간 아시아인이 무차별적으로 겪은 혐오 범죄나 욱일기 사용으로 여전히 고통받는 한국의 역사적 상처 같은 맥락은 이들에게 전혀 안중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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